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다보면 문득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생각난다. 뉴욕 맨해튼 중앙에 위치한 센트럴파크는 340만㎡(약 100만 평) 규모로 맨해튼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는 공원이다.
서울의 올림픽공원은 약 43만평 규모로 센트럴파크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몽촌토성의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데다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높낮이가 센트럴파크 못지 않게 멋진 산책코스를 가지고 있다. 물론 1857년에 조성된 센트럴파크보다는 역사가 짧지만 몽촌토성의 우거진 나무를 그대로 살려서 만들었기 때문에 아름드리나무들도 상당히 많다.
1986년 아시안게임이 열릴 때 만들어진 올림픽 공원은 25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조경과 산책코스, 호수를 낀 벤치 등 멋진 풍광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몽촌토성을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는 야생의 새들과 토끼, 다람쥐들이 걸어 다니는 환상의 길로 변했다.
'꽃길 천국'인 토성의 길... 봄철 산책하기엔 안성맞춤
올림픽공원의 산책로는 호반의 길, 토성의 길, 추억의 길, 연인의 길, 그리고 젊음의 길 등 다섯 개로 나누어진다. 그 어느 코스나 꽃과 나무, 새들과 함께하는 멋진 코스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코스는 토성의 길이다.
몽촌토성을 따라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굽이굽이 이어진 토성의 길은 도심 속 산책코스로는 최고의 길이다. 토성의 길로 들어서려면 동2문 지하철 5호선 올림픽공원역 3번 출구에서 내리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에서 내려 평화의 문으로 들어와도 무방하다.
지하철 5호선 올림픽공원역 3번 출구로 나가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입구를 연상케 하는, 서울에서 가장 멋진 지하철 입구인 삼각형 모양의 유리탑이 나온다. 건너편엔 올림픽상가 광장이 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
느티나무가 도열한 만남의 광장을 지나면 하늘로 활처럼 비상하는 거대한 '88 서울올림픽' 탑이 서 있다. 이탈리아의 스타치올리, 마우로가 제작한 이 탑은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심벌이다.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열광하고 있는 단 위의 선수들이 생각나는 탑이다.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올림픽조각공원은 세계 5대 조각공원으로 꼽힐 정도로 작품성이 높은 조각품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당시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던 조각가들은 2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적인 작가들 반열에 끼어있기도 하고, 작품 한 점의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 야생화와 우거진 숲을 헤집고 작가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하루 종일 조각 작품을 감상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세계 5대 조각공원인 '올림픽조각공원'도 훌륭한 산책로
88마당이 시원스럽게 잔디밭을 이루고 있다. 88마당을 끼고 좌측으로 돌아가면 야생화단지로 들어가는 토성길이 나온다. 토성의 길은 이곳 야생화단지에서부터 우측으로 올라간다.
야생화단지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야생화가 계절별로 구분되어 심어져 있다. 지금은 동강할미꽃을 비롯하여, 금낭화, 양지꽃 등 봄 야생화가 봄 향기를 물씬 머금고 피어 있다. 사철나무로 만들어진 미로에 들어가 숨바꼭질을 한번 해보는 것도 즐겁다.
총 2340m의 토성의 길은 시계방향으로 돌아간다. 다소 가파른 언덕을 넘어가면 잣나무 숲이 나오고, 건너편에 움집터전시관이 나온다. 움집터전시관에는 백제시대 움집을 재현에 놓고 있다.
움집터를 돌아가면 고래처럼 생긴 올림픽수영경기장이 고개를 쳐들고 있고, 그 앞으로 88호수가 그림처럼 드리워져 있다. 나루로 만들어진 방어울타리가 옛 백제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가족놀이동산을 끼고 밑으로 내려가면 드넓은 농장이 나온다. 내성농장이다. 지금은 짙푸른 보리와 유채꽃이 피어나며 싱그러운 봄날을 알리고 있다. 멀리 '나홀로(측백나무)' 나무가 외로이 토성을 지키고 있다. 내성농장은 사계절 다른 농작물을 심는다. 농장 앞 능수버들 나무 밑에는 항상 사진작가들이나 아마추어 사진동호회원들이 모려 있다.
현대와 과거의 문명을 만날 수 있는 길
내성 농장을 끼고 언덕을 올라가면 치렁하게 늘어진 능수버들 나무가 멋스럽게 서 있고 몇 걸음 더 올라 가면 530년 된 은행나무 한그루가 마치 거대한 공룡처럼 서 있다.
코끼리 모습 같기도 한 은행나무는 이 공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나무다. 은행나무에서부터는 상당히 가파른 언덕이다. 몽촌해자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건너편에는 색이 다채로운 평화의 문이 서 있다.
8층 높이의 평화의 문은 한옥의 추녀와 궁궐의 단청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다. 날개 하단에는 단청을 주조로 하여 청룡, 주작, 백호, 현무의 사신도가 그려져 있고, 건축물 좌우로는 '열주탈'이 도열해 있다. 평화의 문 중앙에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받아온 평화의 성화가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드디어 깔딱 고개다. 토성의 길은 깔딱 고개 같은 언덕이 드문드문 나타나 지루하지가 않다. 깔딱 고개를 올라가면 전후좌우로 서울 시내가 환하게 보인다. 다만 최근에 잠실 시영아파트가 만리장성처럼 벽을 쌓고 있어 북한산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촘촘히 박힌 고층아파트는 서울의 전망을 괴물처럼 가로막고 있다. 싱가포르처럼 조형미를 살린 건축을 할 수는 없었을까?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이 능선이 토성의 길 중에서 가장 시원스럽고 아름다운 길이었기에 더욱 안타깝다.
몽촌해자를 바라보며 능선을 따라 걸으면 가장 꼭대기에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다. 그곳에서 물레방아가 있는 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다시 야생화 단지로 이어지고 토성의 길 2340m 길은 막을 내린다. 그러나 길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로처럼 얽혀진 길이 사방으로 이어진다. 호반의 길, 연인의 길, 젊음의 길…
아니 굳이 그 이름을 들 필요도 없다. 그 어느 길로 가나 주변 풍경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전혀 지루함을 모른다. 새들이 쫑쫑 걸음으로 다가서고, 과거와 현대의 문명과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올림픽공원은 도심 속에 최고의 산책길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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