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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며...바위벽을 오르는 남편 모습...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며...바위벽을 오르는 남편 모습... ⓒ 이명화

(사)영남양산문화센터 부설 양산등산교실(교장 김명관·양산시민신문 대표, 학감 이상배)에 입교한 후 갈수록 더 흥미롭다. 지난 1주차 주말에는 '릿지등반을 했는데 참석하지 못했다. 2주차 토요일(4.29) 낮 1시에 언양 작천정 언양상회 앞에 집결해 김태훈 대표강사의 강의로 독도법(나침반으로 길 찾기)을 배웠다. 머리가 쥐가 나도록 열중했지만 어려웠다. 저녁에는 야영을 하고 다음날 오전엔 독도법을, 오후에는 언약작천산에서 슬랩등반(30~75도 정도로 경사진 암벽을 오르는)이 계획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꾸 실전훈련에 빠졌던 남편과 나는 다음날 오후 조금 시간이 늦었지만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머리 위로 깎아지른 가파른 바위벽에 붙어 있는 사람들 모습이 보이고 구호를 외치는 소리와 산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득히 솟아오른 저 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는 정, 미워하는 정...'클라이머의 찬가'였다. 계곡을 건너 교육장소에 도착했다.

작천 슬랩 거의 실신할 것 같았던 남편, '완료!" 하고 소리치고...ㅎㅎㅎ
작천 슬랩거의 실신할 것 같았던 남편, '완료!" 하고 소리치고...ㅎㅎㅎ ⓒ 이명화

강사 몇 분은 바위 위에 높이 올라가서 로프를 정리하면서 안전하게 훈련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고 아래는 또 대표강사와 이상배 학감님, 그리고 몇몇 강사들과 바위등반을 준비하고 있는 동기들 모습이 보였다. 바위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동기들도 보였다. 늦게 합류한 우리는 서둘러 암벽화로 갈아 신고 안전벨트를 차고 안전모를 착용했다.

암벽엔 줄이 세 개가 나란히 적당한 간격을 두고 길게 내려와 있었다. 1.2.3번 줄을 모두 해내야 한다고 했다. 이제 막 우리 앞에 서 있던 최희례씨가 암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최희례씨도 우리처럼 남편과 함께 등산교실에 들어온 사람이다. 희례씨는 몇 발짝 올라가다 말고 바위에 붙어서 아예 움직이지를 못하고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 되겠어요. 못하겠어요. 내려줘요~'

작천 슬랩 바위 꼭대기에 앉아 휴식~
작천 슬랩바위 꼭대기에 앉아 휴식~ ⓒ 양산등산교실

... 고소공포증 극복...이제 여유있는 모습으로 하강준비...ㅎㅎ
...고소공포증 극복...이제 여유있는 모습으로 하강준비...ㅎㅎ ⓒ 이명화

절박한 목소리로 구원을 요청했지만 대표강사는 '내려오는 길은 없습니다. 올라가세요!'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어머, 어머 아~안 되겠어요~거의 실신할 것처럼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다. '몇 번이나 불안에 떨면서 도움을 요청했고 학감님이 다가와서 올려다보며 '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 보폭을 조금씩 올라가보세요.' 하여튼 몇 분 동안 울 듯 말 듯 두려움에 떨다가 더 이상 내려갈 수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는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무사히 통과했다. 휴~

그다음엔 남편차례. 남편은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8자 매듭을 다시 연습한 뒤 오른쪽 맨 끝에 있는 3번 줄 앞에 섰다. 8자 매듭을 만든 로프를 안전벨트에 채우고 강사의 지시에 따라 소리쳤다.

"13번(모자에 적힌 번호) 아무개 3번줄 출발!"

위에서 '출발'하고 신호가 왔다. 드디어 남편은 벽에 붙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남편인지라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로프를 잡고 올라가는 줄로만 알고 있던 남편은 두 손과 두 발로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생소했다. 높은 바위벽을 한발씩 나아갔다. 4분의 1쯤 갔을까. 남편은 바위에 붙어서 소리쳤다.

"대기! 대기! 못 올라가겠습니다."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던 대표강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기가 어딨어!'하고 말했다. 그동안 많은 수련생들을 겪었던 그는 노련하고도 여유 있게 지켜보았다.

