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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침. '뭘 먹어볼까?'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며칠 전 사놓은 콘푸라이트에 손이 간다.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 들고 그릇을 찾으려는데, 아뿔싸! 그릇은 없고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만 가득하다. 문득 연예인 홍경민이 떠올랐다.

지난 2일 MBC <놀러와> 프로그램에서 홍경민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짠하게 했다. 36세 노총각, 5년째 솔로남인 홍경민이 몸서리치게 외로워질 때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남들은 빨래와 설거지는 정해진 날에 한다지만 홍경민은 더 이상 입을 게 없을 때, 더 이상 쓸 그릇이 없을 때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몸서리치게 외로워질 때 1위는 바로 '요리할 때'. 그는 "국물에 넣고 남은 파는 어찌하리오?"라며 자신의 처절한 외로움을 표현했다.

나홀로 음식의 자격! 그 치밀한 계산... 그러나

라면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현실(자료사진)
 라면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현실(자료사진)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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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생활 3년째인 나는 내공이 쌓이지 않아 파가 들어가는 요리는 하지 않는다. 큰 맘 먹고 요리를 하는 날이면, 파가 문제가 아니라 음식이 남게 돼서 문제다. 특히 유일하게 끓일 줄 아는 미역국과 된장찌개는 항상 양 조절에 실패한다. 이들은 요즘같이 더워지는 날에는 발효가 빨리 돼서 못 먹거나 어찌된 영문인지 조그마한 벌레 한 마리가 꼭 헤엄치고 있어 그대로 싱크대로 직행한다.

그리고 누군가 요리를 하면 누군가 설거지를 해주는 게 인지상정인데, 이러한 순환이 없으니 요리를 하고 나면 꼭 설거지할 그릇이 쌓이게 된다. 그렇게 쌓인 그릇은 곰팡이를 만나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결국 맛도 좋고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니라, 버리기 좋고, 설거지 안 해도 되는 컵라면, 삼각김밥에 손이 갈 수밖에 없다. 특히 음식을 혼자 먹을 때는 심심하지 않아야 하는 게 관건이다. 먹으면서 TV를 볼 수 있는 빵이나, 자취생들의 영원한 로망 컴퓨터 옆 컵라면 먹기가 제격이다. 이쯤 되면 밥 먹는 게 빨리 처리해야 할 일이 된다.

음식 먹는 일이 하나의 처리해야 하는 일이 되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치밀한 계산에 들어갔다. 나의 생활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서 말이다.

혼자 장을 보고, 혼자 요리를 하고 홀로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데 들어가는 노동시간과 인건비, 그리고 음식을 남겼을 때의 처리비용까지 계산을 하면 5000원짜리 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매우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다. 식당은 장을 보고, 요리를 해주고, 설거지까지 해주면서 나에게 5000원을 받지 않는가?

맛집 찾아다니는 '나홀로 밥상족'?... 거리가 멀다

구내식당 모습(자료사진).
 구내식당 모습(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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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나 이 5000원을 함부로 쓸 수 있는 20대도 많지 않다는 게 또 하나의 문제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혼자 여행을 하면서 맛집을 다녀온 이야기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들이 참 많이 올라온다. 

오늘도 서로 마주 보지 않은 채 식당의 대형 TV 방향으로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자취생, 취업준비생, 그리고 고시생들에게 블로그 속 이야기는 먼나라 이야기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주 이용되는 곳은 바로 학교 '학생회관'.

서울대의 경우 학생식당에서 1700원으로 아침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음식값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학생식당을 자주 이용하는데, 나와 같이 학생식당 예찬론자들을 찾는다면 아마 같이 밥을 먹는 것도 가능하겠다.

그러나 학생식당을 이용하는 '나홀로 밥상족'에게도 치명적인 계절이 있으니 바로 3월. 이들은 새내기가 들어오는 3월이 되면 밥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선배 입장에서 신입생들에게 학생식당에 가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비싼 식당에 데려갈 수도 없다. 아예 밥을 사주지 않고 혼자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는 걸 보여준다면 그거야말로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카더라' 통신도 사라진 요즘, 용기 내 트윗이라도 날려보자 

그래서 예전에는 이와 관련된 카더라 통신발 미담이 많았다. '어느 선배가 빚을 져서 새내기들에게 밥을 사줬다고 카더라?', '어느 선배는 3월을 대비해 공사판과 공장을 뛰었다고 카더라' 등.

그런데 최근 이런 카더라 통신과 미담도 다 사라졌다. 새내기들도 선배들에게 밥 사달라는 말을 잘 하지 않기 시작한 거다. 그러다 보니 3월이 되면 부쩍 학생식당에는 밥을 혼자 먹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확실한 연구 결과가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20대 나홀로 밥상족 중 대다수는 이렇게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이 혼자 밥을 먹다가 그게 익숙해진 사람들일 거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말이다.

'나홀로 밥상족'은 단순히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떠나서,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의심하는 눈초리,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로 혼자 밥을 먹으며 자신의 쿨함을 강변하는 시선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나홀로 밥상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즐거움'일 것이다. (음식) 메뉴 통일로부터의 해방감과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라면 타인의 따가운 시선쯤은 집어삼킬 수 있다.

정 혼자가 싫다면, 혼자 밥을 먹으며 '트윗'이라도 날려보자. 경제적 이유로, 혹은 용기가 없어 밥을 일처럼 먹고 있을 누군가가 기쁘게 대답할지 누가 알랴?


태그:#나홀로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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