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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로 걸어서 들어가는데 대구(!)사람들이 붙인 현수막이 보였다.
▲ 대구사람들이 붙인 현수막 봉하마을로 걸어서 들어가는데 대구(!)사람들이 붙인 현수막이 보였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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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빚은 설사 그 빚이 아내가 따로 진 빚이라 해도 남편이 자신의 재산을 몽땅 팔아서라도 갚아 주는 것이 진정한 남자의 부부 義(의)다. 빚졌으면 봉하 저택이라도 팔면 될 것이지 되레 돈 준 사람이 딴말 한다고 시비나 걸고 외간 남자에게 빚 얻게 둔 뒤 '아내가 돈 받았으니 난 모른다'고 말하는 남자는 '참 매력 없는 남편'이다.

2009년 4월 13일자 (대구)매일신문에 실린 글의 일부이다. 그 신문의 '명예주필'이 썼다. 그런데!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신문사의 명예주필 자리에 위세당당하게 앉아 있는 곳이 대구인데, 같은 대구에 사는 시민들이 봉하마을 가는 길에 현수막을 붙였다. 대구사람들이! 놀랍다.  '그립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꿈꾸던 세상...', '역사는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을 그리고 우리를...'. 다음카페 노사모 대구경북 노랑개비가 붙인 것이다.

사람들이 걸어서 봉하마을로 가고 있다.
▲ 봉하마을로 가는 길 사람들이 걸어서 봉하마을로 가고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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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봉하마을로 걸어가고 있다. 팽팽 돌아가는 길을 따라 사람들은 줄을 지어 행진하고 있다. 가로수 한 그루 없는 땡볕인데도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저 멀리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가라는 경찰의 지시에도 불만을 터뜨리는 법 없이 모두들 말없이 걸어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는 오른쪽으로, '봉화산'은 왼쪽으로, 그리고 그 두 길은 '不二門'이라는 돌 비석이 보인다. 봉화산 정토원까지 가는 거리는 2km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2주년을 추모하는 현수막들도 길을 따라가며 걸려 있다. 노란 바람개비들 또한 바람에 날려 팽팽 돌아가고 있다.  


노란 바람개비 너머로 문득, 노무현 대통령이 손녀를 뒤에 태운 채 자전거로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광경이 떠오른다. 개구리 우는 소리가 무논에 가득하다. 오리농법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품을 필요가 없다. (재)아름다운봉화가 펴내어 봉화마을 방문객들에게 나눠주는 안내책자에는 이렇게 써있다.

'2008년 고향으로 돌아온 대통령은 14명의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친환경쌀 작목반을 구성, 봉하들판 약 79만㎡(약 2만4천평)에 무농약 오리농법을 시작했다. 현재는 봉하마을을 포함한 약 165만㎡(약 50만평)의 논에서 오리농법, 우렁이농법을 이용한 친환경생태농업으로 우리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잠깐 서서 땡볕에 시달린 땀을 훔치는데, 부엉이바위부터 눈에 먼저 들어온다. 하지만 축지법을 쓸 리도 없으니, 사람의 발길이 부엉이바위부터 답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다행이다. 막상 부엉이바위에 올라 (대통령 본인이 마지막으로 그렇게 했듯이) 아득한 심정으로  마을을 내려다 본다면, 혹은 바위 아래 참담한 땅에 닿아 그 현장을 눈앞에서 본다면, 과연 내 마음은 어떨 것인가.

봉하마을에 들어서면 이런저런 간이 음식 노점들이 즐비하다. '봉하막걸리'부터 한 잔 마신 뒤 사방을 둘러보니, 길 안쪽으로는 '봉하빵' 전문 매장도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관련 기념품들을 판매하는 '노란가게'도 있다. 사족을 덧붙인다면, '노란가게'의 공식 명칭은 기념품가게 '사람사는 세상'이다. 그래도 필자는 '노란 가게'로 부르고 싶다. 운영 수익금으로 묘역과 생가 관리, 기념사업을 하는 가게이니 그 뜻만 기린다면 '사람사는 세상'이 옳겠지만, 어디 사람이 명분만으로 사는가. 정서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길 오른쪽에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이 문을 열기 이전까지 거의 기념관 역할을 했던 1층 건물이 '쉼터'라는 명패를 달고 서 있다. 왼쪽에는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1946년 9월 1일 노무현 아기가 태어났던 이 생가는, 대통령이 퇴임 당시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된 채 모습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대통령의 고등학교 동창이 매입하여 김해시에 기부를 하였고, 그 이후 생각 복원이 시작되었다. 2009년 2월 착공, 대통령 서거 후인 2009년 9월 완공. 집 들머리 안내판에는 노 대통령이 친필로 쓴 생가 복원에 대한 의견이 새겨져 있다.  

내부 풍경 일부
▲ 노무현대통령 추모의집 내부 풍경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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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을 지나면 곧 묘역이 나온다. 그 바로 왼쪽 옆이 부엉이바위로 올라가는 등산로다. 그러므로 추모의 집부터 방문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1층 건물 안에 들어가니, 임옥상 화백이 제작한 '대지의 아들, 노무현' 상이 입장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정면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생전에 손녀를 태우고 들판을 배회하는 데 쓰였던 자전거도 잘 보관되어 있고, 갖가지 유품들도 가지런히 놓여 있다. 둘러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자못 숙연하다.

