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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중소상인, 축산농가 등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와 여야가 중소상인과 농가 피해대책 등에 대해 일부 진전을 보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법적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7월 협정 발효 이전에 EU 쪽과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하다.

 

SSM 규제 강화했다? "논리적 모순에, 국제법적 효력 없어"

 

이번 한-EU FTA 협정문 가운데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는 유통법과 상생법이 무력화되는지 여부다.

 

협정문에서 이미 국내 유통시장 개방을 허용해 놓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여야 합의로 통과된 유통산업발전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관한법(상생법)은 중소상인 보호를 위해 일정한 규제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이 때문에 협정이 발효될 경우, 유통-상생법과 충돌하게 된다.

 

정부와 여야는 유통법 가운데 SSM의 입점제한 거리를 현재 500m에서 1㎞로 늘리고 일몰시한도 최대 5년 연장하는 개정안에 합의했다. 실제 3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이같은 개정안을 의결했다. 4일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FTA 비준안과 함께 의결하겠다는 것이다.

 

협정 비준안보다 나중에 유통법을 개정했기 때문에, 신법 우선의 원칙을 적용해 중소상인을 보호할 근거를 마련했다는 주장이다. 또 FTA 발효된 이후, EU와 다시 협상을 통해 중소상인 보호를 위한 협정문 개정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선 국제법적으로 한-EU FTA가 발효되면, 국내법보다 우위적 지위를 갖게 된다.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한-EU FTA 협정문을 보면, 일단 협정이 발효되면 EU가 합의를 해주지 않는 한 FTA를 개정할 수 없다"면서 "FTA를 발효시켜 놓고, 개정협상을 하겠다는 여야 합의는 국제법적으로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통법 개정안 역시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오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현행 협정문에선 시장개방을 약속해 놓은 분야에서 이를 제한하는 어떤 것도 금지하고 있다"면서 "비준안 이후에 유통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것 역시 협정 위반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협정문 7조 5, 6항 시장접근과 내국민 대우 규정에서, 시장접근 약속이 행해진 분야에서의 서비스 영업의 총 수나 총 산출량 제한을 금지하고 있다. 또 서비스 공급자에게 자신과 같은 서비스뿐 아니라, 별도 불리한 대우를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협정 발효 이전에 EU와 재협상 해야"...축산농가도 거세게 반발

 

이에 따라 정부가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선 협정 발효가 되기 전에 EU와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변은 "EU와 재협상을 해서, 한국의 유통법과 상생법을 존중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라도 먼저 받아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고서는 국내에서 여야간 어떤 합의를 하고, 법을 개정하더라도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변은 또 EU와 친환경 무상급식에서 국산 농산물 사용 약속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FTA 협정문에선 서울시와 경기도 등 자치단체에서 급식 식품을 발주할 때 국산 농산물 우선 사용을 금지해 놓고 있다. 이 역시 재협상을 통해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내부와 농민, 축산농가들의 반발도 거세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등 의원 6명은 이날 오후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를 반대하면서, 국회 본청 중앙홀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이날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현재의 FTA 협정문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키면, SSM 규제법은 무력화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며, 정부는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동영,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도 비준안 처리에 반대의사를 분명히했다. 이들은 지난 4·27 재보선에서 야권연대의 정책합의를 거론하면서, "이는 정책연대 합의정신에 명백히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양돈협회와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의 농가대책이 "생색내기용에 불과하다"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는 유통법 개정안과 함께, 협정발효 후 10년 동안 농작물 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보전해주고, 각종 사효나 기자재 등에 대한 세금혜택을 유지해 주는 대책 등을 내놨다. 하지만, 이들 농민과 축산단체들은 "이들 대책이 축산농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근본책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태그:#FTA, #유통법, #상생법, #S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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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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