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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히가와(旭川)의 전통미술공예촌은 일부러 찾아가기에는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사히가와에서 삿포로로 가는 국도 12호선이 아사히가와 외곽의 언덕길을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아사히가와 역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전통미술공예촌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가끔 오는 버스이니 전통미술공예촌을 보고 아사히가와 시내로 돌아오려면 버스 시간이 맞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일단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아사히가와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주택가의 언덕 길을 올라섰고 버스는 이내 우리를 전통미술공예촌의 직물공예관 앞에 내려줬다. 아사히가와 시내도 조용한 편이지만 전통미술공예촌도 조용하기만 했다. 평일 늦은 오후라 그런지 전통미술공예촌을 찾는 이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홋카이도의 다채로운 직물공예를 만날 수 있다.
▲ 유카라오리 공예관. 홋카이도의 다채로운 직물공예를 만날 수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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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너무 몰려 박물관 관람에 방해받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지만 찾는 이가 너무 없으니 내가 이곳을 여행일정에 넣은 것이 맞는 선택이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분명 아이템이 다양한 훌륭한 박물관이지만 교통도 불편하고 이곳을 한번 둘러본 아사히가와 시민들이 다시 찾기에는 박물관의 기획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미술공예촌의 유카라오리(ゆうからおり, 優佳良) 직물공예관(織物工藝館)은 유럽 중세의 성을 닮은 인상적인 외관 속에서도 홋카이도다운 매력과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유럽 성당의 종탑을 닮은 건물 중앙의 탑 아래에는 이곳이 직물을 전시하는 곳임일 말해 주듯 원색의 직물 문양이 그려져 있다. 공예관 건물이 전통의 건축물을 계승하면서도 묘한 현대적 세련됨을 주고 있었다. 우리는 쏟아지는 햇볕을 피해 조용하고 시원한 공예관 안으로 들어섰다.

공예관 입구에서부터 다채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직물들과 이를 이용한 작품들이 빼곡하다. 예상 외로 유카라오리 공예관은 홋카이도의 훌륭한 문화를 모두 담고 있는 훌륭한 박물관이었다. 직물을 통한 일본 전통공예의 진수가 이곳에 모여 한 눈에 볼 수 있으니 일본 전통공예에 빠진 사람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곳이 될 것이다. 공예관 건물도 홋카이도의 나무와 벽돌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공예관의 바닥재도 홋카이도에서 나오는 느릅나무와 졸참나무로 만들어졌다.

직물 위에 일본의 가장 투명한 호수가 표현되어 있다.
▲ 가을의 마슈코. 직물 위에 일본의 가장 투명한 호수가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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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인상적인 작품은 일본에서 가장 투명하다는 마슈코(摩周湖)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홋카이도에 자리한 칼데라 호수인 마슈코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세계에서 손 꼽히는 맑고 투명한 호수이자 안개의 호수로도 유명한 곳이다. 호수의 맑고 투명함과 안개가 직물 위에 재현된 것이다. 이 작품은 홋카이도의 가을과 겨울을 상징하고 있다.

어떤 작품은 푸른 직물 위에 온통 하얀 새들이 떼를 지어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다. 홋카이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백조를 상징화한 작품이다. 이 공예관은 광활한 홋카이도의 자연을 테마로 하여 다양한 모습을 직물 위에 형상화하고 있었다. 홋카이도 사람들이 자랑하는 옷감 위에 홋카이도 자연을 찬미하는 심미주의가 녹아 있었다.

홋카이도의 자연을 찬미하고 있다.
▲ 백조와 겨울의 마슈코. 홋카이도의 자연을 찬미하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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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물 속에는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자연이 한 폭의 그림처럼 녹아 있다. 홋카이도의 사계절은 직물을 통해 옷으로 표현되고 있다. 새하얀 북국의 눈이 겨울산맥을 따라 긴 세월 속에 이어지는가 싶더니 새하얀 눈이 덮인 겨울이 지나간다. 곧이어 꽃이 화사하게 피는 원색 색상의 봄이 나타난다. 웅장함 속에서 고요한 가을 호수는 산을 담고 있다. 산도 그렇고 호수도 고요할 뿐이다.

