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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내려놓음과 비움.' 비가 오락가락하는 석가탄신일, 창밖 너머로 보이는 산안개를 바라보며 어머닐 생각하고 법정스님의 말들을 떠올렸다. 지금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이 일에서 벗어나는 것, 평생 해 온 일을 조금씩 내려놓는 것인데.

 

아내는 어머닐 만나 이야기할 때마다 종종 내려놓으라는 말을 하곤 했다.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만 힘드니 내려놓고 편하게 마음 가지라 했다. 하지만 어머닌 대답만 '그러마' 하곤 늘 그대로였다. 이번만 해도 그랬다.

 

어버이날 하루 전, 온 식구들이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맞는 어버이날이라 어머니 마음도 헤아리고 농사일도 도울 겸 해서 조금 일찍 시골집에 도착했다.

 

어머닌 야위고 안 좋은 표정으로 마당에 서 있었다. 차안에서 본 어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옆에 앉은 아내에게 혼자말처럼 물었다.

 

"어디 아프신 거 아냐? 얼굴 표정이 안 좋네. 힘도 없어 보이고."

"그러게. 엊그제 전화했을 때 어디 아프다고 안 했는데…."

 

차에서 내리면 언제나 '왔냐' 하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이번엔 한숨부터 내쉬었다. 어디 아프냐는 말엔 대답도 안 하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늙으면 이 꼴 저 꼴 안 보고 죽어야 하는디… 너그 아부진 뭐 한다냐. 빨리 데려가지 않고.' 한다.

 

"왜 그러는데요?"

"보면 모르냐. 남들은 다 일하고 있는데 방구석에 누워 잠만 자고 있으니 속 터져 그런다."

"피곤하니까 그렇겠죠."

"피곤혀도 그렇지 아측부턴 일부러 내 속 터지라고 잠만 자고 있다. 지가 뭐라고 사흘 동안 초상집에 있다가 아침에 들어와서 잠만 퍼자고 있으니……."

 

그러더니 이젠 아예 눈물까지 보인다. 그러면서 또 죽는다는 타령을 하기 시작한다. 농사짓는 아들 타령을 주절이 내놓는다. 난 그 말이 듣기 싫어 자리를 떠자 아내가 어머니 옆에 앉아 이야기 상대가 되었다.

 

"내가 지놈보고 농사지라고 했간디 농사짓는다고 늙은 애미 고생시켜. 농사를 짓는다고 했으면 제대로 하던가 맨날 차타고 까질러 다니기만 허고… 저그 모정 옆에 밭도 빨리 치워야 헌다. 동네 사람들이 다 욕혀."

"어머니! 서방님이 농사 짓는 지가 일이년이간요. 십년이 넘었어요 십년이. 어머닌 어머니 방식대로 농사를 짓는게 있어 그렇지만 서방님은 서방님 방식대로 농사를 짓잖아요. 다 알아서 할 텐데 뭣땜에 그러세요."

"지가 뭐가니 사흘 밤낮을 초상집에 붙어 있어. 집도 진지 얼마 안 됐고 소새끼도 낳고 있으니 조심혀라고 해고 콧방귀도 안 뀐다. 내가 지한테 지금까지 뭐라고 했간디. 지금 할 일이 태산이다 태산."

"어머니! 어머니가 폭폭해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은 다 기계로 하잖아요. 어머니 때 농사짓는 거하고 다르잖아요. 어머니는 그냥 모른 척 놔두세요. 왜 그렇게 신경을 쓰세요."

"저렇게 할 일이 다 보이는데 어떠케 모른 척 하냐. 나같이 늙어서 일하는 사람은 이 동네 나밖에 없다 없어."

 

그렇게 어머니와 아내는 대화는 오토리버스처럼 반복되었다. 그러는 동안 동생은 계속 잠을 잤다. 난 그런 어머니의 한숨타령에 짜증 아닌 짜증이 밀려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런 내 표정을 읽은 아내가 어머니에게 한 마디 했다.

 

"어머니, 내일이 어버이날이어서 형님네랑 모두 모여서 밥 먹기로 했는데 어머니가 이러시면 어떡해요. 즐겁게 밥 먹고 그래야지요."

