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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하게 우리는 현대에서 가장 커다란 재난을 목격하고 있다." (프랑스 원전업체 아레바 부사장)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인 3월 11일, 일본열도를 뒤흔들어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최대의 사상자와 피해자를 남긴 규모 9.0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예기치 못했던 또 다른 제3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바로 후쿠시마 원전 폭발에 의한 방사능 오염이다.

 

예상을 넘는 규모의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본의 동북지역에 위치한 후쿠시마 원전에서 연쇄적으로 수소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고 플루토늄을 비롯한 방사성 물질을 쉼 없이, 이 시간에도 뿜어내고 있다.

 

일본 정부와 원전 운영자인 도쿄전력이 냉각기능을 상실한 원자로의 폭발을 막기 위해 이른바 '결사대'를 조직하여 바닷물을 주입하거나 원자로 내에 질소를 넣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원자로를 냉각하기 위해 물을 계속 주입할 수밖에 없고 그 물은 결국 고농도의 방사능 오염 물질이 되어 바다로 흘러나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사석에서 동일본 지역(도쿄 주위를 포함한 동북 전 지역)이 망가질지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국민들의 동요를 최대한 막고 냉정하고 침착한 대응을 촉진하기 위하여 여러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발표는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일본 원전을 둘러싼 충격적인 내용들이 보도되었다. 후쿠시마 원자로를 설계한 GE(미국의 대표적 다국적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의 전직 설계사 데일(Dale Bridenbaugh)은 일본의 <주간 겐다이>와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후쿠시마에서 운용되고 있는 원자로 Mark I은 지진이나 쓰나미 등에 의해 원자로의 격납용기가 파손될 가능성이 높은 설계 오류 제품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회사에 조업 중단을 건의했지만 회사에서는 원전 판매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데일의 의견을 무시하였다는 것이다. 데일은 "100퍼센트 안전한 원전을 만들 수는 없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에서 원자력 개발 주도한 건 우익

 

현재 55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운용되고 있는 일본은 미국, 프랑스에 뒤를 잇는 원전 대국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지진과 쓰나미가 가장 잦은 지역이다. 이런 일본에 왜 이렇게 많은 수의 원전이 필요한 것일까. 그동안 일본 원전이 가장 안전하다는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왔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실제로는 많은 사고가 발생해왔다. 또한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안전을 도외시한 관료주의적인 행태가 그대로 노출됐다.

 

일본 원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는 측면이 엿보인다.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는 참상을 겪은 일본에서는 1950년대에 핵무기와 원자력 문제를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이러한 일본에서 원자력 개발을 주도한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우익 보수 정치가인 나카소네(中曽根康弘) 전 총리와 우익 성향의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의 사주 쇼리키(正力松太郎)이다. 나카소네는 1953년 9월 하버드대 조교수였던 키신저의 초청으로 세미나에 참가한 후 원자력 주도자로 돌변했다. 쇼리키는 간토대지진 당시 경찰 책임자로서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를 색출하고 검거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무부장으로 진급한 인물이다. 와세다 아리마(有馬哲夫) 교수는 자신의 저서 <원발(原発)·정력(正力)·CIA>(新潮社、2008年)에서 패전 이후 쇼리키가 미국 CIA의 정보원이었다고 밝혔다. 쇼리키는 지금도 일본 원자력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안전을 걱정하는 지역주민의 반대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한편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회유책을 써서 원자로의 운용 대수를 늘려왔고 또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번에 지진과 쓰나미가 원전을 타격한 것이다.

 

"사태 수습, 등산에 비유하면 산에 오르기 시작하지도 못한 단계"

 

이번 대지진 후 일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예명이 이시다인 연극배우가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한 글이 반향을 일으켰다. 이시다는 블로그에 어린 시절 야마구치현의 원전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험한 일본 경찰의 폭력에 대해 기록했다.

 

"(…) 이것이 일본이라는 나라인가. 서서히 엄습하는 신체의 고통을 참으면서 생각했다. 왜 소중한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정치적인 일은 모르겠다. 자기들에게 방해가 되는 존재라면 어린이조차도 저렇게 광기를 머금은 웃음을 지으며 마구 패도 좋은 법이 어디 있는가 싶었다."

 

일본 원자력발전소 건설 추진의 이면에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과 장차 핵무기 개발을 염두에 둔 일본 우익의 군사적 목적, 그리고 정경유착을 통해 국민의 안전과 알 권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해온 일본 정부의 오류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 결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일본의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고 있다. 이미 방사성 물질 누출로 인한 대기 오염이 일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주변국의 사전 동의 없이 고농도의 오염 물질을 태평양에 방출해 방사성 물질 오염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진과 쓰나미는 예측불허의 자연재해이지만 원전 폭발에 의한 방사능 누출은 명백한 인재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일본 정부의 철저한 정보 통제와 관료주의적 행태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우리는 지금 사태 수습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수습해야 할 문제를 겨우 파악한 것에 불과합니다. 등산에 비유한다면, 등산을 하기 전 멀리 산꼭대기를 바라보고 있는 단계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도쿄전력 직원의 NHK 인터뷰는 앞으로 재난을 해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를 보여준다. 기자가 도쿄 현지에서 느끼기에는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불거진 원자력발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이 아직 너무도 멀다.


태그:#일본 대지진,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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