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노조가 25년 이상 장기근속 직원의 자녀 우선 채용 요구안을 임단협에 포함시켜 가결한 후 엄청난 후폭풍을 맞고 있다.
보수, 진보언론 할 것 없이 일제히 현대차노조 이기주의를 비판하고 나서자 노조가 급히 성명을 내고 억움함을 호소했지만 이 마저도 역풍을 맞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이번 현대차노조의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요구안이 타임오프를 앞두고 쟁의결의까지 한 현대차노조의 '타임오프 투쟁'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음모라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돼 주목된다.
진보언론까지 현대차노조 맹비난이번 현대차노조의 자녀 우선 채용 요구안에 대한 비판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자 노조는 22일 성명을 내고 "기아차, GM, 현대중공업 등 여러 사업장에서 적용되고 있는 것을 두고 현대차만 매도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차노조는 "이 안은 장기근속 직원의 자녀가 채용상 하자가 없을 경우 우선 채용을 원칙으로 하자는 것이지 무조건 대물림하자는 것이 아니다"며 "2002~2004년까지, 가장 최근에 신규 채용을 했을때 노사가 합의해 사내 비정규직을 40% 우선채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적용해왔다"고 밝혔다.
특히 현대차노조는 언론, 그것도 진보언론에 대해 맹공격했다. 노조는 "소위 자본의 언론인 조중동은 그렇다치더라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온 진보언론마저 앞다투어 현대차노조를 맹비난하는 것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임시 대의원 대회에서 안건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습 채용' 이니 '현대판 음서제'니 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해서 부정적 여론으로 융단폭격을 가했다는 것이 충격"이라고 했다.
현대차노조는 그러면서 "오늘날 청년실업과 비정규직확대는 정치권력의 무능함과 자본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본질적 문제를 제껴두고 같은 노동자인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언론의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같은 현대차노조의 비난은 이번 논란의 점화지가 진보언론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현대차노조를 향한 거대한 음모가 있다?이런 가운데 이번 논란의 시발점에 거대한 음모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이 만들어져 노조 집행부에 넘어가고, 이슈화되는 과정을 두고서다. 이번 논란은 현대차노조가 4월 20일 대의원 대회에서 다룰 단협안이 미리 새나가면서 맨 먼저 진보언론에 그 내용이 넘어가 점화되기 시작했다.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인 하부영 현대차 조합원은 "이번 안을 가결시킨 집행부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 전 본부장은 "'고용세습' 이라는 한 번의 쓰나미에 사회적 고립과 왕따를 면치 못하면서 타임오프 투쟁조차, 2011년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투쟁조차 무파업으로 귀결될 공산이 커졌다"며 "누군가는 타임오프제를 잠재우기 위해 현대차노조의 실리주의와 이기주의를 부추겨 이득을 볼 것"이라며 이같이 의혹을 제기했다.
회사 측이 230여 명인 노조전임자를 24명으로 줄여 타임오프를 강행하자 현대차노조는 쟁의결의까지 한 상태다. 이 때문에 현대차노조의 소위 '타임오프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해 누군가 서둘러 자녀 채용안을 기획했고, 현 집행부가 오는 9월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조합원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서둘러 이 안을 받아 가결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 근거에 대해 이 안에 구체적 실현 방법이 없이 조급하게 마련된 점, 조합원 자녀들이 95% 이상 대학에 진학하는 상태에서 현장직 자녀 채용에 대한 현실성이 없다는 것 등을 들었다.
하 전 본부장은 "가결된 안에는 우선채용이 조합원 자녀와 중역 추천자 중 어느 경우에 우선을 둘 것인지, 가산점은 몇 점이고 어디에 적용할 것인지, 채용기준이 점수합산제로 운영되는지 등에 대한 명시가 없어 이 안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며 "학자금 지원으로 자녀 95%가 대학에 진학하는 상태에서 대졸 자녀에게도 해당되는지 생산직만 해당되는 제도인지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이어 "9월 새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현 집행부가 조합원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점을 악용해 누군가 교묘하게 기획하고 배후조종을 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며 "타임오프제를 잠재우고 현대차노조의 실리주의와 이기주의를 부추겨 이득을 보는 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규 채용은 채용전문회사에게 맡기는 것이 해결책"이라며 "전국민 누구나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 속에서 현대차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가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선발되도록 하는 방법은 그 뿐"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노조에 대한 비난 화살 끝은?현대차노조가 자신들의 억울함을 항변하는 성명을 내고 해명성 언론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 앉지 않을 전망이다.
취재 결과 현대차노조의 이번 안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활동가가 미리 알고 언론에 의견서를 배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의견서가 '고용세습'이라는 의미를 담았고, 언론이 이를 의제화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만큼 비정규직의 설움이 크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후 '세습 채용'이라는 용어는 공식화되어 보수언론은 물론 진보진영과 시민사회단체까지 사용하면서 비난의 화살을 쏘고 있는 것. 이같은 과정은 현대차노조가 자초한 것으로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번 채용안은 왜 이렇게 큰 논란거리가 됐을까? 또한 왜 진보언론에서는 먼저 의제를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지난해 말 비정규직노조가 벌인 25일간의 공장 점거 파업과, 그 후 이어지고 있는 해고 등에 따른 비정규직의 고통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어렵고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규직노조가 연대자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진보언론과 진보진영이 현대차노조를 옹호했던 것과 비교해 현대차노조가 지난 2년간 민주노조의 선두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그동안 진보언론과 진보진영은 현대차노조가 우리 노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감안해 되도록이면 비판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이번 자녀 채용안을 계기로 그동안 참았던 현대차노조에 대한 불만을 혹독한 지적으로 분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에 제기된 현대차노조 죽이기 음모론이 얼마나 파급 효과가 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최소한 현대차노조가 이번 채용안을 취소하지 않는 한 현대차노조를 향한 비난여론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