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군 하남면 원천리 강변도로를 따라 3.5km를 들어오면 '동구레마을' 이란 낯선 푯말을 만난다. 동그랗다는 어원에서 또는 동구레 저고리 같이 둥근 모양의 형태라서 동구레 마을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8년 전 터전을 잡아 촌장으로 눌러 앉은 이호상(53세)씨가 300여종의 들꽃과 어울려 산다.
"동구레마을이라고 해서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동네인줄 알았는데..."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호박파, 호박같이 둥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
이 마을에서 지난 23일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인근 마을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모임인 '호박파' 모임의 잔치다.
"호박파 라는 말이 왠지 폭력집단 이름 같다" 는 질문에 호박처럼 둥근 마음을 가진 지역 예술가들의 모임이란다.
옆 마을 농공단지에서 목공예를 한다는 분, 산 넘어 서오지리에서 연꽃단지를 운영하는 서윤석씨 부부, 4년 전 동구레 마을부지에 도예공방을 차린 도예가 심옥경씨, 하남면장 박영철씨, 화천군청 문화예술 과장 허성일씨, 전 화천군 부군수 최광철씨 등 13여 명의 회원들은 이런 모임이 자주 있었던 모양인지 대화가 자연스럽다.
봄나물을 이용한 산채 비빔밥, 동동주, 쌈채, 화전으로 차려진 음식은 동구레마을에서 생산된 야생초를 비롯한 들꽃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도예가 심옥경씨와 서오지리 연꽃작목반장 부인께서 준비를 했다.
정확한 내용의 취재를 위해 회장님이 누군지 물었더니, 그런 건 없단다. 그냥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 돌아가면서 자신의 작업실로 초청해 동동주 또는 막걸리를 마주하고 지역 예술발전에 대해 토의하는 모임이란다.
"그래도 연락을 해야 할 사람은 필요해서 심선생(도예가 심옥경씨)이 소집을 합니다." 오늘 행사를 주관한 동구레마을 촌장 이호상씨의 말이다.
꽃향기에 취하고, 음악에 취한다
이호상씨는 7년 전 그냥 들꽃이 좋아서 이곳을 찾았다. 손수 분재도 하고, 식물원도 만들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들꽃 종류만 300여 종이 넘는다.
"봄꽃은 날씨가 따뜻한 아래지방에 비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추위가 빨리 오는 강원 북지 지역인 이곳의 특성상 가을꽃에 승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들꽃마당전'을 연 것이 아름아름 알려지기 시작해서 금년도까지 1만여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이에 힘입어 금년도 10월경에 들꽃 음악회를 열 계획이라는 촌장님은 이곳을 찾는 분들은 들꽃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심성을 가진 분들이나 명상을 통한 심오함을 경험하고 싶으신 분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귀띔한다.
"대접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백화차가 전부입니다. 백화차는 진달래, 제비꽃, 산국 등 100가지의 야생화를 말려 차를 만든 것으로 100가지 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지요." "올 가을 들꽃음악회 때는 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온통 노랗게 물들 것입니다. 꽃향기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고, 이 마을 분위기에 취해 보는 것만으로도 오신 분들은 세상 시름 다 털어 놓고 가시게 됩니다."도자기와 들꽃은 자연스러운 어울림
촌장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심옥경 도예가에게 공방실 안내를 부탁했다.
"이곳은 도예를 배우고자 하는 일반인 또는 가족들의 체험을 위한 장소입니다. 누구나 소액으로 도자기 공예를 배울 수 있고요. 본인이 만든 화분이나 도자기 공예품은 가마에 구워 택배로 발송을 해 드립니다." 안내를 위해 공방실 안으로 들어서자 심선생의 설명이 이어진다.
"배운 게(전공) 도예라 4년 전에 이곳에 와서 비닐하우스로 시작해 지금은 이 정도로 작업실과 전시실도 꾸며 놓았으니, 난 부자가 된 거지요. 그래서 금년도에는 지역 환원 차원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료 도예 전문 지도와 수강생들의 작품 전시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도자기와 들꽃이 어울린 순수한 예술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연꽃마을에서 황포돛배 타고 동구레 마을로 가면 어떨까?
"
이곳 동구레마을과 도예공방 체험만으로는 뭔가 좀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라는 질문에 연꽃단지 반장인 서윤석씨가 끼어든다.
"여기서 도보로 강변 산길을 따라 2.3km를 가다보면 3만여 평의 연꽃단지가 나옵니다. 그곳이 내가 작목반장으로 있는 연꽃마을인데요. 5월부터 수련을 시작해 8월에는 전국 사진작가를 비롯해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을 정도로 100여 종의 연꽃들이 만개합니다.""특히, 5월 중순경에 오시면 물병아리, 원앙, 물오리들이 병아리를 데리고 연꽃 사이를 노닐고, 하루 종일 지저귀는 개개비 소리와 잠자리를 잡아먹기 위해 연꽃 사이에서 잉어들이 퍼덕이는데 이 풍경은 우리 연꽃 단지의 최고의 자랑입니다."
동구레마을 야생화속에서 막걸리에 어울린 매발톱꽃, 제비꽃, 며느리밥풀꽃, 돌단풍꽃 등의 혼합된 향기에 취할 무렵, 도예가 심옥경씨께서 한마디 하신다.
"허 과장님! 지난해 군에서 제조한 황포돛배 있잖아요. 그 배를 이용해서 관광객들을 연꽃단지에서 물길을 따라 동구레마을로 뱃길로 연결하면, 그 운치가 더할 것 같은데 어떠세요?"심옥경 도예가의 말을 풀이하면 이렇다. 매년 연꽃단지는 동남아 관광객들을 비롯해 사진작가 등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지만, 이곳 동구레 마을까지 오려면 강변길을 따라 40여분간을 도보로 이동을 해야 한다. 따라서 많은 관광객들은 연꽃마을만 방문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군에서 황포돛배를 이용해 뱃길 여행으로 연계하면 관광객들에게 멋진 운치있는 여행을 선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인데, 갑작스러운 질문인데도 허 과장은 적극적인 검토를 약속한다.
돌아 나오는 길에 "나도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라는 말을 건넸는데, 대답이 없다. '예술에 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사람의 엉뚱한 부탁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할 때, 동구레마을 이호상 촌장이 말한다.
"들꽃과 우리 전통예술을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나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