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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서만 네 명의 학생들과 한 명의 교수가 잇따라 자살한 카이스트(KAIST)가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KAIST의 위기는 서남표 총장의 위기이기도 하다. 학생들을 '학점 기계'로 만들어 '과학영재 교육의 산실'을 '경쟁교육의 산실'로 만든 것이 학생들의 자살과 연관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2006년 취임 이후 '교육 개혁의 전도사'로 칭송받아 왔던 서 총장이기에 이런 시선은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과 여론의 질타뿐만이 아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온라인상에서 거침없이 학교 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총장을 직접 겨냥해 대자보를 붙이고 1인시위를 하는 등 동료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뒤섞인 불만이 폭발 직전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급기야 지난 8일부터는 총장의 사퇴요구가 회자되고 있다.

 

서남표 총장에 대한 사퇴 주장이 놀라운 것은 아니다. 카이스트는 학생의 3번째 자살 이후 "상담센터 인원을 늘리겠다", "축제기간에 오후 강의를 하지 않겠다", "성적에 따른 수업료 납부액 조정을 협의해보겠다"는 등 사태의 절박성을 깨닫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더구나 서 총장은 홈페이지에 남긴 메시지를 통해 학생들의 정신력을 탓하는 듯한 표현을 했다가 불과 며칠 후에 다시 자살 사건이 발생하자 발 빠르게 사과했다.

 

하지만 '징벌적 등록금'은 폐지하겠지만 학생들이 또 다른 학습 부담의 주원인으로 폐지를 요구하는 '100% 영어강의'는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자살에 대해 학교 내·외부에서 곱지 않은 시각과 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정작 총장은 진정성 있는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니 사퇴 주장이 나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서남표 총장의 '독단'과 '불통'이다. 그는 조국 교수가 트위터를 통해 서 총장의 사퇴를 언급하자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라며 일축해버렸다. 지난 7일 네 번째 학생의 자살 직후 연 긴급기자회견에서 학생과 학부모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한다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서남표 총장이 총학생회 주최 간담회에서 보인 태도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8일 오후 7시에 간담회를 열 예정이었지만 '간담회가 언론에 공개되면 총장이 나오지 않겠다'면서 간담회장에서 언론인들의 퇴장을 요구한 것이다. 약속 시간에서 1시간이 지난 뒤에 나와 언론인들의 퇴장을 재차 요구했고 결국 모든 언론인들이 간담회장에서 철수했다고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서 총장은 총학생회가 추진한 간담회 인터넷 생중계와 문자중계마저도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도 "변명만 늘어놓았다"며 불만에 가득 찬 학생들의 반응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다. 일부 학생들은 화가 나서 간담회장을 중간에 뛰쳐나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언제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라고?

 

네 명의 학생들이 불과 석 달여 만에 잇따라 자살했다면 도의적이라도 책임을 통감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독단적이고 무리한 학교 운영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보인 서 총장의 모습은 실망스러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한다. 카이스트의 서남표 체제가 안타까운 제자 네 명의 죽음 앞에서도 허심탄회한 소통마저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관료적이고 권위적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더불어 그가 추진해왔던 개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개혁이었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한다.

 

서남표 총장은 언론에 '교육개혁의 전도사'로 자주 이름을 올려왔으며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서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 신성장동력 기획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명박 정부가 내세워왔던 녹색성장과 융합산업 추진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2009년 카이스트 졸업식에 이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으며, 2009년부터 정부 권고로 각 대학이 대폭 확대 실시했던 입학사정관제도 서 총장이 대통령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을 정도니 서 총장에 대한 MB의 신임은 각별하다. 실제로 서 총장은 교과부를 통하지 않고 대통령 및 청와대와 직접 독대하고 교감을 나눠왔으며, 이런 그의 태도 때문에 카이스트를 소관하는 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의 불만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서남표 총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것으로 비침으로써 논란이 되었을 정도다. 2009년 추가경정예산 편성 과정에서 카이스트는 온라인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 프로젝트로 갑자기 500억 원이나 가져가는 매우 이례적인 성과를 낳기도 했는데 이는 서남표 총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강력히 추천했던 사업이었다.

 

그의 명성만큼이나 비판과 논란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총장 선출을 앞두고 총학생회와 학내 신문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부생 53.4%, 대학원생 49.5%가 총장 연임에 반대했으며 찬성은 23.3%와 29.1%에 그쳤다. 학생들은 정책 자체에 대한 불만보다는 소통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더 많이 들었다. 교수 신규 임용이나 테뉴어 심사에서 총장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거나 총장이 쓴 교재를 모든 신입생에게 필수과목으로 요구해 논란을 빚으며 마치 사립대처럼 독선적으로 운영한다는 불만이 간간이 터져 나왔다.

 

2009년 막대한 추경예산을 받았던 온라인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 사업이 교과부 평가에서 상용화가 어렵다며 낙제점을 받았다. 이 사업의 경우 사전 타당성 검증도 받지 않고 막대한 예산을 받아 국회에서도 그 배경에 의혹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 논란에 대해 서 총장이나 그의 측근들은 "언제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 "개혁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의 불만일 뿐"이라는 식의 반응으로 일관해왔다.

 

명예로운 사퇴... 때를 놓치지 않기를

 

지나친 경쟁중심의 학교운영을 '개혁'으로 내세우고 성과와 목표를 위해 '소통' 대신 '독선'을 선택한 서남표 총장의 모습은 흡사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빼닮은 듯하다. 일제고사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학교간 경쟁을 부추기는 경쟁교육을 '교육개혁'으로 포장하고 야당의 비판을 가볍게 무시하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가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알 수 있을 듯하다.

 

4명의 과학 수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담한 사태에도 일부 보수언론은 서 총장의 개혁이 중단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 총장을 흔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강고해진 '경쟁'과 '성과' 중심의 통치 이념이 훼손당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남표 총장 구하기'는 이미 늦었다.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의 치열한 경쟁으로 학생들을 내몬 결과, 학교구성원들은 오래전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학생들과 교수의 잇따른 자살이 경쟁 중심의 독선적 학교운영과 관련 없다면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명문대가 되기 위해선 카이스트와 같은 운영 방식이 필요하고 그로 인한 부작용 정도로 간주하는 주장은 더 이상 하지 말았으면 한다. 만약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남아있는 학생과 교수들이 느끼는 심정은 어떨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카이스트가 충격을 딛고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서남표 총장의 결단뿐이다. 물론 그가 내릴 수 있는 결단의 방향이나 종류는 다양하지 않다. 물러나느냐 더 깊은 파국의 수렁에 빠져드느냐이다. 본인을 위해서도 카이스트를 위해서도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철저한 진단과 새로운 처방은 새로운 리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대안이나 방향도 카이스트를 사랑하는 내부 구성원들과 성원하는 외부의 격려로 훌륭하게 도출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서 총장의 사퇴가 카이스트의 새로운 도약을 보장하지는 않겠지만, 서 총장의 사퇴 없이는 카이스트가 직면한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카이스트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첫 단추를 끼우고 싶다면, 진정으로 카이스트의 발전을 원한다면, 서 총장은 사퇴해야 한다. 명예로운 사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때를 놓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안민석 기자는 17, 18대 국회의원이며 현재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태그:#서남표, #이명박, #카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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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안민석입니다. 제 꿈은 국민에게는 즐거움이 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삶의 모델이 되는 정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마이에 글쓰기도 정치를 개혁하고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 중에 하나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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