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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과 스릴러는 통상적으로 여름철에 '반짝' 인기를 얻기 때문에 그때를 맞춰서 출간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즘 소개되는 작품을 살펴보면 그런 생각이 옛것인양 느껴진다. 해외에서 호평 받은 작품들이 두루 출간되면서 추리소설과 스릴러도 시기를 가리지 않고 독자를 만나고 있다.

책이란 판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계절에 상관없이 이 분야의 책들이 출간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장르소설의 독자들도 겨울이든 봄이든 상관없이 작품들을 꾸준히 찾고 있다는 걸까? 흐름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속삭이는 자>
 <속삭이는 자>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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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출간 즉시 20만부가 판매됐다는 도나토 카리시의 <속삭이는 자>와 마이클 코넬리의 <트렁크 뮤직>이 이맘때 출간된 것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들은 구태여 그것에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장기를 보여주려고 달아있다. 살짝 스치기라도 하면 저 먼 곳까지 폭주할 기세다. 멀리서 봐도, 그들의 외모는 심상치 않다.

<속삭이는 자>의 속내는 보이는 즉시 사람을 기겁하게 만든다. 어느 숲에서 다섯 개의 구덩이가 발견된다. 그곳에는 하나의 왼쪽 팔이, 각각 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놀라고 경찰이 급히 출동해 사건 현장을 조사한다. 경찰은 그것이 실종된 소녀들의 것임을 눈치 챈다.

얼마 전부터 소녀들이 실종된 터였다. 경찰은 범인의 흔적조차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단서라고 나타난 것이 소녀들의 팔이었다. 그때 경찰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근처에서 또 하나의 왼쪽 팔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범인이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추측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건에 투입된 아동납치 전문수사관 밀라와 범죄학자 게블러는 여섯 번째로 발견된 팔의 주인공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팔이 잘린 아이가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20일이었다. 경찰들은 범인을 잡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소녀를 살리고 싶어 갖은 애를 쓰지만 단서는 보이지 않는다. 고작해야 범인이 던져주는 단서들이 등장할 뿐이다.

도대체 이 범인은 누구인가? 어떻게 생긴 사이코패스인가? <속삭이는 자>에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그러나 가장 위협적인 악의 대변자를 보고 있으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이 떠오른다. <모방범>의 범인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악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하려 했다. 그래서 인간을 넘어서려 했었다. 그리하여 어느 것보다 큰 공포를 선물해주곤 했었다.

<속삭이는 자>를 보면서 그런 공포가 느껴진 건 왜일까. 어디선가 나타나 '악'을 속삭이고 '악'을 행하게 하는 그 모습들은 왜 이리 소름 끼치게 만드는 걸까. <속삭이는 자>가 만드는 긴장감과 전율감, 그리고 구성의 치밀함은 남다르다.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라 진짜 스릴러의 등장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스릴러·추리소설은 여름에만 읽는다는 생각 버려야 할 때

<트렁크 뮤직>
 <트렁크 뮤직>
ⓒ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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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넬리는 최근 몇 년간 국내에 꾸준히 소개된 크라임 스릴러 작가다. 더불어 '해리 보슈 시리즈'도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처음에는 <시인>이라는 대작으로 알려졌지만 이제는 '해리 보슈 시리즈'라는 단어가 작가의 이름에서 연상되는 걸 보면 시리즈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최근에 출간된 <트렁크 뮤직>은 해리 보슈 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다.

살인자를 잡는데 탁월한 재주를 지녔지만 절대 남과 타협하지 않는 독불장군 해리 보슈는 1년 만에 할리우드 경찰서 살인전담팀으로 복귀한다. 일대는 언제나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경찰들은 그것을 쫓는데 지쳐있었다. 해리 보슈의 복귀는 그들에게는 꽤 반가운 일이었다.

해리 보슈는 어떨까. 그도 그것을 반기고 있었을까? 그의 마음을 알아볼 새도 없이 차 트렁크 속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소설은 서서히 그 막을 연다. 조직과 관료들에게 미움 받는, 정의롭지 않아 보이지만 누구보다 정의로운, 전과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하드보일드한 질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시리즈의 한 작품답게 <트렁크 뮤직>은 이야기가 탄탄하다. 덕분에 해리 보슈는 물론이고 조연으로 등장하는 동료 경찰들까지 캐릭터가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흡인력 강한 이야기를 배경 삼아 매력적인 경찰들이 그들만의 무대를 보여주는 셈인데,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완성도가 높다. <트렁크 뮤직>으로 마이클 코넬리라는 작가명과 '해리 보슈 시리즈'라는 이름이 더 알려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예감은 더 먼 곳으로 향한다. 이제 스릴러는 물론이거니와 추리소설도 여름에만 읽는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려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디선가 끊임없이 누군가가 속삭이는 것 같다. 그것은 반가운 일일까. 적어도 최근에 나온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에 대한 답은 긍정을 향하고 있다. 어쩌면, 이미 그것이 대세인지도 모르겠지만.

덧붙이는 글 | <속삭이는 자 1> / 도나토 카리시(지은이) / 이승재(옮긴이) / 시공사 / 2011년 4월 / 1만2000원
<트렁크 뮤직> / 마이클 코넬리(지은이) / 한정아(옮긴이)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3월 / 1만3800원



속삭이는 자 1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시공사(2011)


태그:#스릴러, #마이클 코넬리, #도나토 카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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