"못 올라가겠습니다. 내려가야겠습니다!"하고 남편이 다시 소리였다. 강사는 '내려오는 길은 없다. 올라갈 뿐이다.'라고 응수했다. '천천히 올라가세요.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로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그저 말할 뿐이었다. 남편의 도움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작천 슬랩 고소공포증 있는 남편...못 올라가겠다고 한 바탕 난리를 치뤘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 이젠 평지를 걷고 뛰듯 높은 바위위에서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
작천 슬랩고소공포증 있는 남편...못 올라가겠다고 한 바탕 난리를 치뤘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 이젠 평지를 걷고 뛰듯 높은 바위위에서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 ⓒ 양산등산교실

슬랩등반 암벽 위에서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슬랩등반암벽 위에서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 양산등산교실

작천 슬랩 ...^^
작천 슬랩...^^ ⓒ 양산등산교실

등산은 오로지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고 수업시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강사님은 '나는 할 수 있다'를 열 번 소리치라고 했고 남편은 힘껏 '나는 할 수 있다'를 바위에 붙어서 소리쳤다. 조금 용기를 얻은 것일까. 그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고 오직 자신이 그 모든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는지 용기를 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남편이 고백해서 알았지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노라고 했다. 올라가다가 두 번이나 자신의 한계상황이 왔지만 사느냐 죽느냐의 경계에서 용기를 내서 올라갔다. 바위 위에 올라간 남편은 크게 소리쳤다. "완료!" 드디어 해낸 것이다. 한 번의 성취감으로 두려움을 극복한 남편은 이제는 계속해서 바위를 타고 싶어 했고 바위와 놀면서 희열에 차 있었다. 울먹이며 제일 많이 떨었던 아줌마도 이젠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내 차례다. 바위에 길게 내려진 줄을 잡고 8자 매듭을 만든 후 내 몸에 찬 안전벨트에 연결했다. 이것이 나의 안전을 지켜줄 생명줄이다. 등반에서 줄은 생명과도 같다. 줄을 믿어야 줄에 나를 맡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준비가 다 된 것을 점검한 뒤, 나는 크게 소리쳤다. 저 바위 꼭대기에서 들을 수 있도록!

"14번 이명화 3번줄 출발!"
"그래가지고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더 크게!"
강사가 말했다. 나는 다시 외쳤다.
"14번 이명화 3번줄 출발!"준비완료, 출발!"
"출발"

위에서 응답이 왔다. 나는 암벽에 두 손을 올려놓고 한발씩 발끝에 힘을 주면서 바위에 붙었다. 처음엔 좀 두려웠다. 손과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몰라 망설였고 미끄러질 뻔도 했지만 금방 익숙해졌고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이제 점점 탄력이 붙는다 생각하는 순간도 잠시 곧 바위 꼭대기에 이르렀다. 긴장으로 몸이 좀 굳은 것 같아서 숨을 한 번 크게 몰아쉬었다.

... 인증샷 날리고~
...인증샷 날리고~ ⓒ 이명화

위에서 잠시 휴식. 꼭대기에 올라앉아 하강을 준비하고 있는 동기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망중한. 마주 내려다보이는 사물들이 짙은 황사로 뿌옇게 흐려보였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아래로 계곡 건너편 도로가 내려다보이고 차가 달리고 있는 것과 멀리 집의 지붕이 내려다보였다.

가끔 바위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신기해하면서 올려다만 보았을 뿐 단 한 번도 내가 암벽타기를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지금 나는 여기 암벽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일반 등산할 때, 오르고 또 올라 산정에 올라 바라보던 느낌과 암벽을 타고 올라 앉아 보는 느낌이 사뭇 다르게 와 닿았다. 정확히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하지만 뭔가 다른.

이제 하강할 시간. 너무 많이 쉬었을까. 준비를 갖추어 오른손은 줄을 잡은 상태로 허리 뒤에다 손을 고정시키고 왼쪽 손은 앞에서 잡고 몇 걸음도 내딛기도 전에 내 몸이 휘청 어지러웠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던 것이다. 줄은 모든 안전장치가 되어 있어서 위험이 없다.

