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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개가 넘는 번역 오류 수정 등으로 '누더기' 비준안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한글본에서 또다시 오류가 나왔다. 이번에도 협정문 본문과 부속서 등에서 영문 번역을 엉뚱하게 하거나, 맞춤법이 틀리는 오류였다. 특히 정부가 지난달 말 수차례에 걸쳐 재검독을 통해 고쳤다는 207개의 오류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것들이다.

 

이뿐 아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협정문 영문본도 한글본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함께, 한-EU FTA 협정의 경제적 효과 부풀리기 논란까지 다시 일고 있다.

 

이 때문에 12일로 예정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비준동의안 상정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이어 세 번째 제출된 한글본에서도 또다시 오류가 드러남에 따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사퇴 요구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207개 오류 잡아놓고도, 또다시 번역오류 드러난 한-EU FTA 비준동의안

 

11일 MBC <뉴스데스크>에 따르면, 영문본의 포도주스에 관한 관세철폐를 언급할 때 '농축된 것 또는(or) 주정'으로 돼 있는 것을 '농축된 것과(and) 주정'으로 번역해 놨다. '또는'을 '그리고'로 잘못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어 영문본의 '영주권'을 '상시 거주'로, '하도급 계약'을 '종속 계약'으로 다르게 옮겨 놨다는 것이다.

 

틀린 맞춤법도 여전했다. 'lasor or other light (레이저 또는 기타)'에서 '또' 자가 빠지면서 '레이저는 기타'라는 엉뚱한 말이 돼 버렸다. 이어 원산지 의정서 부분에선 '곡물(grains)'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등 번역 누락 사례도 나왔다.

 

문제는 이들 오류들이 외교부가 지난달 말 4차례에 걸친 재검독으로 고친 207개의 오류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12일 새벽 별도의 해명자료를 내고, "해당 부분에서의 'or'는 부정문의 'or'이기 때문에 '그리고'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고 반박했다.

 

이어 '영주권'의 '상시거주'로의 오역에 대해선, "법률회사의 검토 결과, '상시거주'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결론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맞춤법에서 틀린 점과 '곡물' 등의 번역 누락에 대해선, 기획재정부의 고시 관세분류표를 토대로 양허표를 번역하다가 오류가 생겼다고 밝혔다. 교섭본부는 "'X-ray'가 번역에 누락돼 추가했으며, 'fair trade practice(공정한 무역관행)도 '공정한 거래관행'으로 고쳤다"고 전했다.

 

한글본과 영문본 서로 다르다?... 외교부 "동일, PDF 변환과정서 일부 누락"

 

세 번째 비준안의 추가 오류와 함께, 한글 비준동의안이 유럽의회가 지난 2월 통과시킨 영문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겨레>는 "한-EU FTA의 대한민국 양허(개방)표 영문본을 비교하면, 두 협정문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곳이 36군데로 나타났다"면서, 이같은 오류는 정부가 새롭게 국회에 비준안을 제출하면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게다가 정부가 국회에 작년 10월과 올해 2월 28일, 4월 6일(3차)에 내놓은 비준동의안 영문본도 서로 달라, 한국과 EU간 정식 서명한 협정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까지 든다고 전했다.

 

통상교섭본부는 "종이로 인쇄돼 국회에 제출된 비준안과 정식서명된 최종본은 같다"면서 "지난 6일 국회 비준안 제출 때 PDF 파일 형태로 CD에 수록해 제출하면서, 일부 글자가 파일 변환 과정에서 가려져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EU 집행위원회 웹사이트에 올려진 상품 양허표의 영문본은 작년 10월에 정식으로 서명된 최종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11일 저녁 10시께 최종본으로 교체됐다"고 교섭본부 쪽은 밝혔다.

 

교섭본부 관계자는 "일부 글자가 빠지는 등의 단순오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국회에 가서 잘 설명하고 충분한 협의를 갖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통상시민사회단체인 국제통상연구소는 12일 한-EU FTA 협정에 따른 정부의 재정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도 내놓는다. 정부는 그동안 유럽과의 FTA를 통해 수조 원의 세금 증대 효과가 있다고 해왔다. 하지만 연구소는 이같은 정부 주장이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져 있으며, 오히려 매년 5000억 원의 세금 수입이 감소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12일 국회 외교위에서 한-EU FTA 비준안 상정 불투명... 김종훈 거취 논란

 

12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정부가 제출한 한-EU FTA 비준안 상정을 논의한다. 이미 2차례에 걸친 번역오류로 '누더기' 비준안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다시 제출한 비준안에서 또다시 오류가 발견됐기 때문에 상정 자체가 불투명하다.

 

남경필 외교통상위원장은 일단 여당 단독으로 상임위 처리는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비준안의 상임위 상정과 함께 전문가 공청회 등을 열겠다는 입장이다. 이어 오는 15일께 외교위 전체회의를 열어 표결로 비준안을 처리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당은 먼저 농업보호 대책 등을 요구하면서 이번 주 안으로 비준안을 처리하기란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유선호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강기갑 민주노동당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등은 비준안에 대한 철저 검증을 요구하면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 대한 해임 결의안까지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김황식 총리까지 나서 번역 오류에 대해 김 본부장의 책임을 묻겠다고 한 상황에서, 향후 김 본부장의 거취도 주목된다.


태그:#한EU?FTA, #김종훈,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남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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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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