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럭을 몰고 다닌다. 그냥 트럭도 아니고 차체가 높은 소형 덤프트럭을 몰고 다닌다. 이 트럭을 몰고 요가를 하는 주민센터나 온천, 각종 모임장소나 할인매장을 다니다 보면 갖가지 웃지 못할 사연들이 생긴다.
26일만 해도 또 한 건의 사고를 내고 말았다. 수요회 모임이 있어 한빛아파트 주차장에 트럭을 주차하고, 점심을 먹고 나왔다.
정장의 중년부인이 트럭에 올라타는 모습이 아파트 경비원들의 시선을 끌었을 것이다. 경비실에 앉아 트럭을 바라보는 아저씨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의식하며 좁은 코너를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주차라인 밖에 세워둔 쏘렌토의 후미등을 치고 말았다.
이 트럭을 운전하고부터 지난 4년간 크고 작은 사고를 낸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경비 아저씨가 잽싸게 달려나와 아주머니가 웬 트럭을 몰고 다니다 사고를 내느냐며 고압적인 태도로 트럭 주위를 한 바퀴 돈다. 새 차를 구입했는데도 그동안 지리산에서 돌과 각종 자재를 실어 나르느라 혹사해서 찌그러지고 칠이 벗겨져 꼴이 험하기가 말로 다할 수 없다. 거기에 고장 난 자전거 두 대까지 실어 놓았으니 몰골이 더 꾀죄죄하다.
왜 주차라인 밖에 차를 주차하도록 방치해서 사고를 유발 시키느냐고 따지면서도 너무 낡은 트럭 때문에 주눅이 든다. 차 주인을 만나 사건 처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를 '트럭 몰고 다니는 여자'로 만든 남편을 원망한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데 이렇게 많은 물건을 소유해야 하나나는 될수록 소유를 줄이고 가볍게 살기를 지향하므로 웬만해선 물건을 사지 않는다. 반면에 불편한 것을 못 참고 일의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남편은 뭔가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면 먼저 도구와 장비를 갖추기에 바쁜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는 조금만 불편을 참으면 굳이 사지 않아도 될 물건들이 그가 한 번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그것은 사지 않으면 안 될 필수품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다른 집과는 달리 우리 집은 내 물건보다 남편의 물건이 훨씬 많다.
지리산 자락에 임야를 사고 난 이후 남편의 필수품 목록은 규모나 물량 면에서 내가 감당하기에는 벅찰 정도로 커져 버렸다. 제일 먼저 그가 사들인 것들은 각종 전동공구들이었다. 마스터 쏘, 슬라이딩 쏘, 콤프레샤, 각종 타카, 그 밖의 셀 수도 없이 많은 공구들이 매일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는 인터넷 쇼핑이 있기 전에는 볼펜 한 자루도 자신이 손수 사지 않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인터넷 쇼핑을 알고부터 물건에 대한 정보가 넘쳐 각종 공구들과 물건들을 사들이더니 나무 파쇄기며 윈치, 심지어 대형 먼지 흡입기까지 사들여 나를 경악시켰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데 이렇게 많은 물건을 소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범죄행위처럼 두렵고 겁이 날 뿐만 아니라 소유의 무게에 내 존재가 가라앉는 위기감이 드는 것이다.
이럴 수가... 굴착기를 사겠다고?말리고 싸우고 애걸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장비를 사들이더니, 어느 날 굴착기와 덤프트럭을 사겠다는 지경까지 왔다. 이번만큼은 돈의 규모가 워낙 커서 내 동의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겠던지 나에게 의논을 해 왔다.
이럴 수가…. 지금까지 그가 사들인 장비 때문에 들어간 돈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데 어떻게 이럴 수가….
당연히 나는 반대했고 그는 그것들을 사야만 하는 자신에게만 절실한 이유를 들어 나를 설득하였다. 매일 사겠다, 안 된다 입씨름을 하던 어느 날, 잡지에서 영화감독 김기덕씨가 오백만 원짜리 중고 굴착기를 사서 강원도 산골에 오두막을 짓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정도라면 남편의 소원을 못 들어 주랴 싶어 굴착기를 사는 데 동의하고 말았다.
