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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제대로 못할 뿐, 이제 제법 사람 구실하는 까꿍이. 녀석을 보며 아내와 내가 가장 크게 웃을 때는 바로 녀석이 우리의 행동을 따라할 때였다.

안경도 따라쓰고 싶은 아이 모든지 따라할꺼야!
안경도 따라쓰고 싶은 아이모든지 따라할꺼야! ⓒ 이희동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라는 옛 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듯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따라했다. 엄마의 눈웃음을 보고 나서는 찡긋찡긋 나름대로 눈을 깜빡이며 애교를 부리고, 부모들의 양치질을 보면 자기 입에 손을 넣은 뒤 '아~' 하며 양치질 흉내를 내고, 부모와 마찬가지로 안경을 쓰고 싶어하는 아이.

그뿐인가. 어느 날 아이는 안경닦이 헝겊을 짚더니 창문 옆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영문을 몰라 창문을 열어주었더니 이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헝겊을 연신 창밖으로 흔들어대는 아이. 놀랍게도 그것은 예전에 이불 등을 창밖으로 털던 우리의 행동을 흉내 낸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던 아이가 어느새 우리의 행동을 살펴본 뒤 나름대로 해석하여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 했던가. 우리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따라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마음도 슬며시 들었다. 우리가 이 녀석 보기에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젠장' 등의 곱지 못한 단어들을 내뱉을 때 아내에게 제일 많은 잔소리를 듣는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요즘 내가 면도하는 모습을 유난히 유심히 쳐다보던 아이의 눈빛이 떠올랐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한다며 아버지가 안 계시는 틈을 타 면도기를 들고 설치다가 턱 주변을 피로 칠갑한 적이 있었는데, 설마 이 녀석도 면도를 하려고 덤비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앞서 열거한 사례보다 좀 더 일찍, 훨씬 더 집요하게 따라하는 부모의 행동이 있었으니, 바로 'IT 사랑'이었다. 요컨대 아이가 휴대폰과 TV, 그리고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휴대폰 사랑 너무나도 좋아하는 아이
휴대폰 사랑너무나도 좋아하는 아이 ⓒ 정가람

휴대폰만 보면 정신 못 차리는 이유

까꿍이의 휴대폰 사랑은 꽤 오래된 이야기로, 녀석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휴대폰을 만지고 빨아댔다. 무엇이 그리도 신기하고 좋은지 휴대폰만 보면 정신 못 차리는 아이.

처음에는 화면이 신기해서 그러려니 했으나, 먼저 아이를 키워본 친구의 이야기는 달랐다. 모든 아이들이 휴대폰을 비롯해서 TV 리모콘, 자동차 키 등을 좋아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전자제품이라서 혓바닥을 갖다 대면 찌릿하고 자극이 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록 성인들은 느낄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전류도 크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우리는 아이가 더 이상 휴대폰을 만지지 못하게 말렸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이미 구순기를 넘겼는데도 휴대폰에 열광했다. 부모가 다른 데 신경 쓴다 싶으면 아이는 언제나 휴대폰을 노렸고,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휴대폰만 줄 것 같으면 줄레줄레 따라나섰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데 이는 결코 녀석만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만큼 우리들의 일상에 휴대폰이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부모들이 매일 신주단지 모시듯 만지작거리는데 아이가 어찌 휴대폰을 궁금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특히 아이는 제 엄마의 폴더 휴대폰보다 나의 스마트폰을 몇 곱절 더 좋아했다. 비록 몇 번 혼난 까닭에 마음대로 손을 갖다 대지는 못하지만 가끔 내게서 스마트폰을 건네받을 때면 아이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뭘 안다는 듯, 한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액정을 건드리는 모습이라니. 물론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나 역시 아이에게 맞는 어플을 다운받아 가끔 하나씩 틀어주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팔자 좋은 까꿍이 TV 시청 중
팔자 좋은 까꿍이TV 시청 중 ⓒ 정가람

아뿔싸, TV를 틀어버렸다

휴대폰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까꿍이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보물은 바로 TV다. 처음에는 리모콘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그 리모콘으로 TV를 틀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마음에 들지 않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부모가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릴 때까지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아이.

