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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얘기 같지만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려고 나왔겠나. 국회의원 3번, 장관, 도지사도 해봤다. 지금은 당대표다.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게 나한테 큰 명예가 되겠나, 큰 권력이 되겠나.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 내 행동 자체가 국민들에게 희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4·27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손학규(64) 민주당 후보의 말이다. 포장 없이 알맹이를 드러냈다. 남들도 다 아는 걸 숨겨서 구차해지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보였다. 1년짜리 분당을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돼 '배지'를 다는 게 최종 목표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안다. 

 

왜 출사표를 냈을까. 언론의 분석말고 그의 속뜻이 내비친 적은 없다. '조용한 선거' 콘셉트라 무엇이 쟁점인지 눈에 팍 띄지도 않는다. 분당을 도전으로 얻을 것은 무엇인가. 

 

선거 7일을 남겨둔 20일 오후 손 후보는 분당 미금역 인근 후원회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지만 무려 1시간을 썼다. 그만큼 젊은 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7일간 만난 유권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게 뭐냐고 묻자 그는 "'서민들 밥도 못 먹어요, 밥 못 먹어 4·19 나겠어요, 밥 못 먹어서 못 살겠다고 들고 일어난 게 4·19 아니에요?' 했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중산층 도시 분당에서조차 '못 살겠다 갈아보자' 주장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물가고, 전세난, 청년실업, 사교육비, 고액 등록금 등등은 서민·중산층 할 것 없이 모두 겪는 똑같은 문제라고 했다. 이대로 되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또 손 후보는 이날 중산층을 포괄하는 더 큰 진보론을 강조했다. 종합부동산세를 거부하는 중산층이 아니라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뤄낸 넥타이부대 중산층을 생각해 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4·19 민주혁명을 이뤘지만 불과 1년도 채 안 돼 5·16 군사쿠데타로 짓밟힌 것은 시민계급이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유신 때 감옥 가고 고문 당한 이들은 민주화의 최종적 힘이 되지 못했고 이 땅의 민주화를 이룬 세력은 넥타이부대였다"고 밝혔다.

 

또 손 후보는 "중산층은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독재를 용납하지 않으며 자신과 상관 없더라도 권위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패거리 정치나 형님정치도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소위 '강남진보(강남좌파)'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중산층의 정치성향이라는 것이다.

 

그는 MB 정부 이후 국민 삶이 더 팍팍해졌고 심지어 용산참사 같은 일도 벌어졌다고 개탄했다.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공권력이 강제진압을 했고 그 뒤에 사과 한 마디 없었다"고 비판했다. "국가 책임자가 분명 사과해야 하는 사건임에도 전혀 없었다"는 게다.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의 성격이 무언지 웅변하는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해 날을 세우지 않는다. 강재섭 후보와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작은 것을 갖고도 '나도 할 말 있다'고 자꾸 티격태격 싸우는 그 자체가 국민에게 절망과 좌절을 가져온다"며 "언론에서야 (한나라당과) 싸움 붙이면 좋겠지"라고 말을 아꼈다.  

 

민주당의 좌클릭 진보노선과 분당선거의 중도노선이 충돌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지금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중산층과 함께 할 수 있는 당인지 아닌지 평가받는 일"이라며 "그래야 집권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가 교조적이고 케케묵은 이념논쟁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그는 '더 넓은 진보론'을 주장하면서 "진보는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분열과 대립의 정치라고 비판하면서 정작 진보 내부도 분열과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자성을 촉구했다. 색깔론, 편 가르기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진보 스스로를 이념적 틀에 가두고 편을 가르는 건 '진보의 편협성'이라고 꼬집었다.

 

이번에 어렵사리 이뤄낸 야권단일화 관련해서도 비공식 후일담을 처음 공개했다. 손 후보는 "나를 당대표로 만들어준 핵심적인 곳이 호남"이라며 "광주전남 당원들이 심한 배신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비공식적이긴 하나 일부에선 '역시 호남 대표가 아니니까 호남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하는 얘기도 나왔다"며 "그런 것을 감수하고 일종의 야권연대 전제조건처럼 돼 있는 '순천 무공천' 상황부터 풀어냈다"고 전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분당에서 터져나온 "밥 못 먹겠다, 못 살겠다"

 

- 7일째 '나 홀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선거 반환점을 도는 시점인데 자평한다면.

