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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부터 잇따라 발생한 학생 4명의 죽음으로 카이스트가 언론의 집중을 받고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을 때 한 달 내내 모든 신문들이 1면에 이 사건을 보도했듯이, 최근 대부분의 신문에서 카이스트 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에서 자살로 사망하는 인구가 10만 명당 2006년에 21.5명에서 2009년에는 28.4명으로 증가하였고, 이 수치는 OECD 국가 중에 최고라 하니 자살이 이미 사회문제가 되었다. 특히 2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 하니, 석 달 사이에 4명의 학생들이 자살로 목숨을 잃은 카이스트 사태는 언론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특히 자살의 원인이 과도한 경쟁교육과 징벌적 차등등록금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최근 몇 년간 카이스트가 펼쳐왔던 '서남표식 과열경쟁 교육정책'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언론사들이 카이스트 사태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한 관심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 현재 카이스트 내에는 대전지역 언론사뿐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수십 명의 기자들이 며칠째 취재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 덕분에 많은 신문들이 '서남표식 교육정책'을 비판하며 개혁적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고, 카이스트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생과 교수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기사를 뽑아내기 위해 과도한 취재경쟁을 하여 교수와 학생 등을 괴롭히기도 한다.

4월 11일, 카이스트 본관 앞에서 '비상학생총회 개최'를 앞두고 카이스트 학부총학생회 기자회견이 진행되었고 이자리에 60여명의 기자들이 몰렸다.
▲ 카이스트 총학생회 기자회견 4월 11일, 카이스트 본관 앞에서 '비상학생총회 개최'를 앞두고 카이스트 학부총학생회 기자회견이 진행되었고 이자리에 60여명의 기자들이 몰렸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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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 기자회견장에 지방지, 전국일간지 등 60여명의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카이스트사태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가 크다는 것이 입증해주었다.
▲ 카이스트 학부총학생회 기자회견 총학생회 기자회견장에 지방지, 전국일간지 등 60여명의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카이스트사태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가 크다는 것이 입증해주었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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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에 있을 비상학생총회 개최를 앞두고 진행한 지난 11일의 카이스트 학부총학생회의 기자회견에 6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 왔다. 이날 기자회견은 카이스트 학부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의 만장일치로 4월 13일에 비상학생총회를 개최하기로 했고, 비상총회의 주요 내용은 "학교정책 결정과정에 학생 대표 차여 보장", "서남표 총장의 '경쟁위주제도의 개혁' 실패 인정 요구"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 '학생 요구안' 제시"이며, 더 이상 학생사회가 슬픔을 겪지 않도록 즉각적인 학교의 시정을 촉구할 것이라 밝히는 자리였다. 서남표 총장의 거취와 관련된 입장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서 총장의 거취에 대한 입장을 거듭 묻는 등 민감한 질문에 집착하며 기삿거리를 찾는 듯했다. 끝내 학생들이 서 총장의 거취에 대한 입장발표를 유보하고 기자회견을 끝마치자, 돌아서는 학생대표자들을 향해 기자들이 몰려가서 인터뷰를 시도했고, 이 과정을 본 한 기자는 몸싸움이 난 줄 뒤쫓아 갔다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마치 학생들이 서 총장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발표하면 현장에서 즉시 기사를 쏠 것 같은 저격수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국 학생들은 서 총장의 거취문제에 대한 답변을 유보한 채 자리를 떠났다.

대전지역에 있는 한 기자는 이런 모습에 대해 "대부분의 중앙언론사 사회부 기자들까지 내려와 있으면서 언론이 대전충남지역에서 이 정도의 관심을 보인 것은 태안 기름유출 사고 이후 처음인 것 같다"며 과열된 취재경쟁에 놀라워했다.

덧붙여 그는 "이번 카이스트 사태는 태안 기름유출사고나 연평도 사건의 경우와 달리 취재현장이 대학교라는 좁은 현장이고, 취재의 대상이 소수 집단에 집중되다 보니 구성원들이 기사 한 줄 한 줄에 대해 부담감이 크다"며 "이런 언론의 과도한 관심은 이번 사태를 조직이 정상적으로 극복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본 기자도 카이스트 졸업생으로, 요즘 학생회 후배들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바쁘다는 연락을 받고 후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당일 학교를 방문했다가 기자회견 현장을 지켜보았다. 기자회견 후 후배들에게 줄 컵라면과 즉석밥을 들고 총학생회실을 방문하였는데, 총학생회 간부들과 제대로 인사조차 나눌 수 없을 만큼 정신없이 바빠했다.

한 학생회 간부는 "30분 간격으로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고 있고, 대책회의를 하고, 학생들을 만나며 논의하고 대응하다 보면 새벽 1시가 넘어서야 하루가 끝난다"며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총학생회실에 방문했을 때 몇몇 간부들은 방금 전 진행한 총학생회 기자회견 소식이 바로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모습들을 모니터링하며 한 줄 한 줄 언론의 반응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한 간부는 "<조선>과 <동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에서 과열경쟁교육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보도해주고 있어 고맙긴 한데, 추모촛불문화제를 진행할 때 기자들이 임팩트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추모분위기를 저해하는 촬영을 하거나, 과도한 집착취재를 하는 경우가 있어 그런 모습을 자제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석달 사이 자살로 목숨을 잃은 4명의 친구들을 위해, 카이스트 총학생회가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묵념을 하고 있다.
▲ 4명의 친구들을 위한 묵념 석달 사이 자살로 목숨을 잃은 4명의 친구들을 위해, 카이스트 총학생회가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묵념을 하고 있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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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은 치열한 과열 경쟁 속에서 터트릴 수도 있지만, 더 좋은 특종은 이런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다른 언론이 하지 않았던 꾸준한 취재와 보도를 통해 만들어졌어야 한다. 지방지와 전국일간지, TV 뉴스에서까지 카이스트 사태에 대한 천편일률적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전국적으로 진행된 언론의 관심과 보도가 이번 카이스트 사태가 근본적 해결을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20대 대학생들이 석 달 사이에 4명의 친구들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기도 전에 과도한 언론의 집중까지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였다. 특히 그 학생들의 선배로서 그 모습을 지켜보니 더욱 안타까웠다. 이번 카이스트 사태가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들이 주체가 되어 해결되고, 특히 가장 피해와 상처가 크고, 밀접한 이해가 걸려 있는 당사자인 학생들이 스스로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언론사들은 과도한 과열기사경쟁을 자제하고, 학생들을 배려하는 취재를 부탁한다.


태그:#카이스트, #카이스트 총학생회, #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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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북한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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