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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정책연구소 CI
인권정책연구소 CI ⓒ 인권정책연구소
"따옴표는 '인권을 말한다'는 의미고요, 쉼표는 '마침표가 없이 계속된다', 보라색은 빨강이 진보고 파랑이 보수니까 인권에는 진보·보수 없이 통합되어 있다, 초록은 생태, 환경, 지속가능성."

지난 20일 영등포 여성미래센터 304호. 180c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큰 키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50대 남성이 명함을 한 장 꺼내더니, 연구소 CI(대표 이미지)의 의미를 하나하나 손으로 짚으며 설명해준다. 기자가 "이렇게 깊은 뜻이"라고 감탄하자 소리 내어 웃는 얼굴에 설렘이 묻어난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멤버이자 인권위 '브레인'으로 불렸던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전 인권위 정책과장). "인권위가 알리바이 기구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그는 지난해 9월 '현병철 인권위'에 사표를 냈다. 이후 문경란·유남영 상임위원, 조국 비상임위원 등 인권위 인사들의 사퇴가 이어졌지만, 현 위원장은 2011년 4월 현재까지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인권위를 나온 김 전 소장은 '인권위 안'이 아닌 '밖'을 바라보고 있다. 인권위가 지난 10년간 한국사회 인권의제를 '독식'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약화된 '인권시민사회' 영역이 바로 그것. 인권운동단체가 현장에 집중하는 동안 민간 차원에서의 인권 이론과 정책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했다는 것이 김 소장의 문제의식이다. 제도기구인 인권위에 대한 견제 역시 부족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김 소장은 "인권위가 무너지게 되는 것,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 개념 없는 위원장이나 이명박 정권의 반인권 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며 "인권위가 제대로 가든 못 가든 상관없이 우리 사회 인권의 영토가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인권시민사회 진영의 재구축과 강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결과가 오는 29일 개소식을 갖고 정식으로 출범하는 '인권정책연구소'다. 연구소에는 김창국 전 인권위 위원장, 김옥신 전 인권위 사무총장, 문경란·유남영 전 인권위원 등 전직 인권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인권위에 파견된 한 사람으로서 자기 역할을 완수하지 못한 채 중도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측면에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표현한 김 소장은 "인권시민사회에 대해 안고 있었던 부채를 이 연구소를 통해 조금이나마 상환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김형완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현 위원장의 '생활밀착형 인권'은 순 사기"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 유성호

- 2010년 9월 3일 사표를 냈다. 그 이후로 어떻게 지냈나.
"정신없다. 연구소 설립에 따른 실무적인 준비들, 이를테면 법인설립을 위한 서류준비 문제, 연구소 인적자원을 조직하고 구성하는 문제, 펀드레이징, 개소식 준비 등을 하고 있는데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웃음)"

- 인권정책연구소는 언제부터 구상한 건가. 
"사실 인권위 그만두기 전부터 문제의식은 있었다. 인권위가 무너지게 되는 것,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 개념 없는 위원장이나 이명박 정권의 반인권 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문제의식이었다. 한 제도기구의 역동성이라는 것은 특히 국가인권기구와 같은 거버넌스 모델 같은 경우에는 인권시민사회라는 토대가 단단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갈 수 없다.

인권위 10년 동안 한국사회 인권의제를 인권위가 거의 독식하다시피 했는데 그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제도기구라는 것은 인권시민사회보다 반걸음 떨어져서 주워담으면서 쫓아가야 하는 건데 오히려 인권위가 어젠다를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고 그 바람에 인권단체의 역동성이 거의 살아나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간에 인권시민사회 진영의 재구축, 강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인권위가 제대로 가든 못 가든 상관없이 우리사회 인권의 영토가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민간연구소를 구상하게 된 거다. 사실상 인권이론을, 인권정책을 전문으로 하는 민간연구소가 만들어진 건 인권정책연구소가 처음이고 유일하다."

- 그동안 민간 인권연구소가 없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인권운동의 역사가 있긴 하지만 대중적 차원에서 우리 사회에 '인권'이라는 화두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건 2001년 인권위 설립 이후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10살이다. 무조건 보호하고 지원하고 건강하게 클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줘야 할 때다.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아먹으면서 성장할 시기고. 이처럼 우리 사회 인권의 연륜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민간연구소와 같은 구상을 채 하지 못한 것도 있다. 인권단체들은 현장의 요구가 워낙 거세게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니까 늘 현장에 붙어 있어야 하다 보니 여지가 없었을 거고. 그런데 이제는 전략적 역할 분담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현장 단체와 이론·연구 담당의 분화가 전략적으로 진행될 때가 된 것 같다." 