"나는 점수 매길 줄 모른다. 내가 점수 매기면 워낙 짜니까.(웃음) 가끔 서강대 출신을 만나면 얘기한다. 나한테 점수 제대로 받은 사람 없다고."

 

-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하루를 평가할 게 아닌가.

"그냥 열심히 할 뿐이다. 최선을 다해서. 반복하는 얘기지만 선거 할 땐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하는 거다. 여기에다 항상 한 표가 모자란다는 긴장을 갖고 임해야 한다."

 

- 지난 14일 선거운동에 돌입한 뒤로 유권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뭔가.

"제일 많이 듣는 것은 '네'다. 말이 없는 거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손학규입니다, 네. 몇몇 분들은 '되실 거예요', '꼭 되셔야죠', '열심히 하세요' 그런 얘기도 해주지만 대개는 '네'다."

 

- 7일간 만난 유권자들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뭔가.

"바로 어제 저녁에 들은 얘기다. (상의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서 확인한 뒤) 노동하는 분이셨는데 '서민들 밥도 못 먹어요, 밥 못 먹어서 4·19 나겠어요, 4·19가 뭔데? 밥 못 먹어서 못 살겠다고 들고 일어난 것이 4·19 아니에요?' 했다."

 

- 대한민국의 대표적 중산층 도시 분당에서 그 얘길 들으셨다는 건가.

"물론이다. 또 있다. 분당에 사는 대표적인 중산층 얘기다. 유모차를 끌고 한 손엔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인데 내가 '하나 더 낳으시지'라고 말을 건넸더니 이분이 '더 낳고 싶어도 너무 힘들어서 못 낳는다'고 했다. 지금도 힘든데 하나 더 낳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못 낳겠다는 것이었다. 젊은 주부들이 애를 더 갖고 싶어도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더 낳지 못하는 상황이 일반화돼 있는 현실…. 2018년이 되면 우리나라 인구도 줄어들기 시작한다. 저출산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미래의 문제라는 생각이다."

 

서민과 중산층이 잘 사는 것, 그게 손학규표 변화

 

- 한나라당은 철새, 좌파 포퓰리즘 같은 인신공격성 네거티브 전략을 쓰고 있다. 반대로 손 후보는 포지티브 전략을 쓰고 있다. 이 전략이 제대로 어필되고 있다고 판단하나.

"내가 4·27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온 까닭이 뭔가. 건방진 얘기 같지만 국회의원 한 번 더 하자고 나온 것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국회의원 3번, 장관, 도지사도 해봤다. 또 당대표도 됐다.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것이 나한테 큰 명예가 되겠나, 큰 권력이 되겠나.

 

나는 우리 사회가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바뀌지 않으면 안 되겠다, 변화를 이끌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출마를 결심했다. 그런 변화를 위해서는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든, 출마한 나의 행동 자체가 국민들에게 희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학규가 할 정치는 그래도 희망이 있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 우리의 과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어떻게 변화를 할 것인지, 국민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 지다. 이것을 기준으로 선거를 치르려고 한다."

 

- 한국 사회에 변화와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당을 유권자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게다. 국민 모두가 바라지 않을까 싶은데, 손학규표 변화의 내용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서민과 중산층이 잘 사는 것이다. 차별과 특권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과 통합의 사회. 굳이 키워드를 꼽자면 민생·복지와 정의, 통합이다."

 

- 민생복지와 정의, 통합. 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수많은 사건이 벌어졌다. 손 후보가 보기에 저것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상징적 사건을 하나 꼽으라면 뭔가.

"용산참사다.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도 공권력이 강제진압을 했고 그 뒤에 사과 한 마디 없었다. 일선 실무자 차원의 사과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용산참사에 대한 사과는 국정 책임자가 나서서 했어야 했다. 그뿐인가. 345일 만에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정부는 유족들이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게 했다. 이 정부의 성격이 무언지 웅변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 정부의 철학과 국민을 대하는 자세, 가치 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하늘이 무너져도, 국민 삶 지켜야 한다"

 

- 선거운동 첫날 강재섭 후보는 민주당 당명을 모기눈알만하게 써놨다면서 맹공격했다. 비겁하다는 거다. 명함에서 민주당을 최대한 축소한 이유가 뭔가.

