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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후폭풍이 영남-호남-충청 간 세 갈래 지역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여권에서 영남지역 민심 수습책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분산 배치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 경남 일괄배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7일 "과학벨트를 대전 대구 광주 세 곳으로 쪼개 사실상 '삼각벨트'로 만드는 방안이 청와대에 보고됐다"는 <동아일보> 보도에 정치권이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날은 과학벨트의 입지를 선정하게 될 총리실 산하 과학벨트위원회의 첫 회의가 예정된 날인데, 회의 시작 전 이미 위원장인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삼각벨트안'을 직접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주호 장관이 "지금 시점에서 교과부 안은 없다, 위원회에서 검토하고 결정할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지사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하고 지역 현안을 건의한 사실이 오버랩 되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과학벨트위원회 첫 회의도 안 했는데... 여권발 '삼각벨트설'

 

당장 한나라당에서는 공개된 회의에서 지도부 간 설전이 벌어지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이주호 장관과 아침에 통화를 했는데 교과부가 전혀 (삼각벨트안을) 검토한 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과학벨트 위원회가 오늘 첫 회의를 하는데 회의도 하기 전에 (입지를)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대전시장 출신인 박성효 최고위원은 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청와대는 그런 일 없다고 하지만 세종시 때처럼 나중에 보면 일이 이상하게 가 있다"며 "과학벨트 문제가 정책이나 정치의 범위를 넘어서서 대통령의 인품에까지 번져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정면 비판했다.

 

이에 안상수 대표가 박 최고위원의 사퇴를 언급하고 김무성 원내대표도 유감을 나타내면서 회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의 반발도 거셌다. 이회창 대표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과학벨트를 분산배치하겠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과학벨트 분산배치를 막는데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공약을 해 놓고 그것을 뒤엎기 위해서 대가를 주는, 또 다른 공약을 한 지역에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쪼개주는 식의 불신의 정치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충청권은 이런 모욕과 불신을 더는 참아낼 수 없다, 충청권의 모든 정파가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대표직도 내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과학벨트 충청권 유치가 당론인 민주당도 이 대통령에게 대선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형님예산에 이어 (과학벨트가) 형님벨트로 가고 있다"며 "여기 터지면 져기 달래고 저기 터지면 여기 달래는 땜질식 국정은 이제 끝낼 때가 됐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공약은 충청권이었다"며 "세종시, 신공항, 반값등록금에 이어 과학벨트까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지 말고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 같은 당내 의원들도 출신 지역따라 의견 대립

 

 

하지만 여야 각당 내에서도 출신 지역에 따라 의원들이 과학벨트 입지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등 당내 갈등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영호남 의원들은 현재 과학벨트 분산 배치론에 힘을 싣고 있다. "과학기술 수요 등을 고려할 때 과학벨트 예산 규모를 10조 원 정도로 늘려 3조 5000억씩 충청과 영호남에 각각 배정해 삼각벨트를 구축해야 한다"(서상기 한나라당 의원), "대전과 광주, 대구 등 3개 지역을 하나로 묶어 삼각벨트화하는 것이 국토균형발전 취지에 부합한다"(김영진 민주당 의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 이전 논란에도 기름을 부었다. 경상남도의 일괄이전과 전라북도의 분산이전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정부가 영남 민심 달래기용으로 경남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정동영·정세균·조배숙 최고위원 등 민주당의 전북 지역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LH공사가 경남으로 일괄 배치되면 이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지역균형발전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며 "LH공사 지방이전 해법은 애초 정부가 제시했던 분산배치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역감정으로 비화되고 있는 LH공사 이전 문제에 대해 대통령의 책임있는 결단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조배숙 최고위원은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되면서 민심이 들끓자 보상차원에서 LH공사를 경남에 일괄 배치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LH공사도 영남 달래기용? 골 깊어지는 지역 갈등

 

과학벨트와 LH공사 이전 등 정부의 국책사업을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 뒤집기의 후유증 탓이 크다.

 

과학벨트 논란만 해도 이 대통령이 지난 2월 초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과학벨트 충청권 유치는 "공약집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꾸면서 시작됐다. 여기에 동남권 신공항까지 백지화 됐고, 그 보상책으로 여러 '땜질용' 대책이 여권을 중심으로 제기돼 논란은 더 커졌다.

 

더 큰 문제는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해 정부가 신뢰를 담보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만 해도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기 전부터 '백지화' 설이 여권 핵심부에서 기정사실로 흘러나왔고 과학벨트 입지 문제도 과학벨트위원회가 첫 회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분산 배치 가능성이 거론됐다. 여기에 과학벨트위원회 당연직 위원 7명 중 5명이 영남 출신이라는 등 인적 구성의 문제점까지 부각됐다.

 

이 때문에 정부가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과학적·객관적인 검토를 통해 과학벨트의 입지를 선정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지만 지역 간 대립은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게 됐다. 또 과학벨트위원회가 오는 6월 최종 입지를 선정한 후에도 탈락한 지역의 반발이 거셀 듯해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학벨트#LH공사#동남권 신공항#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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