사계절은 바다를 통해서도 묘사된다. 이러한 직물의 사계절은 직물 설명문 아래에 자리한 실제 배경이 된 사진 설명으로 알 수 있다. 실제 사진을 보고 다시 직물의 사계절을 보니 미술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배가 되고 굳이 여행 가이드의 설명 없이 직물 작품이 한눈에 이해가 된다. 홋카이도의 자연은 사진이나 직물이나 그 색상이 다채롭다.

홋카이도의 직물을 짜는 직조기가 공예관 중앙에 전시 중이다.
▲ 홋카이도 직조기. 홋카이도의 직물을 짜는 직조기가 공예관 중앙에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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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카라오리 공예관을 나오다가 홋카이도의 직물을 짜는 전통적인 직조기를 발견했다. 그 직조기는 직접 직물을 짜는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직조기였다. 체험이 쉽도록 직조기에는 짜다만 직물이 남아 있었다. 신영이는 곧 아사히가와 시내로 돌아갈 일정은 상관하지 않고 직조기 위에 차분하게 앉아 직조기 양쪽 끝에서 한 줄씩 실을 꿰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신영이 엄마가 거들기 시작했다. 손재주가 둔감한 나는 모녀의 손동작을 놀람 속에 쳐다보기만 했다. 신영이가 좋아하는 체험학습을 하고 있으니 나는 신영이를 재촉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홋카이도에 쏟아지는 햇볕을 감상했다.

공예관 입구에서 직조기를 이용해 직물 짜기 체험을 할 수 있다.
▲ 직물 짜기. 공예관 입구에서 직조기를 이용해 직물 짜기 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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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후에는 방문객이 없고 거의 공예관 마감시간이 되어서인지 신영이는 체험 직조기를 독점했다. 신영이는 자신이 직접 털실로 짠 직물을 보며 흐뭇해했다. 파스텔 톤의 직물이 어린이의 색상마냥 발랄했다. 신영이는 직물 짜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 겨우 신영이를 설득해서 우리는 다음 길을 나섰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염직물을 가지런하게 전시 중이다.
▲ 국제염직미술관 세계 여러 나라의 염직물을 가지런하게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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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라오리 공예관 뒤편으로 보니 국제염직미술관이 있다. 이미 전통미술공예촌 통합 티켓을 사고 입장했으니 이 곳을 보지 않고 가면 손해였다. 우리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국제염직미술관은 일본에서 한곳 밖에 없는 염색과 직물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미술관이다. 미술관 외벽은 다름 아닌 홋카이도의 흙을 가열해서 만든 진하고 붉은 벽돌로 장식했고 미술관 앞에는 자작나무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이름답게 이 미술관은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천연염료로 염색해 만든 직물의 특징을 가지런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국제염직미술관에서 인도 염직물이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 인도의 염직물. 국제염직미술관에서 인도 염직물이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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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오랜 역사의 제품을 유난히 사랑하는 일본인들이 세계 각 지역의 역사적인 염색물과 직조 공예품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 일본인들 특유의 꼼꼼함으로 염직물들은 세밀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이곳에 서면 세계 염직물 각각의 특징을 마치 백과사전을 보듯이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전시된 인도, 중국, 유럽 각각의 염직물이 어떤 소재를 사용하고 어떤 기술로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떤 용도로 이용되었는지 그 특징이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세계 염직물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세계염직지도. 세계 염직물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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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전시실에는 염직물을 만든 기술 외에도 염직기술로 표현되어진 아름다움이 있었다. 동식물의 섬유로 실을 만들고 이 실을 천연염료로 염색한 후 손으로 직접 짜서 만들어진 직물들이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 미술관에는 외국에서 받아들인 앞선 기술을 숭상하고 자기 것으로 체득하며 최고 제품을 만들려는 일본의 장인정신이 곳곳에서 읽혀진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기술을 통해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경지로 오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7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홋카이도, #아사히가와, #전통미술공예촌, #직물공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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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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