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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칼 들고 시장 갈 건데, 같이 갈래요?"

 

며칠 전 퇴근하고 집으로 걸어오던 아내가 뜬금없이 말을 한다. 우리가 사는 마을은 시골이라 버스를 기다려도 한 시간이다. 시장을 보려면 퇴근할 때 시내에서 장을 보고 왔어야지 않는가. 퇴근하고 와서 시장을 보자니 그것 참. 더 뜬금없는 것은 시장바구니도 아니고 달랑 칼만 들고 시장을 가자니.

 

아내는 칼과 비닐봉지를 챙겨 집을 나선다. 아하! 그렇구나. 아내의 말뜻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아내는 칼을 들고 봄나물 캐러 가자는 이야기였던 것. 눈치 없는 내가 느린 건지, 아내가 뜬금없는 건지 따져볼 새도 없이 우린 벌써 들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퇴근하면서 보아놓은 데가 여기 어디쯤 이었는데........."

 

아내는 마을 사람들과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면서 달래와 고들빼기 등이 많은 것을 봐 두었던 것이다. 우리 마을은 길가에도 봄나물이 종종 자라고 있다. 아내는 마을 사람들이 같이 있을 때 차마 캐지 못하고, 살짝 캐러 온 것이다. 혼자 캐기 무안해서 굳이 나까지 대동을 하고 말이다. 그거 있잖은가. 공범이 있어야 든든한 심정(?).

 

아내는 무슨 재미있는 오락 게임을 만난 아이처럼 신나게 나물을 캔다. 하나둘 캐는 아내의 얼굴엔 미소가 하나가득이다. 아마도 아내의 손은 여기에 있지만, 아내의 마음은 벌써 밥상에 가 있는 듯. 들길 가엔 나물이 가득 하지만, 아내의 생각에는 나물 비빔밥으로 가득하다. 그 나물 캐어서 식구들과 나눠 먹을 생각, 남편과 아이들의 입에 들어가게 할 생각 말이다.

 

그러고 있는 아내 옆에서 나는 무엇을 했을까. 거들어 줄만도 한데, 원래 그런 일에 취미가 없는 나는 그저 옆에 있다. 아내도 내가 캐지 않을 줄 안다. 나도 아내가 혼자 캐어도 좋아할 줄 안다. 옆에만 있어도 좋아할 줄 안다. 길가라서 마을 사람들이 지나가도, 내가 옆에 있어 마음 놓고(?) 캐기 때문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마을 아저씨가 트랙터를 몰고 우리 옆을 지나간다. 내가 먼저 크게 인사한다. 아내가 미안할까봐.

 

"아저씨, 안녕하세요. 밭 갈러 가시나 봐요."

"아. 그려. 나물 캐는구먼. 좋을 때다 좋을 때여"

 

아저씨가 지나갔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내는 또 '나물 캐기 삼매경'에 돌입한다. 그렇게 그 저녁에 40분 정도 들길에 있었는데, 비닐봉지에 나물이 하나가득이다. 아내 말대로 칼 들고 시장가서 봄나물을 비닐봉지 하나 가득 사온 셈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행복을 캐내었다.

 

그날 저녁 아내는 그 나물들을 비볐다. 새콤달콤한 초장을 만들어 비볐다. 우리 가족은 아주 행복한 시골밥상으로 저녁 한 끼를 해결했다. "시장 보기 차암 ~~ 쉽죠잉. 한끼 해결하기 차암~~· 쉽죠잉"이란 한 개그우먼의 개그가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내는 시장 보는 것에 맛 들였다. 걸핏하면 칼 하나 달랑 들고 시장 간다. 조금만 눈을 열면 장거리가 지천에 늘려 있다. 쑥, 고들빼기, 민들레, 달래 등등. 아내는 "사실 독이 들어 있지 않은 거라면 들풀은 아무거나 다 먹어도 된데요"라며, 자신의 시장보기 행위에 힘을 실었다.

 

물가도 올라서 장보기가 무서운 요즘, 우리 가족은 아내의 '칼만 들고 장보기' 열정 덕분에 행복한 시골밥상을 거의 매일 즐기고 있다. 오늘도 쑥국에 달래 비빔밥이다.


태그:#봄나물, #더아모의집, #안성,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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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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