"이번 선거는 당쟁 선거가 아니라 민생 선거다. 당보다 나라가 우선이고, 국민이 우선이라는 게 내 원칙이다. 항상 어느 자리에서나 말하지만 정권교체를 최종 목표로 생각해선 안 된다고 본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얘기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 하늘이 무너져도 해야 될 것은 국민의 삶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 겉으로만 잘 사는 게 아니고 내용적으로도 잘 사는 것. 또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려면 정의로운 나라도 만들어야 한다. 아까 말한 민생·복지와 정의, 통합이란 가치가 우선된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가 돼야 한다."

 

- 한나라당은 분당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열세여서 당명을 가리고 '손학규'란 개인 브랜드로 이번 선거를 치르겠다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그런 것에 일일이 답해야 하나?(미소) 작은 것을 갖고도 '나도 할 말 있다'고 자꾸 티격태격 싸우는 그 자체가 국민에게 절망과 좌절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언론에서야 싸움 붙이면 좋겠지.(웃음)"

 

- 강재섭 후보에게도 그런 당부를 좀 하고 싶나.

"그 분은 그 분의 철학이 있고 방식이 있는데 왜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하겠나."

 

- 민주당은 지난 시기 좌클릭 노선을 고수했다. 3무1반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손 대표의 분당노선은 '행복한 중산층이 많은 세상'이다. 기존 민주당 노선과 이번 선거노선이 충돌하는 분위기인데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런가? 모순이 있나. 우리가 복지정책을 취한다. 그리고 선거에서 중산층을 튼튼히 하자고 한다. 이것이 모순인가. 거꾸로 물어보고 싶다."

 

- 우리 사회에서 흔히 진보가 표방하는 가치는 중도가 표방하는 가치와 달랐다. 

"(바짝 끌어당겨 앉으며) 그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진보를 그렇게 이해하는 건 잘못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더 큰 진보'를 얘기했다. 집권의지와 집권능력을 얘기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때 '진보-개혁-중도'를 아우르는 '삼합론'을 밝혔다. 진보를 튼튼히 하고 중도를 끌어안는 것이 우리의 집권전략이다. 또 우리가 분당에서 복지정책을 부정하나? 아니다. 다만, 이 지역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중산층 지역인 만큼 중산층이 어떻게 역사의 변화 혹은 대한민국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모색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것이 내가 이번 분당을 선거에 출마한 이유고, 후보자로서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모순되는 게 아니다."

 

- 지금까지 한국의 중산층은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했다. 이 시점에서 중산층이 변화를 원한다고 판단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중산층에 대한 판단이 잘못됐다. (시계를 풀며) 중산층은 역사적으로 사회변화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우리가 4·19 민주혁명을 이뤘지만 불과 1년도 채 안 돼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짓밟혔다. 튼튼한 시민사회, 시민계급이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군부의 군홧발을 이겨내지 못했던 게다. 이후 박정희 유신체제가 무너졌을 때도 민주화가 다 됐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곧 5·18 광주항쟁을 겪었다. 유신때 감옥 가고 수배 받고 고문 당한 이들은 민주화의 최종적 힘이 되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이 땅의 민주화를 이룬 세력은 1987년 6월 서울시청 앞을 꽉 메웠던 넥타이부대였다. 그들이 바로 지금의 중산층이다. 중산층이 갖고 있는 변화에 대한 자각과 진취적인 역사의식. 이것이 역사의 전환에 결정적 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 시민계급의 복원과 새로운 시민혁명이 필요하다고 보는 건가.

"물론 우리는 현재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삶의 질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일부 후퇴하긴 했지만 제도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정착됐다. 경제적으로도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맞이했다. 이제 사회의 질적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다. 풍요 속에서 빈곤층은 더 많아졌고 사회적 격차도 더 심해지고 있다. 빈곤과 부가 각각 대물림되는 가운데,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고 있다. 분열과 갈등도 유발되고 있다. 특히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인위적으로 조장되기도 한다. 지금 이 때 민주화를 결론지었던 중산층의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걸 분당에서부터 시작하자는 게 내 얘기다."

 

- 부의 대물림과 빈곤의 대물림으로 양극화가 심각해졌다는 데 모두 동의할 게다. 문제는 지금 언급하신 변화의 동력이 돼야할 중산층이 자기 걸 양보하면서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설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분당 지역도 부의 대물림이 있는 동네 아닌가.  

"분당이라는 동네가 부의 대물림이 엄청나게 많은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글자 그대로 중산층이 많이 산다. 여기 조금 괜찮다고 하는 아파트 주민의 비율을 보면, 자가 소유자가 50%, 세입자가 50% 정도 된다. 세입자 50%가 대개 전문직 청·장년층이고 자가 소유자는 상대적으로 노인층이 많다."

