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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주년 세계 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가 무대에 올라와 연대사를 하고 있다.
 제121주년 세계 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가 무대에 올라와 연대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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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노동절. 손학규·이정희·조승수 야당 대표들이 노동절 집회에 참여해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를 이야기했다. 지난 4월 27일 재보선에서의 '중요한' 승리가 이들을 국민 앞에 서게 한 것이다.

다음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는 "당이 총력을 다해서 죽을 각오로 싸워 승리했다"고 말한 뒤 "이제는 제대로 우리 스스로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국민들로부터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 냉엄한 현실 속에 우리 자신을 혁신이라는 커다란 바람 속에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랬다. 손 대표의 말마따나 실제 재보선의 승리는 쉽지 않았다. 야당이, 국민이 '죽을 각오'로 싸웠기에 가능했다. 이명박 정권 3년의 엄청난 실정에 비하면 정말 힘들고 어려운 승리였다.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특히 언론 때문이었다. 조중동 등 수구 보수 매체야 논외로 치더라도 방송들이 제 역할만 했다면 손쉬운 낙승지세였다.

명백한 부정선거를 '상호 혼탁'으로 둔갑시킨 KBS·MBC 뉴스….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촛불 시위에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 인터뷰하는 식의 '보이는 손'과 무기력한 자기검열이 작동된 결과였다. 언론장악으로 점철된 이명박 정권 3년의 성과였다. 그 틈을 비집느라 죽을 고생을 한 누리꾼들, 트위터, 페이스북, 인터넷 언론…. 재보선 승리는 시민들의 고군분투에 의해 그나마 진실이 알려졌기에 가능했다.

조만간 2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작된다. 방통심의위는 방송에서 공공성과 공정성, 그리고 다양성을 구현하고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독립기관'임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심의위원 3명을, 여야가 각각 3명씩을 추천해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결국 '6대3'의 정파적 심의로 이어져 뉴스 보도와 시사프로그램,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검열하는 기구로 기능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의 문제점과 광우병 위험성을 지적한 MBC <PD수첩>에 '시청자 사과'라는 징계 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인터넷 포털에 올린 '소비자 불매 운동' 글을 삭제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심지어 시트콤의 '빵꾸똥구'라는 표현까지 문제 삼았다. 한 심의위원은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편을 만든 제작진에게 '방송 6일 만에 일어난 연평도 피격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상 검증'마저 서슴지 않았다.

지역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 "민주당 도대체 제정신인가?"

이런 과정을 통해 방송통신심의위는 정권이 불편하게 느끼는 목소리들을 잠재워왔고, 기자와 PD에게 자기검열을 강요해왔다. 정권의 피아노가 되지 않겠다는 언론을 옥죄고, 해당 프로그램을 손보거나 이후 개편에 영향을 주는 근거를 만들어 주었다. 한국 사회의 여론 흐름을 '조정'하는 도구, 그것이 MB정권 하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이었다.

집권 후반기 이명박 정권은 이러한 패턴을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해 '집권 연장'을 위해 복무할 '공안 전투병'들을 방송통신심의위에 배치했다. 공안 검사 출신인 박만과 최찬묵을 심의위원으로 청와대가 낙점한 것이다. 박만 변호사는 2003년 송두율 교수와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지휘했던 대표적인 공안 검사로 2008년 8월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임 결의를 주도했다. 최찬묵 변호사 역시 부산지검 공안부장 출신이다. 거기에 <조선일보> 출신의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 정연주 사장 축출 시 손발을 맞췄던 권혁부 전 KBS 이사도 포함시켰다.

집권 전반기에는 비판 보도 통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총선과 대선이 있는 후반기에는 아예 공안몰이로 나가기로 작정한 모양새다. 총선을 코앞에 둔 내년 3월, 조중동 종편방송이 대대적으로 천안함 사건 2주기 특집 나팔을 불어대며 마녀사냥을 유도하고, 방송통신심의위는 비판적 제작자들을 징계로 위협해 침묵시키는 광경이 벌써 눈에 선할 지경이다.

6대3 구조에서 그나마 밀리지 않고 균형 감각을 갖고 버티려면 '방송의 공공성, 공정성, 다양성, 표현의 자유'에 대한 소신과 전문성을 갖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민주당이 박경신 고려대 교수, 장낙인 전북대 지역디지털미디어센터 초빙교수를 추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마지막 한 명이 걱정이다. 민주당의 한 실력자가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그 한 사람'은 도대체 격에 맞지 않은 인사다. 오죽하면 그가 있던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민주당 도대체 정신이 있는 집단인가?'라는 성명이 나올 정도다.

지난 4월 20일 전북지역 언론사들과 언론시민사회단체,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북진보연대는 "4월 27일 재보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의 초당적 단합을 요구하는 지역시민사회의 마음이 이 순간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과연 민주당이 우리가 연대해야 할 세력인지 아닌지 헛갈릴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그 한 사람'은 얼마 전까지 전북 지역 민영방송사의 사장을 했던 김아무개씨다. 그는 지역방송에서 6년간 재직하면서 지역지상파 방송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노조 간부를 부당 해고하는 등 노조탄압을 일삼아왔다. 부당해고, 단체협약 일방해지, 연봉제 강요….

오죽하면 노조에서 방송 정상화를 위해 두 달간 파업을 하고 전 조합원들이 삭발까지 했겠는가! 심지어 수당을 줄이기 위해 아침 뉴스를 전날 저녁에 녹화해 내보냈고, 자신의 운전기사를 카메라 기자로 발령내는 등 비상식적인 인사를 자행하기도 했다.

방송통신심의위 '제대로 된 사람' 배치해야

어떻게 그런 인사가 추천될 수 있었을까? 결국 민주당의 정체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으며, 이 문제는 두고두고 야당의 발목을 잡는 화근거리가 될 것이다.

민주당은 몇몇 유력자들이 좌우하는 '사당'이어서는 안된다. 특정지역 출신이면 웬만한(!) 과오는 눈감아주는 지역당이어서도 안 된다. 오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모든 야당,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후보단일화와 정책연합, 나아가 연립정부를 만들어가야 할, 국민과 함께 발맞춰 나가야 할 '공당'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할 덕목이 바로 공평무사함일 것이다.

공당인 민주당이 특정 개인의 기호와 유불리, 친소 관계에 따라 방송통신심의위원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이는 언론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이며, 이후 총선과 대선에 관련된 언론보도 그리고 여론 흐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뛸 이명박 정권의 '공안 물결'에 언론이 휩싸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야당들이 국민들이 '암흑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재보선 승리를 값지게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한 사람'을 세워야 한다.

이는 결코 한 번 눈 감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현 방송통신심의위의 임기는 오는 6일까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공론을 통해 바로 잡는 것이 '수권정당'의 이름에 걸맞은 당당함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강택 기자는 언론노조위원장입니다.



태그:#방송통신심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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