지금이야 아이가 TV를 너무 많이 볼까 잔소리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에게 TV를 먼저 보여준 것은 우리였다. 아이가 한창 시끄럽게 징징대다가도 TV만 틀어주면 최소한 30분은 집중하고 가만히 있기에 그 꿀 같은 30분을 위해 TV를 틀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만의 대통령' 뽀로로만 나오면 아이가 초집중한 채 부모에게서 시선을 거두는데, 어디 그 유혹을 이겨내기가 쉬운 일이겠는가.

대통령과의 조우 뽀로로, 그들만의 대통령
대통령과의 조우뽀로로, 그들만의 대통령 ⓒ 정가람

처음에 아이는 현실과 TV를 구분하지 못했다. 아이는 가끔 TV의 뒤를 보며 혹여 화면 속의 사람들이 그 뒤에 있는지 확인했고, TV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 같이 따라 치고, TV 속 인물이 웃으며 카드를 건네주면 그걸 잡겠다며 TV 화면을 만졌다. 어린 눈에 TV는 현실의 연장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는 금세 TV의 메커니즘을 터득했다. 물론 방송국에서 쏜 전파를 수신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최소한 부모가 전원을 꼽고 리모콘을 만져야 TV가 나온다는 사실과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프로그램은 부모가 마음만 먹으면 틀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당장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의 주제곡만 나와도 춤을 추는 아이 앞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는 부모. 과연 난 이 중독성 강한 TV로부터 어떻게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가장 큰 숙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키보드 두들기는 까꿍이 이 기회를 놓칠쏘냐
키보드 두들기는 까꿍이이 기회를 놓칠쏘냐 ⓒ 정가람

진정한 '끝판 대장'이 나타났다

휴대폰과 TV. 그러나 아이의 IT 사랑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걸 합쳐도 포기할 수 없는 바로 그것, 컴퓨터가 등장한 것이다.

비극적이게도 아이를 컴퓨터로부터 격리시키기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어차피 아내가 집에서 글을 쓰는 관계로 컴퓨터는 필연적으로 켤 수밖에 없는 터, 아이는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고 그만큼 일찍 그 재미를 알아버리고 만 것이다.

컴퓨터의 재미. 자신이 자판을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움직이면 뭔가 움직이고 적히는데 어찌 그 재미를 휴대폰과 TV 따위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컴퓨터를 못하게 하면 그토록 서럽게 울 수밖에.

모니터 앞의 심각한 그녀 뭘 아는 듯 쳐다보는 아이
모니터 앞의 심각한 그녀뭘 아는 듯 쳐다보는 아이 ⓒ 정가람

아마도 컴퓨터를 대하는 아이의 흥미는 내가 제일 처음 8비트 컴퓨터로 오락을 할 때 느낀 재미와 맞먹을 것이다. 흑백 화면에 아주 단순한 내용의 오락이었지만 생전 처음 키보드를 누르며 느꼈던 그 떨림. 결국 지금 우리 아이는 컴퓨터만 만지면 내가 체험했던 감동(?) 비스무리한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말린다고 그게 쉽게 말려지겠나. 

아이는 컴퓨터를 하면서 눈치가 늘어만 갔다. 비록 몇 번의 큰소리 때문에 부모 앞에서 대놓고 컴퓨터를 만지지 못하지만, 아이는 조금만이라도 기회가 되면 키보드를 이것저것 눌러보기 바빴고, 컴퓨터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부모에게 잘 보이려 했다. 내가 노트북을 펴기만 하면 어느새 내 무릎 위에 앉아 애교를 부리는 까꿍이. 아빠의 입장으로서 어린 딸의 그 간절한 눈빛을 저버리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노트북 시켜줘 좌절한 듯 애교부리는 아이
나도 노트북 시켜줘좌절한 듯 애교부리는 아이 ⓒ 정가람

휴대폰이나 TV, 그리고 컴퓨터는 앞으로 이 아이가 살아가는 시대에 있어 공기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과유불급'. 과연 난 계속 성장하는 이 아이에게 어떻게 중용을 가르치며 자제력을 키워줄 수 있을까. 아이들의 IT 사랑은 우리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만든다.

"까꿍아. 그만하고 무릎에서 내려와라. 아빠, 이제 글 올려야 된다."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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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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