"누가 밥 먹는다고 그랬냐."

"에구 어머니도. 어머니가 이러시면 식구들 모두 마음이 안 편해요. 어머니가 좋아야 자식들도 마음이 좋지요."

 

그러더니 아내는 차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머니 이거 며느리들이 모두 모아서 어머니 쓰시라고 드리는 거예요. 그러니 마음 푸시고 이따 밥 맛나게 먹으러 가요. 네?"

 

그렇게 아내와 어머니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 동생은 일어나더니 고추를 심을 하우스로 갔다. 고추를 심기 전에 이랑에 비닐을 씌우기 위해서다. 어머니도 주섬주섬 일어나 따라나섰다.

 

"어머니 힘드시니 그냥 있으세요."

"그냥 있을 수 있까니. 감독이라도 해야지."

 

아내가 집에 있으라 하자 동생이 밉살맞게 툭 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머닌 지팡이를 집고 절뚝거리며 따라나섰다.

 

그렇게 동생 내외와 비닐을 씌우다 보니 오후 7시가 다 되어갔다. 어머니 표정을 보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밝아보였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아내는 "어머니, 막내아들 일하니까 좋아요?" 하자 '좋기 머가 좋아' 한다.

 

일을 마치고 온 식구들이 미리 예약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어머닌 내 옆에 앉았다. 낮보단 한결 나아 보였지만 옆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늘 이때쯤이면 어머닌 아버지 옆에 앉아 식사를 하러 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혼자였다. 예전 같으면 아버지에게 투정 섞인 불평을 하곤 했는데 이젠 그 상대가 없어 속앓이를 더 하는 것 같았다. 자식들은 늙은 어머니의 푸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평생 농사일에 잔뼈가 굵고 고생을 한 어머니의 푸념이란 고생 타령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머닌 틈날 때마다 예의 그 타령을 하곤 했다.

 

늙으면 다 그렇지만 노인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말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시절 좋은 타령을 하건, 신세타령을 하건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들딸이건 며느리건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말을 들어주길 바란다. 그런데 젊은 자식들은 그 타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들어주다가도 반복되는 이야기에 또 그 소리냐고 타박이나 하기 일쑤다. 아들만 넷인 우리 집의 경우엔 더 그랬다. 그래서인지 어머닌 딸 타령을 하곤 했다. 딸 없는 것을 아쉬워하곤 했다. 그런데 어쩌랴. 없는 딸 만들어 올 수도 없는데.

 

"엄마, 이제 속 끓이지 말고 제발 일 좀 놓아요. 일을 내려놓아야 서로 편해요. 이제 아버지도 안 계시잖아요."

"나도 그러고 싶은디 눈앞에 일들이 널려 있는 거 보고 어떡케 그러냐.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디."

"알아요. 근데 엄마가 놓아야 제수씨랑 성이도 편해요. 일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조금씩 하고 너무 애달아하지 말라는 거예요. 엄마, 무릎 아파서 잠도 못자잖아요. 쪼그려 앉아 일하니까 더 아픈 거잖아요."

"알었다. 알었으니 어여 가자."

 

그러나 알았다는 어머니의 말은 단 하루도 못 갔다. 다음 날(어버이날) 어머니는 고추를 심었고 감자밭에 가서 감자북을 했다. 어버이날이지만 한가롭게 쉬지도 못하고 어머닌 밭에 나가 일을 했다. 그런데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다리 안 아파요?"

"오늘은 괜찮다. 안 아파."

"참, 어젠 일 못해서 다릴 절룩거렸나 보네. 암튼 조금씩 해요. 무리하면 다음날 일어나지도 못하잖아."

"알았응게 걱정허지 말그라."

 

그러나 난 알고 있다. 어머닌 눈을 감을 때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리라는 것을. 아마 일어설 힘만 있어도 어머닌 마당의 잡초라도 뽑을 거라는 걸. 농사일에 힘든 아들 며느리 조금이라도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논밭으로 향한다는 것을. 어머닌 그게 자식들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데 말이다.


태그:#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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