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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신바시역(新橋驛)에서 유리카모메(ゆりかもめ)를 탔다. 생긴 모습은 모노레일을 닮았지만 열차의 바닥을 보니 고무바퀴가 달렸다. 유리카모메는 드넓은 도쿄만을 가로질렀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고층빌딩들이 마치 열병식 하듯이 도쿄만에 모여 있었다.

오다이바(お台場)에 들어온 나의 가족은 거대한 쇼핑 군락을 여러 개 지나 텔레콤 센터 역에서 내렸다. 미라이칸까지 5분 정도를 걸었다. 마치 미래도시와 같은 오다이바 거리에는 예상 외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하늘 높이 솟은 해를 피해 그늘을 따라 미라이칸을 향해 걸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외관 자체가 즐거운 볼거리이다.
▲ 미라이칸 전경. 유리로 만들어진 외관 자체가 즐거운 볼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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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의 꿈을 키우기에 안성맞춤인 미라이칸

미라이칸은 유리와 메탈로 만들어진 건축물의 외관 자체가 거대한 볼거리이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미라이칸은 현대적인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다. 이 미라이칸의 입구에서 큰 공처럼 볼록 튀어나온 것이 돔 시어터인 '플라네타리움'인데, 거대한 상영시설을 건물 밖으로 튀어나오게 설계한 파격이 정말 마음에 든다. 미라이칸 주변은 오다이바에서도 가장 한적했는데 과거의 대전 엑스포장에 처음 들어섰던 것과 같은 설렘을 주었다. 전면 유리는 밖에서도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했고 거기선 해가 잘 반사되고 있었다.

오다이바의 숨은 명소, 미라이칸 입구는 깔끔했다. 모든 표는 자동발매기를 이용하여 판매하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다. 도쿄 관광안내책자에 있던 미라이칸 할인권을 안내데스크에 제시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가족 수에 맞게 공항에서 무료로 안내책자를 받았기에 3명 모두 할인을 받았다.

역시 이곳에는 어린 학생 자녀와 같이 온 일본인 가족들이 많았다. 미라이칸은 어린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안내데스크에서 팸플릿을 받아 특별관람 일정표를 찾아보고 각 층의 체험프로그램을 확인했다. 녹색 조끼를 입은 미라이칸의 안내원들이 여러 전시장에서 전시물을 설명하고 체험활동을 도와주고 있었다. 우리는 표 가운데에 있는 바코드를 찍으며 각 전시실로 들어갔다. 많은 어린이들이 심하게 만지고 체험하는 전시물들이 고장 하나 나지 않고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손과 발놀림이 자유로운 아시모는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 아시모의 출현. 손과 발놀림이 자유로운 아시모는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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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휴머노이드로봇 '아시모'를 만나다

미라이칸은 정보과학, 생명과학, 지구환경, 기술혁신 4개의 주제로 전시실이 나뉘어 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첨단 로봇, 마이크로머신이 있고, 가상현실 등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3층이다. 3층의 로봇 전시장에 들어서자 물범 새끼 로봇이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뽀송뽀송한 흰색 털에 큰 검은 눈망울을 가진 귀여운 인조 동물이었다. 신영이가 흰 털이 복스러운 목덜미를 만져주자 소리를 내면서 몸을 움직인다. 손으로 쓰다듬자 기분이 좋다고 말을 한다. 로봇인형이 입에 물고 있는 분홍색 젖꼭지가 전원인 것 같았다. 우리가 로봇에서부터 벗어나자 이 로봇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엎드려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내가 이 로봇관을 먼저 올라온 이유는 무엇보다도 오전 11시부터 혼다의 로봇  '아시모(Asimo)'의 시연 무대가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아시모를 보게 된다는 큰 기대에 부풀어 있는 사람은 바로 신영이였다. 갑자기 시연 무대 앞에 많은 어린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신영이는 가장 앞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아빠를 돌아다보고 있었다.

조용하던 미라이칸이었지만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끌고 있는 '아시모'의 무대는 북적거렸다. 아시모의 실연이 시작되기 직전, 안내원들이 돌면서 어린이들의 공간을 앞쪽에 따로 마련해주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강점, 공중질서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띄는 장면이었다.

아시모가 그려진 무대의 막이 올라가면서 아시모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로봇이 손과 발을 움직이며 걸어 나오자 아이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아시모는 손을 들어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손놀림과 발놀림이 예상보다 아주 자연스럽다. 아이들은 눈이 뚫어지게 작은 로봇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시모 체구가 어린이 체구여서 그런지 아이들은 작은 로봇에 심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다.

움직이는 관절이 아주 부드럽다.
▲ 작별 인사하는 아시모. 움직이는 관절이 아주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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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아시모는 서서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달리기도 할 줄 알았다. 뒤로 돌아서서 계단을 오르고 다시 뒤로 돌아선 후 계단을 내려오는데 움직이면서 박수까지 쳤다. 미라이칸 안내원이 서 있는 곳을 향해 공을 차기도 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로봇이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은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는 로봇의 관절이 어쩌면 저렇게 부드럽게 움직이고 사람같이 움직이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안내원과 대화까지 나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언젠가는 이 놀라운 로봇이 전신 웨이브를 하면서 춤을 추지 않을까? 나는 우리나라의 로봇들이 분발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과학관에선 찾기 힘든 마라이칸만의 장점은?