한 번 구경해 본 적도 없는 굴착기를 사러 중기매매 하는 곳을 돌아다녔지만 오백만 원짜리 굴착기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 값이 싼 것은 너무 낡아 수리비가 더 들어간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천팔백만 원을 주고 비교적 상태가 좋은 중고 굴착기 한 대를 샀다.
무리해서 굴착기를 샀으니 트럭은 포기하려나(?) 했더니, 산에서 살려면 트럭이 꼭 필요하다고 이번에는 삼 년 전에 산 자신의 승용차를 팔겠다고 한다.
국책 연구소에 다니는 사람의 신분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자제하라고 내가 아무리 말려도 형편에 맞지 않은 대형 승용차를 사더니, 지리산 터를 산 이후 인생관이 바뀌어 자기에게는 고급 승용차보다는 트럭이 더 필요하므로 승용차를 팔겠다고 한다. 비싸게 샀던 승용차를 팔려고 내놓으니, 신형 소형 덤프트럭 한 대를 사는 것과 값이 같았다.
인생관이 바뀌어 트럭을 타고 출근해도 거리낄 것이 없다고 큰소리치는 남편을 그대로 두어야 하는데, 바보 같은 나는 그걸 못 참고 그에게 물려받았던 캐러밴을 내주었다. 이렇게 해서 결국 트럭이 내 차지가 되었다. 평소에 나는 좋은 차를 갖고 싶지도 않았고 차는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별다른 거부감 없이 트럭을 몰고 다녔다.
난 어떤 일을 당해도 기죽지 않고 트럭을 몰고 다녔다모임이 있는 날에는 차가 없는 친구들을 옆자리에 태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덤프트럭을 타보겠느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고급 식당 주차장에 들어서면 놀란 주차 요원이 "아줌마, 어디 가세요?"하고 뛰어나오는 일을 당해도 기죽지 않고 트럭을 몰고 다녔다.
그러나 트럭을 운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주행은 별문제가 없으나 주차공간이 좁은 병원이나 공공장소에 갈 때는 내 실력으로 주차하기가 힘들어 되돌아 나오거나 접촉사고를 내고 만다.
운전 경력 이십 년이라고 하나, 남편이 손봐준 차를 몰고만 다녔을 뿐 차의 기능이나 특성을 잘 모른다. 더구나 트럭에 대한 기초 상식이 없어 트럭을 비탈길에 세워 놓고 엔진 브레이크를 걸어 놓지 않아 차가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지리산 터에서 경사진 커브 길을 돌다 차가 미끄러져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순간 다행히 차가 나무에 걸려 사고를 면하기도 했다. 가벼운 접촉사고를 너무 자주 내 자동차보험회사 지점을 경영하는 남편 후배에게 창피하여 작은 사고는 혼자서 자비 부담으로 처리하고 만다.
그래도 트럭에 대한 불만을 남편에게 말하지 않는다. 내가 불평을 하면 그는 무리를 해서라도 기어코 차 한 대를 또 사고 말게 빤하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쓰지 않고 소유를 줄여서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데, 그는 써야 할 돈을 쓰지 못하는 것이 구속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도 들고, 건강도 좋지 않고, 은퇴도 다가와서 준비가 부족한 노후가 걱정되는데 아직도 무언가를 사들이는 그를 보는 내 마음은 걱정과 미움, 연민이 교차한다.
한 달 후면 남편의 회갑이다. 트럭 때문에 승용차를 팔아 버리고 낡은 캐러반을 타고 다니는 아버지를 위해 자식들이 회갑기념으로 차를 사준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당신에게 미안했다며 그 차를 나에게 선물하겠다고 하지만 나는 받고 싶지 않다. 나는 새것보다 헌 것이, 비싼 것보다는 싼 것이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을 때처럼 편하다.
자주 사고를 일으키는 트럭 대신 그에게 낡은 캐러반을 돌려받아 마음 편하게 다니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