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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인터넷 쇼핑은 어쩔 수 없는 '신의 섭리'인가? 하지만 말로만 듣던 '쇼핑 종결자'가 바로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아내의 정보통신 기술 앞에 경쟁력 잃은 남편들은 그저 한숨으로 소심하게 대처할 뿐이다.

어느 날 부터인가 갑자기 집에 있는 컴퓨터에 인터넷 즐겨찾기 항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젠 즐겨찾기에 등록해놓은 사이트가 너무 많아 어느새 검지에 스크롤의 압박감이 전해진다. 단 한 벌의 청바지를 사기 위해 즐겨찾기에 등록해둔 인터넷 쇼핑몰이 과연 몇 개란 말인가?

아내가 틈날 때마다 이곳저곳 인터넷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하더니, 마음에 드는 건 죄다 즐겨찾기에 올려 놓은 모양이다. 꼭, 누구 보라고 그랬는지 참으로 고의성(?)이 다분하게 느껴질 뿐이다.

살며시 아내 곁에 다가가도 아는 둥 모르는 둥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우스만 딸깍거린다. 포인터가 화면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각양각색의 상품들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원피스, 구두 등 의류에서부터 시작해 영양간식, 주방용품세트, 침구, 벽지까지…. 이런 추세라면 곧 이상형의 남성까지 즐겨찾기에 올려놓을 것만 같다.

쇼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바로  '눈물의 씨앗'

"어? 근데 그거 못 보던 옷인데…."

처음 보는 옷이라 궁금했던 나에게 아내가 "이게 언제 산 건데… 첨 보는 거다 싶으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 거야?", "아, 이거? 언니 거 빌려 입은 거야"라고 둘러댈 때 알아챘어야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때 우물쭈물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이미 그때부터 쇼핑이 시작된 것이었다. 아, 나훈아 형님이 1960년대에 부른 노래가 갑자기 생각나는 건 왜일까? '쇼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는 대답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날 출근 후 나에게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여보, 일하느라 힘들지!♥ 잠깐만 시간 내서 부탁해용~^^  XXXX.co.kr 아이디OOOO, 비번OOO, 장바구니 확인 후 구매버튼 클릭!♡♡♡"

혹시나 하고 문자에 찍힌 그 쇼핑몰에 들어가 장바구니를 보니,

'연예인 황OO 스타일 원피스, 금액 40,800원'

문자메시지로 알려준 장바구니에 담긴 구매목록
 문자메시지로 알려준 장바구니에 담긴 구매목록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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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이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아 그냥 클릭해서 구매버튼을 누르자니 버릇될 것 같고, 거부하자니 퇴근 후 후환이 두렵고…. 아, 이를 어쩐다! 하지만 아내가 작정하고 보낸 문자메시지 앞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고통스럽고 일그러질지라도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그 부름을 따라야 하는 이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혹시 이러다 즐겨찾기에 등록된 그 많은 상품들이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엄습한다. 아니나다를까 그 문자메시지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이후 아내에게 온 '문자메시지 세례'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며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요즘 쇼핑 너무 자주 하는 거 아냐?"... '불량남편' 자초하는 지름길

혹시라도 "요즘 너무 자주 사는 거 아냐?"라고 한다면, 아내가 식음을 전폐한 채 눈가엔 물기를 머금고 우울모드로 돌변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또 어김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누구네 남편은 알아서 척척 다 해준다는데… 계절 바뀔 때마다 마누라 옷 사 입으라고 몇 십만 원씩 척척 내놓는데, 기껏 몇 만 원한다고 그래? 자기는 대체 뭐야? 이렇게 사는 건 나밖에 없어" 라는 말로 달려드니 어찌 당할 수 있으랴?

옆집 남편부터 시작하여 세상의 모든 남편들을 다 들먹이며 심기를 건드리니 항변할 기회조차 잃고 만다. 나밖에 모르던 아내가 이제는 다른 집 남편을 로망으로 안고 살다니…. 왜 그런 남편들만 아내의 시야에 걸려 나를 '불량 남편'으로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말하는 그(?) 남편은 급조해낸 가공의 인물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부인에게 척척 갖다 바치는 그 인물, 이름이 뭔지 전화번호가 뭔지 좀 알았으면 좋겠다.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은 아내를 보며 "또 뭐 싸게 파는 것 있어?"라고 말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결코 '충동구매'가 아니라 '실속구매'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게다가 '무료반품'이라는 멋진 제도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또 그렇게 넘어간다. "내가 뭘 얼마나 샀다고…"라는 대답은 필수적인 덤이다.

지난 8년간 약 9000만 원어치 옷을 샀다는 일명 '무일푼녀'가 한 케이블TV 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신용카드를 잘랐다. 그녀의 눈물과 함께 쇼핑의 추억이 산산조각났다.
 지난 8년간 약 9000만 원어치 옷을 샀다는 일명 '무일푼녀'가 한 케이블TV 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신용카드를 잘랐다. 그녀의 눈물과 함께 쇼핑의 추억이 산산조각났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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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담아 놓고 망설이던 아내는 어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살까말까 한 달이나 망설이던 순진한 아내를 과연 누가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래, 언제부터인가 쇼핑몰의 '장바구니'가 아내의 공허함을 채워주게 된 이유야 없겠는가.

"당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가족건강을 위한 웰빙욕구, 다이어트 스트레스, 수면 부족, 육아 스트레스…. 내가 모르는 것 같지? 다 알아. 그토록 허전한 마음이 쇼핑을 통해 어느 정도 채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지혜로운 당신이라면 '장바구니 담기' 클릭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여보, 현명한 주부라면 대처하는 방법도 이성적이어야 한다네. 휘발유 값이 치솟고 등록금이며 학원비도 올랐어. 괜한 스트레스 때문에 지르는 것은 아닌지, 지금 굳이 필요치 않은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다음 달에 결혼식이 3건이나 있어…. "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정작 아내 앞에 서면 너무 무서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나만의 소심함인가?  '당신이 하는 일이면 뭐든 오케이야! 당신, 너무 잘했어' 라고 얘기해야만 아내를 존중해주는 출발점일까?

뭐, 스마트폰 전용 쇼핑몰도 있다고? 불현듯이 이달 중 30개월 약정으로 스마트폰을 구입한다는 아내의 말이 떠오른다. 이젠 한술 더 떠 QR코드로 구매한 '쇼핑 목록'을 한꺼번에 떠안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울 뿐이다. 나 지금 떨고 있나?

혹시라도 당신의 아이들이 소꿉장난에 택배 배달놀이를 활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린 아들이 빈 박스를 들고 수첩을 드밀며 "사인 좀 해 주시죠!" 라고 논다면, 나를 이해하고도 남으리라. 장바구니에 담아 두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던 그 아내가 그립다. 아 옛날이여!


태그:#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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