미라이칸은 수백명에 이르는 안내원들의 친절함으로 운영된다.
▲ 미라이칸의 안내원. 미라이칸은 수백명에 이르는 안내원들의 친절함으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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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램객들이 직접 참여해 볼 수 있는 과정이 아주 많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전시품과 체험장 만큼이나 안내원들이 많다는 점은 미라이칸의 큰 장점이었다. 수백 명에 달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안내원들은 관람객들에게 먼저 다가가 체험을 돕고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었다. 아시모를 떠난 우리는 상설전시관 3층에서 인상적인 한 안내원을 만났다.

이 젊은 여성 안내원은 비커에 고체를 넣고 이 고체가 기체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과학과목을 가장 좋아하는 신영이는 눈이 뚫어지게 이 언니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서 모든 설명을 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몸짓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친절한 설명을 보고 들으면서, 미라이칸이 왜 저력이 있다고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곳이 보였다. 무작정 재빠르게 줄을 섰다. 꼬리가 없는 사람이 꼬리를 달고 움직이는 체험을 하는 곳이었다. 신영이도 꼬리를 달아보고 나도 꼬리를 달아 보았다. 얼굴을 숙이면 꼬리가 하늘로 올라가고 일어서면 꼬리가 내려갔다. 그리고 몸을 흔들면 꼬리가 양옆으로 움직였다. 무언가 예전부터 꼬리가 있었던 것만 같다. 꼬리가 내 몸의 일부인 양 움직였기 때문이다.

인체의 구조를 알기 쉽게 체험하도록 되어 있다.
▲ 인체 장기를 조립하는 어린이. 인체의 구조를 알기 쉽게 체험하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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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라이칸의 유리 벽면을 따라 뱀처럼 길게 이어진 오벌 브리지를 걸어 5층 전시관으로 올라갔다. 5층에 올라서자 인체 관련된 체험활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인체 해부 모형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뇌를 층층으로 자른 단면을 직접 만지며 확인해 보거나 내장 기관을 배에서 빼내 그 모양과 위치를 확인해보고 있었다.

전시는 DNA 모형을 통해 인체의 기본 요소인 게놈 설명에서부터 시작됐다. 인간의 다양성이 주제였단 점이 인상적이었다. 수십억 명에 달하는 인간들이 겉모습은 다양해 보이지만 각 인간이나 인종 간의 유전적 차이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세계 3대 인종의 차이가 크지 않은 이유는 약 7만년 전에 화산활동과 빙하기를 거치면서 인류의 인구가 수 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류는 당시 멸종 위기에 몰렸던 아주 적은 수의 인류를 동일한 조상으로 두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다양한 외모와는 달리 유전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인종차별이나 민족 차별이니 하는 것은 실상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신기루 같은 생각일 뿐이었다.

세계의 우주인 코너에 한국의 우주인 이소연도 함께 있다.
▲ 한국인 우주인 이소연. 세계의 우주인 코너에 한국의 우주인 이소연도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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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바라본 또다른 지구

미라이칸 5층에선 우주과학도 다루고 있었다. 일본인 출신 우주비행사인 모리 마모루(毛利衛)가 미라이칸의 관장으로 있는 만큼 전시물도 알차다. 각국 우주인들을 보여주는 전시물 중에는 우리나라 이소연 씨도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여러 전시물들을 통해 일본의 우주 역사를 일람하니, 일본인들이 얼마나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우주인들이 먹는 식량 중에 한국의 대표음식인 김치도 있다.
▲ 우주식량 김치. 우주인들이 먹는 식량 중에 한국의 대표음식인 김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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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국제 우주 정거장인 ISS의 내부였다. 아이들은 특히 우주선 내부에  특이하게 생긴 화장실에 관심이 많았다. 신영이는 우주에서 화장실 가기도 어렵다는  안내원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내 눈에는 우주식품 중에 자랑스럽게 자리한 김치가 들어왔다.

1층 심벌 존의 지구과학 테마관에서부터 보였던 지오 코스모스(Geo-Cosmos)가 계속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상설 전시관에서 가장 눈에 띄던 이 지구 모형은 45m 높이의 천장에 매달려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미라이칸을 상징하는 이 지구는 전시구역인 1, 3, 5층에서 모두 볼 수 있는데 보는 층에 따라서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이 지오 코스모스는 세계 최초로 지구를 지상에 전시한 작품으로서 지구환경과 미래, 정보과학기술 등 미라이칸의 모든 것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

지름이 6.5m나 되는 지오 코스모스는 볼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늘 위를 나타낸 부분엔 다양한 모양의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바다와 지표면은 다양한 색상으로 그 온도가 표시되고 있었다. 그 밖에도 이산화탄소 농도 등 온실 효과와 관련된 수많은 데이터가 이 모형에 표현되고 있었다.

1층의 지오 코스모스 아래 넓은 공간에는 침대같이 생긴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머리 위에서 시시각각 변하던 지오 코스모스를 쳐다보았다. 어린 신영이도 즐겁게 '지구'를 보고 있었다. 신영이는 분명히 과학을 재미있는 학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천장의 커다란 '지구'가 눈 가득히 들어왔다. 지구를 표현하는 무려 100만개의 발광다이오드(LED)가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지구' 뒤로 방금까지 우리가 오르락내리락 했던 오벌 브리지도 보였다. 지구의 한 표면에 달라붙어서 지구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에서 바라본 오늘의 지구'. 묘한 감동이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7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도쿄, #오다이바, #미라이칸, #지오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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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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