- 현 위원장이 취임한 게 2009년 7월이니, 1년 조금 넘게 같이 일했다. 주로 어떤 문제를 놓고 충돌했나.
"사실 현 위원장은 인권에 대한 방향이나 콘텐츠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보니 충돌이랄 것도 없었다. 문제는 권력 눈치 보기. 이 정권 눈 밖에 날까 하는 염려. 이것 때문에 의제설정이라든지 의안상정이라든지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래도 현 위원장이 초기에는 그런대로 (기존의 입장을) 밀어붙였다. 상임위원들도 있고 (기존의) 그 기조가 살아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결정적으로 전원위원회 인적구성이 6 대 5로 전환되면서 현 위원장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작년 7월경부터 사실상 인권위 정책분야는 산송장이 됐다. 진정사건 조사야 의무적으로 해야 하지만 정책공고는 능동적으로 의제발굴을 해서 하는 건데 그걸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인권위의 중요한 역할이 고장이 났다는 신호다."

- 현 위원장과 함께 일하면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점은 뭔가.
"현 위원장이 이야기한 것 중에 제일 강조한 게 생활밀착형 인권을 하겠다는 건데,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물어봐도 이야기를 못 하니까. 고작 하는 이야기가 장애인·아동·노인 인권문제를 중점적으로 하겠다는 건데 그건 인권의 대상별 영역에 불과하다.

2011년 대한민국 현재에 가장 생활밀착형 인권은 뭘까.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인권의제. 저는 그게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 입에 재갈을 물려서 인터넷상이나 집회나 손발을 묶어놓는 상황에서 그 이상 더 절박한 생활밀착형 인권이 어디에 있나. 그런데 (현 위원장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인권위 활동은 모조리 다 안 하려고 했다. 박원순 변호사 건, 야간 집회 건, 정보인권 특별보고서, 전기통신기본법… 줄줄이 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인권쟁점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인권위가 전혀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 위원장이 이야기하는 생활밀착형 인권은 순사기, 허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 최근 인권위가 동료 조사관 해고에 항의하며 1인 시위와 기고를 한 직원들에 대해 내부 감사를 하고 있는 것 관련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이 나오더라.
"사단을 자꾸 만든다. 1인 시위는 실정법도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그런데 실정법을 한걸음 앞서간다는 인권 규범에 비춰서 그걸 문제 삼는다고 하면 인권위는 정말 스스로 바보가 되는 거다. 표현의 자유야말로 17세기 유럽에서 다 확보된 기본권인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가장 심각한 인권문제가 됐으니, 이건 역사가 10년, 20년 뒤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400년 뒤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인권위 내부 문제의식, 확산되면 확산됐지..."

 강재경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2010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62주년 기념식'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위원장 표창 수상을 거부하고 있다.
강재경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2010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62주년 기념식'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위원장 표창 수상을 거부하고 있다. ⓒ 권우성

- 지난해에는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때도 재밌는 일이 있었다.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대한민국 사회에 조사차 왔다고 하면 인권위원장은 자기 소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 UN이라는 국제기구가, 인권이사국 가운데 하나인 대한민국에, 이명박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가 질식되고 있으니까 특별보고관을 보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해서 인권위가 책임감을 느끼고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현 위원장은 오히려 비아냥거렸다. 

현 위원장이 보고관에게 말하기를, '내가 알기로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대한민국만 4번이나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그 애정의 조금만이라도 북한에 대해 보여주셨으면 좋겠다'(웃음)고 했다. 보고관이 웃더라. 현 위원장으로서는 아마 '왜 너는 번듯한 한국에 대해서는 욕보이려고 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하냐'고 말하고 싶었을 거다."

