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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 이남식(1803-1878) I '한사농소(寒梭弄疎 식은 등걸이 성긴 꽃과 놀다)' 지본담채 27×22.5cm. 사대부를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그림
 남파 이남식(1803-1878) I '한사농소(寒梭弄疎 식은 등걸이 성긴 꽃과 놀다)' 지본담채 27×22.5cm. 사대부를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그림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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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성복동 간송미술관은 1년에 5월과 10월에 딱 두 번만 공개한다. 108점을 선 보이는 이번 전시회는 시대별 사군자를 총망라한 최대 규모다. 80년대는 아래 층만 전시했는데 요즘은 1-2층을 다 전시 공간으로 사용한다. 1971년 가을 첫 전시를 했으니까 올해가 80회 기념전이다.

우리나라는 목조건물에다 전란이 많고 잘 보전을 안 하는 습관으로 임란 이전 사군자는 기록에만 있고 실물은 없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것들도 당연히 임란 이후의 작품이다.

최 실장이 들려준 기개와 지조의 사군자론

사군자론을 이야기 하는 최완수 간송미술관 실장
 사군자론을 이야기 하는 최완수 간송미술관 실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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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는 흔히 당시 지식인의 최고덕목과 비교되어 매화는 인(仁), 국화는 의(義), 난초는 예(禮), 대나무는 지(智)를 상징한다고 풀이되기도 하지만 여기서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이 들려주는 사군자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문사(군자)란 누구인가. 인의예지효제충신(八德)을 지니고 학문을 가지고 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을 군자라고 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척박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을 군자라 할 수 있는데 우리가 그걸 식물에도 비유하면 그게 바로 사군자다."

"매화는 눈 속에서 꽃을 피워 맑은 기운을 세상에 퍼뜨리고 세상을 향기롭게 하고, 난은 바위틈이나 모래 같은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려 사지에도 푸르고 꽃대를 벗겨 올려가지고 온 향기로 꽃 피우고, 국화는 서리진 가을에 다른 꽃이 다 지고 잎 다 져도 꽃피워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대나무는 그야말로 속이 비고(虛心) 겉은 단단하고 겨울에 푸름을 잃지 않는 군자의 기상을 다 갖추고 있다."

사군자 중에도 으뜸인 <대나무>
 
탄은 이정(李霆 1554-1626) I '풍죽(바람에 날리는 대나무)' 견본수묵 71×127cm 조선회화에서 최고의 묵죽화
 탄은 이정(李霆 1554-1626) I '풍죽(바람에 날리는 대나무)' 견본수묵 71×127cm 조선회화에서 최고의 묵죽화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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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여기서 대나무그림을 잠시 감상하면서 살펴보자. 군자의 정조와 기개를 표상하는 데는 역시 대나무가 최고다. 그 위세가 그지없이 곧고 강인하게 보인다.

세종대왕의 4대손인 이정(1554-1626)의 대나무그림은 조선 오백년 통틀어 제일 잘 그렸다고 평가받는다. 대나무 그림이 물 찬 제비 같다. 이정은 임진왜란 때 왜장한테 칼을 맞아 오른쪽 팔을 크게 다쳤는데 그걸 계기로 그림을 더 잘 그리게 되었단다.

이 그림에 대해 간송미술관 백인산 연구위원은 "이정의 '풍죽'은 바람이나 그런 정경을 묘사하기보다는 이를 견뎌내는 대나무의 응축된 기세를 표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평했다. 탄은의 대나무그림에는 고죽(마른 대나무), 난죽(난과 대나무), 순죽(순 나오는 대나무), 우죽(비 맞은 대나무), 풍죽(바람 타는 대나무)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김조순이 말하는 대나무 미덕 5가지

유덕장(1675-1756) I '설죽(눈 덮힌 대나무)' 지본채색 92×139.7cm
 유덕장(1675-1756) I '설죽(눈 덮힌 대나무)' 지본채색 92×139.7cm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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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장(1675-1756)의 '설죽'은 팔순을 일 년 앞둔 노대가가 그린 기념비적 작품으로 그의 모든 역량이 집약됐다. 화폭의 깊이와 입체감이 느껴지고 추운 겨울 속에서도 따뜻한 생명력을 맛볼 수 있다. 신령한 분위기 속에 회화적 실험성도 강하다. 정말 완숙한 인격을 지닌 문사를 연상시킨다.

조선후기 정치가 김조순(1765-1832)은 '죽설(竹說)'에서 대나무의 5가지 덕을 언급했는데 "첫째는 속이 비어 있고 둘째는 강한 재목이고 셋째는 몸이 곧고 넷째는 마디가 없어지지 않고 다섯째는 색이 변하지 않는다"라고 적고 있다. 여기에 군자의 덕이 다 들어 있다.

문사의 '도덕적 이상'을 상징하는 꽃 <국화>
 
홍진구(1680대~) I'오상고절(서리를 이겨내는 외로운 절개)' 지본채색 32.6×37.6cm
 홍진구(1680대~) I'오상고절(서리를 이겨내는 외로운 절개)' 지본채색 32.6×37.6cm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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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에서 대나무가 제일 위라면 국화는 제일 아래다. 그럼에도 그 기개와 정신은 매화나 난에 못지 않다. '오상고절(서리를 이겨내는 외로운 절개)'의 미덕이 바로 국화의 상징이다. 갖은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의 본분을 지켜내는 군자의 도덕적 이상을 상징한다.

이정보(1693-1766)의 시조에서도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지내고 /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느냐 /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라고 국화의 미덕을 찬양하고 있다.