 

- 전체 지형을 놓고 볼 때 그래도 분당은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다. 흔히 '진보-중도-보수'로 나뉜 이념적 지형에서 진보적 지형이라고 평가하기 어렵지 않나.

"진보는 다 같이 못 살자는 게 아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중산층 숫자도 늘리고 그들의 경제활동도 튼튼히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진보와 충돌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모두 '하향평준화'해서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보가 아니다."

 

"중산층은 독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 손 후보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분당을 유권자들은 얼마나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중산층은 두 가지 속성이 있다. 자기 스스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품성. 우선 중산층도 현재 고물가, 과도한 사교육비, 청년실업, 보육·양육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이는 개인적으로 잘 살겠다는 욕구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변화의 욕구로도 발현된다.

 

두 번째 속성은 중산층이 갖고 있는 시민의식이다. 중산층은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독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과 상관없더라도 권위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패거리 정치나 '형님이 어쨌다'는 이런 정치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들이 계속 어려움을 겪고 소외되는 사회구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정의감이 중산층의 진보 성향이다. 소위 강남진보라는 말로 중산층의 정치성향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민주당이 진보노선을 걷는 것과 이번 선거에서 중산층을 튼튼히 하자는 게 충돌되는 게 아니라 합일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당의 전문직 청·장년이 갖고 있는 민주의식과 정의감도 한 번 생각해보시라."

 

- 중산층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중산층을 너무 이기적인 계층으로, 탐욕적으로만 판단하는 건 잘못이다."

 

- 2007년 대선 당시 다수의 중산층은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정치학자들은 이를 자신의 아파트값이 좀 더 오르기를 바라는 이른바 '욕망의 정치'라는 프레임으로 해석했다.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모두 경제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체된 경제를 다시 잘 살릴 것 같은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단순 중산층도 아니다. 오히려 서민층에서 더 많이 이 대통령에게 표를 줬을 게다. 그건 서민·중산층 할 것 없이 (당시 국민들이) 중도적 성향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 당시 대선 결과에 대해, 계급·계층적으로 나눠 중산층은 이 대통령을 찍고 서민층은 민주당을 찍었다는 분석은 전혀 맞지 않은 것이다."

 

- 당시 40대가 '욕망의 정치' 프레임에 갇혔던 건 사실 아닌가.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논리는 이명박 정부의 탄생에 대해 우리(민주진보진영) 스스로의 책임은 없다고 하는 얘기와 같다. 마치 투표를 한 국민이 잘못한 것처럼 보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가 탄생한 건) 철저하게 우리의 잘못이다."

 

-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건가.

"어쨌든 당시 그에 대한 불만이 많지 않았나."

 

- 종합부동산세를 집단적으로 거부한 중산층의 속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앞서 말했듯 중산층은 두 가지 속성이 있다.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욕망은 어떤 계층이나 마찬가지로 있게 마련이다. 다만, 상류층이 지나치게 추구하는 '탐욕의 경제활동'과 달리 일반 중산층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데 치중돼 있다. 그에 대해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 '욕망의 정치'라고 분류하는 건 잘못됐다. 그것이 진보라고 한다면 난 그걸 진보의 '편협성'이라고 부르겠다."

 

- 손 후보가 분당에서 당선된다면 민주당의 진보노선이 중도로 옮겨 앉을 수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그런 걱정을 할 때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중산층과 함께 할 수 있는 당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평가받는 일이다. 그래야 우리가 집권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 내가 출마한 것도 그 이유다. 교조적이고 케케묵은 이념 논쟁에 빠져선 안 된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를 향해 분열의 정치, 대립의 정치라고 비판하지만, 돌아보면 우리도 스스로 분열과 대립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집권 못한다."

 

"순천 무공천 때문에 광주전남 당원들 배신감 느꼈을 것"

 

- 이번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 출마를 결심했나.

"선거 전부터 당대표로서 이번 4·27 재보선에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했었다. 출마 전까지 한 고민은 그 '무한책임'을 어디까지로 설정할지였다. 처음부터 분명했던 건 민주당이 분당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분당은 정권교체와 우리의 집권의지를 시험할 수 있는 기준이다.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곳이다. 처음엔 당 대표인 내가 나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좋은 후보를 내서 분당에서 이기거나 최소한 선전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싸움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주당이 정권교체 가능성을 갖고 있구나'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중산층을 끌어들일 능력을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

 

- 끝내 마땅한 후보가 없었나.