- 라 뤼 보고관과 현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이 외부의 유출되자 현 위원장이 김형완 소장을 의심했고, 그때부터 위원장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부터라기보다는, 저는 사실 현 위원장 취임 초기에 이 분이 전문성이 전혀 없는 분으로 알려져 있었고 법학 교수들조차도 이 분이 누구인지 모르더라. 이 사람은 강의를 안 하고 보직만 했다고 하니까. 그런데다가 논문 몇 편이 있는 것마저도 표절이라는 보도가 있었고. 그래서 이 분이 오히려 자기 나름대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오는 분에 비해서 옆에서 잘 보좌를 해 드리면 제대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권에는 보수·진보가 없으니까.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거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저도) 꽤 해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국회에서 벌어진 해프닝. 예컨대, 인권위가 사실상 행정부의 일원이라고 답한 거라든지 일련의 언동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거다."

- 김형완 소장 사퇴 이후로 문경란·유남영 상임위원 등 수많은 인권위 인사들이 줄사퇴했는데.
"지금 (인권위에) 계신 분들에게는 야속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큰 틀에서 보면 인권위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이런 몸부림들, 흔적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씀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걷어붙이고 나와라 이런 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안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는 문제제기하고 나와서 또 다른 대안을 찾아서 나가는 거고 일부는 남아서 그 안에서 투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제가 나오고 난 다음에 줄사퇴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우선은 안타까웠다. 인권위 10년의 역사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무너진다는 것이 단순히 인권기구가 제 역할을 하느냐 못하느냐 문제보다 더 본질적으로 국민들에 대한 (인권위의) 신뢰와 권위가 실추되는 것이기 때문에 저의 사퇴를 포함한 '줄사퇴'가 사실상 자해행위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인데, 그러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이 굉장히 안타까웠고. 안타까운 만큼 나와서 다른 대안을 빨리 세워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

- 인권정책연구소에 인권위를 나온 인사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창국 인권위 초대 위원장이 고문을 맡았고, 10명의 이사 가운데 김 소장을 포함한 7명이 인권위 인사다.
"인권위를 나온 60여 명에 달하는 정책 자문위원들도 제가 개별적으로 접촉을 몇 분 해봤는데 연구소에 관심이 많으시고 애정을 보이셨다. 이 연구소가 정상화되는 대로 정책 전문위원으로 전부 모시려고 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인권분야의 전문가는 우리사회에서 그렇게 자원이 많지 않다. 굉장히 한정된 분들인데 이분들이 인권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그릇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인사들이 인권위를 나오면서, 인권위를 개혁할 수 있는 내부동력이 약해진 거 아닌가.
"저는 사태를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게 무슨 노선의 차이나 이념, 진보·보수 이념의 갈등에서 벌어진 문제가 아니고 인권위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 가운데 하나인 독립성 문제와 관련해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양식 있는 직원들이라면 그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충분히 공감대를 가질 거다. 일부가 나오긴 했지만 나온 사람만큼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안에서 재생산할 거라고 본다. 인권위의 최고 수장이 말도 안 되는 운영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 확산됐지 오히려 위축되지 않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있다. 

또 한 가지는, 인권위가 안에서 내부동력이 생겨서 위원장의 문제를 지적하고 인권위 본연의 역할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들을 한다고 하더라도, 바깥에서 인권시민사회 진영의 견제 없이는 관료화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안에서 열심히 싸우시는 분들은 싸우시고, 거기에서 별 의미를 못 찾고 다른 비전을 성취하시겠다는 분들을 저와 같이 바깥에서 움직이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권위 10년, 뼈아픈 고백 담긴 '대국민 성찰보고서' 낼 것"

 "인권위원회에 파견된 한 사람으로서 자기 역할을 완수하지 못한 채 중도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측면에서 인권시민사회에 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인권위원회에 파견된 한 사람으로서 자기 역할을 완수하지 못한 채 중도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측면에서 인권시민사회에 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 유성호
- '사회권'과 관련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사회복지적 상상력'을 가지면 그 상상력의 귀결점은 국가 재정문제에 따라서 복지 국가의 '볼륨'이 결정된다는 논리로 끝난다. 그런데 '인권적 상상력'을 갖게 되면 국가가 재정능력이 있든 없든, 의무주체로서의 국가가 권리주체인 국민에게 마땅히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의 차원에서 접근이 된다. 같은 복지국가에 대한 비전을 갖는다 하더라도 사회복지적 상상력과 인권적 상상력은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인권적 상상력을 담론화시키는 작업들이 지금 전무한 상황이다 기껏해야 법률가들에 의해서 헌법적 기본권에 입각한 자유권의 담론 형성, 이런 정도까지는 가고 있지만 사회권적 상상력은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 생각에는 사회권적 상상력을 가시화 시키려면 통속적인 접근이 불가피하다. 사회학이라든지 행정학, 경제학, 사회복지학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서로 엮여서 담론구성을 재구성을 해야하지 않을까. 복지 국가의 비전설정을 인권적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콘텐츠로 만들어 낼 것이냐, 이런 것들이 주요한 고민거리다."

