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0월 3일,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됐던 독일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됐다. 독일 통일을 흡수통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서독의 주도 아래 동독이 흡수․합병되었다고 보는 까닭이다. 물론 그 흐름이 역사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동서독의 운명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이른바 생계를 위한 동독 주민들의 이탈 대열이 그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사실 독일 통일의 관점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서독의 주도적 합병이든지, 동독 주민들의 자연적인 요청이든지 그건 문제될 게 없다. 중요한 것은 1990년에 형성된 통일합의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가이다. 다시 말해 동서독의 생활수준을 비롯한 임금과 연금 소득에 격차가 없느냐는 것이다.
황규성의 <통일 독일의 사회정책과 복지국가>는 동서독의 사회 경제적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복지정책은 물론 노동정책에 관해서도 밀도 있는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특별히 노동시장 정책과 연금 정책은 연방의회에 제출된 법률안과 의사 회의록을 중심으로, 단체협약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단체의 성명서와 입장 발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독일통일은 노동, 복지, 보건의료, 주택, 환경, 범죄, 교육, 문화, 가치관 등 거의 모든 사회문제에 걸쳐 숙제를 던졌다. 이 숙제를 푸는 것이 바로 사회정책이다. 노동정책, 복지정책, 보건의료 정책, 주택정책, 환경정책, 교육정책, 문화정책이 모두 사회정책에 속한다. 이 책에서는 독일 통일의 사회적 차원에 주목하면서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을 초점으로 통일이 복지국가 독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자 했다."(서론)사실 통일 이전의 서독의 고용 형태는 완전고용과 전일제 노동이 중심이었다. 표준고용 관계가 일반적인 흐름이었던 셈이다. 산별노조의 단체교섭과 기업수준의 사업장 평의회의 공동 결정체도 조화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이원적 노사관계가 원활히 작동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복지국가의 위기는 어느 정도 겪고 있었지만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으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동독은 어떠했을까? '먹고 살기 힘든 평등'을 제공했던 동독은 1989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가 민중이다'는 구호 아래 '서독 마르크가 공급되지 않으면 동독을 벗어나겠다'는 시민들의 외침에 거셌다. 그러한 사회적 시장경제의 흐름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경제 통합의 통독을 이끌게 된 요인이다.
하지만 통일 초기부터 동·서독 경제력의 격차는 컸다. 동독 지역의 총생산은 서독 지역의 10퍼센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1인당 총생산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통일로 말미암아 발생한 특수마저 서독 지역이 누리게 되었다. 그로 인해 지역 간의 경제력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예컨대 동독 주민의 대량 실업으로 인해 단체협약 체제가 침식되었고, 노동조건이나 생활조건의 동질성마저도 훼손되었다. 동독 향수병은 그때부터 도졌던 것이다.
그때부터 쏟아 붓게 된 사회적 간접비용은 어디에 투입되었을까? 서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던 동독주민의 사회보장과 소득보장, 그리고 열악한 보건의료 부문에 장기간 집중적으로 소요됐다. 그만큼 동서독 주민들 간에 삶의 질과 불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만큼 통독정부는 동독 주민에 대한 생계를 최대한 보장하고자 했다.
"복지국가 독일의 서쪽 지역에서는 '먹고 살만한 불평등' 현상이, 동독 지역에서는 '멀고 살기 힘든 평등'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통일 이전에 양독 사회구조의 특징인 서독의 '안정적 불평등'과 동독의 '하양 평준화'가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384쪽)이것이 지난 20여 년에 걸친 동서독의 소득수준을 평가한 사항이다.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소득 수준은 서독에 근접해 가고 있지만, 그 격차는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특별히 서독 지역보다 동독 지역의 근로 빈곤의 빈도는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현실감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균등생활 수준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볼 때, 2008년 10월 7일, 독일 연방 정부는 <최저노동조건법>과 <강행노동조건법> 등 최저임금에 관한 두 가지 법률의 개정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최저노동조건법>은 1952년에 제정된 이래 처음으로 개정안을 낸 것이다. 그만큼 독일도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하는 분야가 급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독일의 사회정책이 취약해졌다는 것 외에, 미약하나마 사회성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통독 이후 독일의 전통적 복지국가는 축소된 셈이다. 아울러 사회성도 그만큼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의 계층 간 격차는 더 커졌고, 동서독의 지역·사회적 분단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통일독일이 맞이한 실업문제의 해법에서도 실업 부조는 단축되었고, 지급액도 감축되었다. 그만큼 사회적인 연대성이 얇아진 대신 자기 책임성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러한 때에 독일 국민들은 뭐라 말할까?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그것은 2009년 9월의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위해 필요한 것을 묻는 설문에 독일 국민의 61퍼센트는 '사회보장 강화'를 첫째 목록으로 꼽았다. 그만큼 현재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보장하는 균형 잡힌 정책을 추진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는 더욱더 절실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