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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국회에 세 번째 제출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에서 또다시 번역 오류가 발견된 가운데,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구성찬 한나라당 의원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 번역 오류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세 번째 제출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에서 또다시 번역 오류가 발견된 가운데,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구성찬 한나라당 의원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 번역 오류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 유성호

정부와 한나라당이 한국과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4월 국회 처리를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다.

 

특히 무더기 번역 오류에 대한 책임도 제대로 묻지 않은데다, 협정이 발효될 경우 현행법상 중소상인 보호장치까지 사라지는 등 후속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오는 7월 협정 발효에만 급급한 나머지, 정부와 여당이 피해산업과 상공인에 대한 대책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에선 정부가 EU 쪽과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안일한' 김종훈, "EU 쪽도 상생을 잘 할 것"

 

이번 협정문 가운데 가장 문제되는 것 중 하나가 기업형 수퍼마켓(SSM)을 규제하는 유통법과 상생법의 충돌이다. 한-EU FTA에선 이미 국내 유통시장 개방을 허용해 놓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여야 합의로 통과된 유통산업발전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관한법(상생법)은 중소상인 보호를 위해 일정한 규제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이 때문에 협정이 발효될 경우, 유통-상생법과 충돌하게 된다. 무엇보다 FTA 협정문이 국내법과 똑같은 효력을 갖고 있으면서, 특별법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유통법 등은 사실상 무력화된다.

 

한마디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유럽계 유통회사들이 협정문을 근거로, 자국 정부를 통해 우리 쪽을 제소할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와 벨기에 등 유럽 7개 나라는 소매분야에서 기존 매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경우 백화점 개업을 인가하지 않을 권리를 가졌다. 특히 유럽 27개국은 택시허가, 이탈리아는 미용실 개설 등을 할 때 사전 심사를 하겠다고 협정문에 명시하기도 했다.

 

이같은 논란은 19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에서도 이어졌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은 "EU 회원국들이 (유통-상생법을) 문제 삼아 우리를 상대로 제소하면 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도 "비준 동의안이 발효될 경우 유통법, 상생법과 불합치되는 부분이 있다"면서 "앞으로 (EU 쪽과) 논의 과정에서 SSM 규제법에 대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사회 거센 반발... 송기호 변호사, "EU와 재협상해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강기갑 의원에게 "공부 좀 하고 말하시라" 고함 지난 15일 국회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한-EU FTA 비준동의안 통과로 SSM법에 대한 분쟁 발생 가능성에 문제를 제기하자,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강 의원님, 공부 좀 하고 말하시라"며 고함을 치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강기갑 의원에게 "공부 좀 하고 말하시라" 고함지난 15일 국회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한-EU FTA 비준동의안 통과로 SSM법에 대한 분쟁 발생 가능성에 문제를 제기하자,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강 의원님, 공부 좀 하고 말하시라"며 고함을 치고 있다. ⓒ 남소연

이에 대해 박 의원은 "EU 회원국 가운데 7개 국가는 우리의 상생, 유통법과 비슷한 예외를 인정 받았다"면서 "EU와 원-포인트 재협상이라도 해서,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미국 등과 재협상의 전례가 있는 만큼, 중소상공인의 생존권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EU 쪽과 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김종훈 본부장은 난색을 표했다. 그는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지난 1995년부터 유통산업을 개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면서 "이번 협정문이 불합치되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상생-유통법이 자동으로 무효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 생각엔 영국의 투자회사를 비롯해 영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서 분쟁을 고려하는 것은 없다"면서 "오히려 우리 쪽을 이해하고 있어서, 상생을 도모해 보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협정이 발효되더라도 골목상권관련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영국계 대형 유통업체인 홈플러스가 국내법을 존중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 본부장의 이 같은 인식이 너무 안일하다는 지적이다. 상생법 등이 발효된 이후에도 홈플러스의 경우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면서 상점을 늘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은 "홈플러스의 그동안 행적을 보면, 과연 김 본부장 말대로 국내법을 얼마나 따르면서 상생할 것인지 의문"이라며 "미국과의 재협상은 몇차례에 걸쳐 하면서도, 우리 중소상인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에 대해선 왜 그리 재협상에 인색한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송기호 통상전문변호사도 "상생법 등과의 충돌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라며 "통상교섭본부에선 유럽연합과 이 부분에 대해 재협상에 나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EU?FTA#김종훈#송기호#유통산업발전법#상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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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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