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사건의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는 듯한 영화배우 이준기 출연의 안보동영상이 논란을 빚은 데 이어 이번엔 탤런트 박시후와 가수 배슬기가 나온 안보 동영상을 서울의 한 경찰서가 이 지역 초·중학교에 상영토록 해 말썽이 일고 있다.
더구나 이 동영상에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를 친북행위인 것처럼 묘사하는 내용도 들어 있어 참여연대와 일부 교사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3일 입수한 서울중랑경찰서의 '업무협조 의뢰'란 제목의 '비공개' 공문(4월 1일자)을 보면 이 경찰서는 이 지역 상봉초·면목중 등 6개 초·중학교에 '슬기와 시후가 함께하는 안보이야기'란 제목의 동영상을 상영토록 요청했다.
중랑경찰서 관계자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해 이 지역뿐 아니라 전국 상황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찰서는 공문에서 "우리 경찰서에서는 귀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안보의식 고취 및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위한 안보홍보를 실시하고자 한다"면서 "전교생 상대 안보영상자료 관람 실시"와 "학년별 관람 사진 1매씩 촬영 이메일 회신"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일선 교사들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찰서가 학교에 동영상 상영을 강요하는 듯한 공문을 보낸 것도 월권이지만, 안보동영상 내용이 반교육적"이라고 비판했다.
촛불시위 보여주며 "어느 곳이든 위장간첩 존재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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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슬기와 시후가 함께하는 안보이야기 - 우리가 지키는 대한민국'은 경찰청에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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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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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찰서가 상영토록 요구한 안보 동영상 '우리가 지키는 대한민국'을 제작한 곳은 경찰청이다. 2009년 말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10분 23초 분량의 동영상 내용은 연예인 박시후와 배슬기가 자전거를 타고 북한 곳곳을 날아다니며 북한의 참상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박시후가 "근데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네요"라고 말하면 아사 직전의 북한 아이들을 보여주면서 내레이션으로 "북한 주민들이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많은 돈을 들여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는 식의 설명이 나온다. 이어 박시후가 재등장해 "저건 북한 미사일 아녜요?"라고 물으면 배슬기는 "저 북한 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는데…"라고 맞받는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내용은 2008년 촛불시위 모습을 보여주는 뒷부분. 7분 3초 이후 부분부터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 동영상이 나오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이어진다.
"현실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일부에서 북한의 핵이 민족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북한 핵개발의 심각성과 국제관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위험한 생각입니다."이어 "북한이 지금이라도 핵무기를 포기하기로 결심하면 국제사회와 경제적인 협력으로 남북한은 얼마든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친북 반미'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 2008년 5월쯤 열린 촛불시위에서 "함께 살자 대한민국"이란 손팻말을 든 시민들의 사진이 여느 시위의 모습과 함께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외면한 채 국가보안법은 철폐하고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여 미국에 대해서는 막연히 적대감을 가지고 북한에 대해서는 환상을 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적화통일하려는 북한을 돕는 것으로 극히 위험한 행동입니다."이어 동영상은 다음처럼 강조한다.
"어느 곳이든 위장간첩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중랑경찰서 "경각심 위해 학교에 부탁... 다른 의도 없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중랑경찰서 관계자는 "(동영상) 내용에 대해 일일이 분석하고 학교에 보낸 것은 아니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정훈장교 출신인 이 지역 한 학교의 H교사는 "안보교육은 필요하지만 경찰청의 동영상은 북한과 촛불시위를 벌인 남한 시민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특히 촛불시위 관련 내용은 현 정권의 정치적인 의도에 따라 학생들에게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반교육적인 내용이라 학생들이 볼까 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도 "이명박 대통령이 두 번이나 사과하고 식품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준 국민운동이었던 촛불시위를 친북으로 매도하는 내용에 경악한다"면서 "5, 6공 시대에도 경찰청이 정치중립성을 벗어나 이런 얼토당토않은 동영상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상영토록 하지는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중랑경찰서 정보보안과의 중견관리는 "국가 안보에 대해 학생들이 너무 모르고 있어서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해 경찰청에서 만든 동영상을 상영토록 학교에 부탁한 것이지 다른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같은 과 소속 또 다른 중견관리도 "경찰청 동영상 홍보를 관내 학교에 부탁한 것이지 강제적으로 강요한 것이 아니다"면서 "북한이나 촛불시위 세력에게 혐오감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일일이 내용을 분석하고 동영상을 학교에 보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