지사 이육사의 시 '광야'를 떠올리는 <매화>
 
단원 김홍도(1745-1806?) I 백매 지본담채 51.5×80.2cm 회화성이 높다
 단원 김홍도(1745-1806?) I 백매 지본담채 51.5×80.2cm 회화성이 높다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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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하면 역시 지사의 면모를 상징한다. 이육사 시 '광야'에 나오는 "매화 홀로 향기 아득하니…" 시 구절이 떠오른다. 5만원 지폐에는 어몽룡의 '묵매'도 볼 수 있다. 매화는 빙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추위를 이겨내는 내한성과 그 꿋꿋함과 그 맑음과 그윽한 향기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문사를 닮았다.

단원 김홍도도 매화를 그렸는데 사대부출신이 아니라 그림이 문사답지는 않다. 화원이라 역시 붓질이 다양하고 풍부한 회화미가 넘친다. 대각선 구도 또한 사생적이다. 김홍도는 정조의 측근에서 왕의 총애를 받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문사인 줄 착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이런 사군자를 그린 것이다.

북학파이자 국제주의자인 추사의 <난초>

추사 김정희(1786-1856) I '산상난화(산에 핀 난초)' 지본수묵 27×22.8cm 난초 그윽하고 청순한 한떨기 꽃이라는 시구절이 나온다
 추사 김정희(1786-1856) I '산상난화(산에 핀 난초)' 지본수묵 27×22.8cm 난초 그윽하고 청순한 한떨기 꽃이라는 시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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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군자의 표징인 난초를 보자. 원래 난은 '석란' 즉 돌 속에서 자라기에 건강하기보다는 파리하고 수척해 보이는 것이 제 격이란다. 같이 추사의 '난'도 감상해보자.

추사는 서체를 회화보다 더 높은 단계로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그래서 글씨의 회화미와 그림의 서예미를 강조한다. 이런 정신은 중국의 문인화의 시조 왕유(699-761)가 말한 "시 속에 그림이, 그림 속에 시가 있다"나 중국 원대문인 오태소가 말한 "매화를 그리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은 그 취상이 같다"와도 통한다.

추사는 율곡의 조선성리학을 바탕으로 북학(청조고증학)을 받아들인 당대의 최고 지식인이었다. 또한 최고의 금석(金石)학자로 중국통이었다. 요즘 말로 코즈모폴리턴이다. 그는 진경산수가 촌스럽다 할 정도로 사고가 열렸고 앞섰다. 중국 것을 받아들이되 그걸 한 단계 상승시키고 과감하게 우리 걸로 소화했다.

추사의 많은 제자들 조희룡, 이하응, 민영익 등등
 
조희룡(1789-1866) I '묵매' 지본수묵 27.4×22.7cm. 추사를 추종하여 추사체를 방불케 구사했으며 사군자에 모두 뛰어났다
 조희룡(1789-1866) I '묵매' 지본수묵 27.4×22.7cm. 추사를 추종하여 추사체를 방불케 구사했으며 사군자에 모두 뛰어났다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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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제자로 삼아 그의 제자는 많다. 위 묵매는 추사의 제자인 조희룡의 그림으로 추사의 것과 거의 흡사해 보인다. 그러나 역시 창조자만이 기록된다. 다만 그 외양만 따르다간 잘못하면 라일락(?)이 될 수도 있다. 추사는 "외형만 따라하지 말고 본질을 추구하고 난을 치되 서화 같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조희룡뿐만 아니라 정치적 야망으로 불탔던 이하응(흥선 대원군)도 추사의 제자로 그의 묵란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추사의 칭찬도 들었다. 또한 갑신정변 이후 상해로 망명한 민영익(1860-1911)도 당대 문인화의 대가로 그의 제자다.

올곧은 '강경명정(剛硬明正)'이 우리의 미감

일주 김진우(1883-1950) I '묵죽' 지본수묵 50.5×137.3cm 김진우가 1933년 가을에 친 묵죽화(일부)[왼쪽]. 조옥봉(옥봉스님 1913-2010 김진우 제자) I 묵죽 지본수목 71.7×140.5cm 1991[오른쪽]
 일주 김진우(1883-1950) I '묵죽' 지본수묵 50.5×137.3cm 김진우가 1933년 가을에 친 묵죽화(일부)[왼쪽]. 조옥봉(옥봉스님 1913-2010 김진우 제자) I 묵죽 지본수목 71.7×140.5cm 1991[오른쪽]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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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쪽 같은 선비작가로 돌아가 위 작품(왼쪽)을 보자. 3년간 옥고도 치른 항일운동가 김진우(1883-1950)의 묵죽 연작이다. 이에 대해 백인산 연구위원은 "죽간은 창처럼 곧고 댓잎은 칼처럼 삼엄하여 식물이 아니라 마치 금속 같아서 병장기 창고 같은 그런 모습이다. 이는 일제를 향한 저항의식의 강력한 표출이다"라고 예리하게 평했다.

정말 선비의 기개가 하늘로 치솟고 항일로 충천된 문사의 의분에 우리의 심경도 흔들린다. 그의 제자 조옥봉(1913-2010)의 묵죽도 같은 풍이나 여성이기에 그 기백이 섬세하다.

끝으로 최완수 실장은 우리나라의 미감을 올곧은 '강경명정(剛硬明正)'이라고 요약한다. 이는 사계절이 분명하고 바위에 붙어 사는 민족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우리 것은 일본처럼 감각적이지 않고 중국처럼 기름지지 않고 깐깐하고 올곧은 것이 그 특징이 된다.

덧붙이는 글 | 전시기간:5.15-5.29 장소:간송미술관(성북초등학교 정문 옆) 무료 02-762-0442
교통안내: 시내버스 85번 성북초등학교앞 하차.
지하철 4호선 한성대 입구역 하차 5번출구로 나가다 10분 도보. 마을버스 있음



태그:#사군자, #추사 김정희, #탄은 이정, #강경명정(剛硬明正, #최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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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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