"거기에 맞는 참신한 후보를 찾고자 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와 함께 어려운 선거에 당 대표가 직접 나가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사실 처음 무한책임을 언급했을 때도 만약 해볼 만한 후보가 없다면 나 자신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내심 각오하고 있었다. 그래서 과연 내가 나가면 '가치 있는 싸움'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또 선거를 전체적으로 지휘하고 이기는 당대표의 '무한책임'도 있겠지만 이 경우엔 내가 앞장서 싸우는 자체가 다른 지역에 대한 선거지원이라고 생각했다."

 

- 손 후보의 이 같은 메시지가 분당을 중산층에게 잘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출마하면서 중산층이 이번 보궐선거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게 된 것 같다. 그냥 '민주당 후보 손학규'가 아니고, 이미 (경기도지사) 손학규를 경험해 본 이 지역주민들과 중산층이 민주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시민경선이나 여론조사 등의 방법은 아니었지만 손 후보는 야권단일후보로 분당을 선거를 뛰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단일화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야권후보단일화를 이뤄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여태까지 못하지 않았나. 일각에선 순천에서 무공천 양보를 한 것을 두고 '그러려니'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쉽게 가능했겠나. 내가 호남의 심장부인 전남 광주에 가서 무공천 얘기를 했고 순천 사람들이 올라와서 항의할 때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했다.

 

사실 나를 당 대표로 만들어준 핵심적인 곳이 호남이다. 그 중에서도 광주·전남의 당원들이었다. 그 분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비공식적이긴 하나 일부에선 '역시 호남 대표가 아니니까 호남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하는 얘기도 나왔다. 그런 것을 감수하고 일종의 야권연대 전제조건처럼 돼 있는 '순천 무공천' 상황부터 풀어냈다.

 

또 김해을의 경우에도 원칙을 포기하면서까지 단일화 절차를 밟았다. 그것이 국민적 여망이었기 때문이다. 또 내년 정권교체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와 희망을 열기 위해서라도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단일화를 이뤄냈다는 그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의 진보노선 변화는 없다"

 

-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발전 모델은 우리의 대안이 아닌 것 같다는 고민이 불거졌다. 새로운 가치와 이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진보적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생태주의 등 여러 이념지형이 그것이다. 손 후보는 어떤 가치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보나.

"일단 너무 어떤 주의에 얽매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보를 복잡하게 따질 것도 없다. 인간이 자기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민주주의와 진보의 역사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사람이 중심 되는 세상이다. 성장만능주의에 빠지면서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 보는 사회로 전락했다. 이 정권 들어 더 심해졌다. 용산참사를 철학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이 개발과 성장에 걸림돌이 되면 쓸어버리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만약 사람이 더 중요했다면 그렇게 했을까. 사람이 중심 되는 사회로 복원돼야 한다. 거기에 정의가 있고, 복지도 있다. 공동체의식, 통합의 정신도 필요하다."

 

- 결과적으로 손 후보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인가?

"우선 (반신자유주의에) 동의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틀에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데올로기적 싸움의 도구에 우리 스스로를 묶어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색깔론, 편 가르기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안에서 너는 사민주의야, 너는 자유주의야 이렇게 우리 스스로 어떤 틀에 가둔다. 그건 결코 진보가 아니다. 진보는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 강재섭 후보가 이날 어린이집에 가서 무상보육 정책을 비판했다. 민주당의 무상복지에 대한 비판이자 네거티브 전략으로 보이는데.

"나라를 책임지려는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발전하고 풍요로우면서도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특권층을 위한, 다수가 배제된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 묻고 싶다.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설계를 해야 한다."

 

- 강 후보의 무상보육 비판은 잘못됐다는 얘긴가.

"내가 모든 사람의 얘기에 대해 일일이 코멘트할 필요 있나."

 

- 마지막 질문이다. 분당 선거의 중산층과 중도전략은 민주당 진보노선의 궤도가 변경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게 맞나.

"물론이다. 민주당의 노선에 변화는 없다. 민주당은 진보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중산층을 끌어안고자 한다. 전당대회 당시 내가 주장했던, 진보와 개혁, 중도가 조화되는 '삼합론'이 지금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진보와 통합·연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진보적 요구를 적극 수용하는 한편, 중산층으로 대표되는 중도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이 지금 분당 보궐선거다.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에너지를 창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태그:#손학규, #4.27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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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부 기자입니다.

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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