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추억
바야흐로 봄이다. 무채색의 추운 겨울이 가고 화려한 꽃들이 산하를 수놓는, 가슴 설레는 계절 봄이 왔다.
봄은 이름 그대로 무엇을 보는 계절. 나는 오랜만에 지리산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제각기 봄의 풍경을 하나씩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회색 도시에서 자란 나의 봄의 전형은 지리산 섬진강변에 있기 때문이었다.
15년 전이던가? 내가 처음 섬진강을 찾았던 건 순전히 그 예쁜 이름 덕분이었다. 왠지 고결하고 청아한 느낌의 섬진강. 그러나 실제 섬진강을 보는 순간 난 그 이름에 대한 환상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구례에서부터 하동까지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의 모습은 서울에서 한강만 보며 살아왔던 나에게 충격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소위 강변 재정비로 직선화되어 있는 인공적인 강줄기와 아름다운 지리산을 배경으로 하얀 백사장을 드러낸 강줄기가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때는 4월 초. 섬진강은 그 맑은 물살과 함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꽃 역시 품고 있었다. 구례에서 하동까지 강변을 따라 쭉 펴 있는 벚꽃과 강 너머 아스라이 보이는 매화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 그 많은 사람들이 섬진강, 섬진강을 이야기 하더니 바로 이곳이 진정한 봄 길이려니.
이후 난 봄만 되면 섬진강변을 떠올렸고 항상 그곳을 그리워했다. 그때 먹은 하동 재첩의 구수함과 함께 섬진강은 나의 봄의 고향이요, 전형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오늘(4월 8일). 난 오랜만에 이 찬란한 계절에 또다시 섬진강을 찾았다.
길 중의 길, 쌍계사 벚꽃십리길
예전과 마찬가지로 구례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 일찍 화엄사를 둘러보고 하동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아이가 함께였다. 산청에서 자란 아내야 그렇다 치지만, 아이에게는 이번 섬진강이 무의식적으로 봄의 전형이 될 수 있을까?
구례를 나서자 길가에 개나리가 샛노랗게 피어 있었다. 개나리가 이렇게 만발하면 벚꽃은 채 피지 않았다는 이야기라 약간 불안했지만, 구례가 바로 산 밑이어서 봄이 더딜 뿐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물에 산란된 햇살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섬진강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나의 봄의 고향. 때마침 섬진강변의 벚꽃은 한창 절정을 이루고 있었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같이 탄성을 지르게 했다. 굽이굽이 강변을 따라 피어있는 벚꽃길의 아름다움.
만발한 벚꽃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르는 길, 소위 쌍계사 벚꽃십리길에서 그 절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물론 수많은 인파에 정신없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들은 그 번잡함과 수고로움마저 잊게 했다.
혹자들은 이곳 벚꽃을 서울 여의도 윤중로의 그것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도심 속에 섬처럼 핀 윤중로의 벚꽃이 어찌 지리산을 배경으로 늘어선 이곳 벚꽃 풍경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혹여 무릉도원이 있다면 아마도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그야말로 4월의 쌍계사 벚꽃십리길은 길 중의 길 그 자체였다.
우리는 수많은 인파에 치여 길 끝에 있는 쌍계사는 차마 오르지 못한 채 차를 돌려야만 했다. 평일인데도 이 정도라면, 주말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아내는 그 가늠할 수 없는 인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그렇게라도 많은 사람들이 봄내음을 맡을 수 있다면, 그래서 사회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일 것이다.
쌍계사 벚꽃십리를 보고 싶으신가?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 당장 출발하자. 더불어 시 한 수 읊조리는 여유도 함께 하시길.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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