몸을 줄에 맡기고 걱정 말라고 강사는 말했지만 나는 줄을 의심했다. 줄에 내 몸을 맡기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이춘환 교육부장은 '나는 할 수 있다'를 다섯 번 크게 외치라고 했다. 나는 이젠 목이 쉬어 목소리가 갈라져 나오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대기 중인 동기들에게 교육부장은 '동기야 힘내라'라고 말하라고 했다. 대기하고 앉아있던 동기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기야 힘내라!"

다시 하강. 조금씩 서툰 걸음으로 줄에 내 몸을 맡기려고 노력하면서 한 발씩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차츰 겁이 사라지고 안전하게 내려갔다. 드디어 아래에 착지. 휴~

작천 슬랩 인증샷 날리고~
작천 슬랩인증샷 날리고~ ⓒ 양산등산교실

이젠 1.2.3번 줄 가운데 가장 난해하다는 1번 줄 앞에 섰다. 제일 어렵다고들 말했지만 나는 올라가는 것은 크게 어려움 없이 두 손과 두 발로 바위벽을 타고 올라갔다. 손과 발을 디딜 곳을 눈으로 찾아가면서 한 걸음씩 올라가다가 발이 다시 미끄러질 뻔도 했지만 곧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꼭대기에 도착. 거뜬하게 올라갔다. 이제 다시 하강. 처음보다 훨씬 편하게 내려갔다.

몸이 긴장으로 좀 지쳐있어 이젠 그만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쉬려고 하는데 모두들 바위 꼭대기에 집결한단다. 에고~다시 올라야 한다. 힘도 다 빠져 좀 지쳐있었지만 다시 몸을 긴장시켜 2번 줄까지 타고 꼭대기에 도착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제 두 줄을 내리고 안전 고리로 내 몸과 줄을 하나로 연결, 바위 꼭대기에 이열종대로 아래를 향해 섰다. 기마자세로 선채 아래로 내려가기 위로 올라가기를 반복하면서 구령을 외쳤다. '하나 둘, 셋 넷', '오리' '꿱꿱'...제법 경사 높은 바위였지만 모두들 평지를 걷듯 한참을 오르락 내리락 반복했다.

이제 바위와 친해진 교육생들은 모두 바위와 놀이라도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 다음번엔 두 사람씩 아래로 내려갔다가 뒤돌아서서 달려서 올라가기를 했다.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지만 모두들 극복하고 바위등반을 성공했다는 뿌듯함과 뻗어 오르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바위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 동기들 중에 등치가 제일 크지만 두려움으로 바위를 기피하려고 했던 1조 조장과 바위에 붙자마자 못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4조 최희례씨, 고소공포증으로 바위타기를 무서워해 바위를 오르다가 '대기' 대기' 소리치며 못하겠다고 했던 남편도 모두 바위를 즐기고 있었다. 희열에 찬 얼굴로. 남편은 자신이 고소공포증을 극복했는지 못했는지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고, 더 해봐야 알겠다고 했다.

바위 위에서 낑낑대며 힘들어했던 동기들 모두가 이젠 자신감과 뿌듯함을 가지고 슬랩등반을 즐기다보니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강사들과 교육생들 모도 하나 되어 기념촬영을 하고 바위를 내려왔다. 이제 강사들과 선배들, 그리고 함께 등반한 동기들과 모여앉아 맛난 식사를 하며 끈끈한 우정과 정으로 더욱 매듭을 단단하게 짓는 저녁이었다.

우린 조금 일찍 자리를 떴다. 어느새 어둠이 짙었다. 안에서는 한 목소리로 산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바깥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힘차게 부르는 '클라이머의 찬가'였다.

"찬란하게 솟는 햇살 받으며/반짝이는 바위벽을 오를 때/하늘보다 높고 푸른 /너와 나의 가슴에/구름처럼 흐르는 이 기쁨(반복)/눈보라가 몰아치는 계곡에/얼어붙은 빙폭들을 오를 때/바다보다 넓고 깊은/너와 나의 가슴에/파도처럼 밀리는 이 기쁨/밀리는 이 기쁨"


#슬랩등반#양산등산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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