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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마사 그레이엄 탄생 117주년을 기념하는 구글 로고
 5월 11일 마사 그레이엄 탄생 117주년을 기념하는 구글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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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구글 첫 화면에는 한 여성이 춤을 추며 구글 로고를 그리고 있다. 현대 무용의 역사, 혹은 현대 무용의 개척자라 불리는 마사 그레이엄(1984~1991)의 탄생 117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무용은 아름답고 우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 무용을 종합 예술로 끌어올린 그레이엄이 세상에 태어난지 어느덧 117년, 그리고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지났다.

죽을 때까지 무용을 놓지 않은 열정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 부근의 소도시에서 정신과 의사 아버지와 청교도 개척자 후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레이엄은 엄격한 가정교육과 신앙심을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4살 때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로 이사한 그레이엄은 로스 세인트 데니스의 공연을 보고 무용이 자신의 운명임을 깨달았다. 부친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남들보다 한참 늦은 17살에 무용을 시작했지만 그레이엄은 완벽주의와 지독한 연습으로 이를 극복했다.

1916년 데니숀 무용학교에 들어가 데니숀 무용단의 주연 무용수로 발탁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레이엄은 1926년 자신의 이름을 딴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을 창단했고 그해 뉴욕에서 첫 발표회를 가졌다.

고전 발레에 묶인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기존 무용에서 벗어나 '수축과 이완'으로 요약되는 격렬하고 날카로운 몸짓을 선보였고 미국 개척자들의 이야기, 고대 그리스 신화, 낯선 종교에 대한 두려움 등 모든 것들이 그레이엄 무용의 소재가 되었다.

이는 처음으로 발레의 토슈즈를 벗어버리고 맨발로 춤을 추며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맨발의 댄서' 이사도라 던컨과는 또 다른 파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엄격한 인종차별에 갇혀있던 당시 무용과 달리 동양인이나 흑인도 자신의 무용단에 입단시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70살이 넘어서도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평생 200편에 가까운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내면서 그레이엄이 20세기 현대 무용에 미친 영향은 미술계의 파블로 피카소에 비견되기도 한다.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
ⓒ 마사 그레이엄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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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무용수로서 은퇴가 다가오자 심각한 불안감을 느낀 그레이엄은 관절염을 비롯해 알코올 중독에까지 시달리며 한때 쇠락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또 다시 특유의 열정으로 일어나 안무를 짜고 무용단을 이끌었다.

75세가 되어서야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내 인생에 은퇴는 없다"며 자신의 무용단과 함께 순회공연을 다닌 그레이엄은 무용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해 많은 이들이 그를 떠나기도 했다.

머스 커닝햄, 폴 테일러, 튀라 타프 등 세계적 안무가들을 배출했고 제자들이 자신의 무용과 다른 길을 갈 때도 오히려 스스로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무용에 대한 개척 정신을 칭찬하는 관용을 보이기도 했다.

모든 파격적인 예술이 그렇듯 그레이엄 역시 처음에는 수많은 비난과 조롱에 시달렸지만 결국 현대 무용의 발전에 가장 큰 공헌자로 이름을 남겼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순회공연을 다녀오다가 97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레이엄이 남긴 주요 작품으로는 '어느 무용가의 세계(1957)', '애팔래치아의 봄(1944)'. '밤의 여로(1960)' 등이 있다.


태그:#마사 그레이엄, #현대 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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