-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복지국가'가 주요한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진보를 선호하든 보수를 선호하든 대한민국의 미래에는 복지국가로 가는 수밖에 없고 그건 외길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대선·총선에서 중요한 화두가 '복지국가의 내용을 어떻게 갖고 갈 것인가'다. 그런 것들이 인권적 측면에서도 청사진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입법정책, 사법정책에 (인권적 측면을) 효과적으로 반영을 시킬 수 있고, 균형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이라는 사회적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

- 인권위 창립 10주년을 맞아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인권위 10년 동안 (인권위에) 직간접적으로 깊숙하게 관련됐던 분들의 '대국민 성찰 보고서'를 펴낼 예정이다. 제 문제의식은 이런 거다. 민주정부 10년도 그렇고 인권위도 그렇고 진실화해위원회도 그렇고 의문사 위원회도 그렇고 참여자들은 이렇게 저렇게 있었다. 그렇다면 참여한 사람들이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을 겪었고, 제대로 성취가 됐는지 안 됐는지, 안 됐다면 어떤 이유에 대해서 발목이 걸렸는지 대안은 뭔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 경험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아마 당사자 입장에서는 뼈아픈 고백이 될 수밖에 없을 거다. 왜냐하면 대부분 실패했으니까. 저부터도 인권위에서 파송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퇴각한 거 아닌가.

앞으로 복지국가로 가면 갈수록 굉장히 많은 거버넌스 모델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거버넌스가 만들어질 경우에 또 다시 시행착오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인권위에 직간접으로 관련되신 분들 박래군 상임이사부터 시작해서, 김창국 초대인권위원장까지 60여 분 정도 되는데 이분들의 인터뷰를 쭉 진행할 생각이다. 보고서 제목은 '성찰과 회고, 국가인권위원회 10년의 경험' 이런 정도로 구상하고 있다. 올해 안에 낼 작정이다." 

- 상근인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웃음) 순전히 돈 문제다. 저로서는 '이런 공적인 일을 하는데 도와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생각도 있지만, 그 사람으로서는 어찌됐건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정당한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경우에 어긋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연구소재정형편이 인건비를 감당할 정도로 아직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뜻 제안을 못하고, (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상근자 2명을 가리키며) 스스로 나와 주시는 분들한테만 감사하다(웃음)." 

- 재정적인 부분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답이 없죠 뭐.(웃음) 일단은 제 주변에 있는 이사 분들을 중심으로 해서 몇몇 분들이 십시일반식으로 운영비 정도를 모았고, 앞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하게 되면 많은 돈이 들어갈텐데… 일단은 모금을 어느 정도 하느냐에 달려있지만 안 된다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할 생각이다. 가급적이면 모금을 많이 해야죠.(웃음)"

-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말해달라. 
"개인적으로는 이게 일생의 마지막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공공의 일만 30여년 했다. 국회공무원, 참여연대, 인권위 등 이렇게 저렇게 공공의 문제 매달려온 셈인데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연연령이 60세 정도로 본다면 저에게는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마무리를 잘하고 싶은 소망이 있는 게 개인적인 차원이고, 연구소 차원에서는 이 연구소가 잘 돼서 그야말로 세계 굴지의 인권담론의 생산처로서 양명을 하기를 바라고 그런 만큼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하는 데 있어서 연구소가 기여하는 바가 있었으면 한다. 또 이 연구소는 그저 전문가들로만 가는 연구소가 아니다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중요하다. 여기서 만드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또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는 죄인이라는 거다. 인권위원회에 파견된 한 사람으로서 자기 역할을 완수하지 못한 채 중도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측면에서 인권시민사회에 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이 부채를 이 연구소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상환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현재 인권정책연구소는 재정문제로 여성미래센터 여성사회교육원 사무실에서 '관리비'만 내고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후원문의는 02-2633-0336. http://www.humanpolicy.com/



#김형완#인권정책연구소#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현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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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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