묘역 참배를 한 뒤 곧장 봉화산을 오른다. 안내판은 묘역에서 출발하여 2시간 30분 동안  마애불(0.36km), 사자바위(0.68km), 정토원(0.15km), 호미든관음상(0.22km), 편백나무숲(1.49km), 장방리갈대집(0.40km), 본산배수장과 북제방길(0.94km), 약수암과 생태연못(0.50km)을 거쳐 대통령 추모의 집까지 걷는 길 5.3km를 '대통령의 길'이라 부른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오늘 이 길을 다 걷기에는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니 마애불, 사자바위, 정토원이라도 한번 걸어볼 생각이다. 추모 행사 시작 시각이 7시인데 얼마 남지 않았다.

부엉이바위
 부엉이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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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바위 위로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전경 두 명이 정복 차림으로 보초를 서고 있다. 당연한 조치다. 근무 중인 두 전경은 사뭇 긴장한 표정이고, 자세 또한 반듯하다. 게다가 인물도 훤출하다.

만약 전경들이 지키고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부엉이바위 위로 올라가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 올라간들 어쩔 것인가. '사람 사는 세상'에 아무 것도 보탤 게 없는 주제에 공연한 몸놀림을 해서는 안 된다. 그저 마음만 쓰라릴 것이다. 대통령이 거기 서서 봉하마을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엄연히 알면서, 이도 저도 아닌 내가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그 자리에 올라선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전경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봉하마을을 바라보며) 보초를 서고 있다. 위험한 곳이다.
▲ 부엉이바위 정상에는 전경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봉하마을을 바라보며) 보초를 서고 있다. 위험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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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가 있었던 산이라고 해서 이 산을 봉화산이라 부른다. 또, 봉화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봉하마을이라 부른다. 당연히, 더 위로 올라가면 봉수대에 닿는다. 현장에는 '봉화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으니 '봉수대'와 '봉화대'는 같은 말인 듯하다.

그런데 거기까기 가기 이전에 두 가지를 본다. 하나는 이미 대통령 덕분에 엄청난 지명도를 얻은 정토원이다. 대통령 서거 후 49재를 지냈던 정토원 경내로 들어가 보면 '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모 법회'가 열렸다는 현수막이 검은 빛을 한 채 아직도 걸려 있다. 그리고 연등도 철거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사찰 뜰내를 화사하게 꾸며주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정토원에서 봉화대로 가는 중간에 사명대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봉하마을에서 받은 이런저런 안내 책자 중 그 어느 것에도 이 곳에 사명대사의 동상이 있다는 명문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명대사의 동상은 분명히 이곳에 '있다!'

너무나 초라해서 철거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은 동상이다. 사명대사의 동상이라는 표식도 전혀 없다. 누군가가 그것이 안타까웠는지 못 같이 날카로운 것으로 흉상 아래 콘크리트 받침에 '사명대사' 네 글자를 써 두었다. 사명대사라면 대구 동화사에 승병본부까지 설치하고 임란에 참전한 분이니, 아마 이곳에도 그와 같은 행적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곳의 승려와 신도들이 그 분을 기려 동상을 세웠을 수도 있다. 그나저나 지금의 동상이 너무나 황망하여 혹여 대사가 이 물건을 보게 될까 두려울 따름이다.

사자바위 위에 올라서 바라본 풍경이다.
▲ 봉하마을 전경 사자바위 위에 올라서 바라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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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바위에서 바라보는 봉화마을 전경은 참으로 대단하다. 대통령이 오리농법을 실사구시한 봉화 들녘이 두루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건너 편의 뱀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뱀산 중턱에는 대통령이 손수 지어 거기서 고시 공부를 했다는 마옥당(魔玉堂)도 있다는데, 오늘은 실행할 수 없지만 다음 방문 땐 꼭 거기도 가보리라.

뱀산 아래를 흐르는 물줄기가 보인다. 화포천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하천형 자연습지를 거느린 화포천은,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100대 하천'에도 선정된 바 있다. 지금 화포천에는 창포, 선버들 같은 습지식물들이 신나게 살고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물고기들까지 천혜의 집으로 여기고 활기차게 헤엄치고 있다. 한참 동안 쓰레기와 폐수로 황폐하게 버려졌던 황포천이 되살아난 것은, 대통령이 귀향 이후 바지를 걷고 물안으로 들어가 직접 오물을 치우면서 '화포천 살리기 운동'을 펼친 덕분이다. 어떻게 해야 '死대강'이 아닌, 진정한 '4대강 살리기'를 할 수 있는지 잘 증언해주는 듯하다.     

봉하마을에서 돌아온 것이 어젯밤, 5월 21일 자정이다. 그러나 글을 쓰지는 못했다. 부엉이바위까지 갔다온 마음에 어찌 한가하게 글이 쓰여질 것인가. 차에 싣고 온 '100% 봉하쌀 생막걸리'를 일행들과 함께 나눠마시다가 대취를 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본 것을 글로 적고 사진으로 되살려낸다. 이러고도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손톱만큼의 도움이나마 될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믿으면서, 졸렬한 글 한 편을 어수선하게 써 본다.  

봉하마을과 봉화산 일대 약도
 봉하마을과 봉화산 일대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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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의 작은 볼거리들

묘역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토굴이 나온다.
▲ 토굴 묘역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토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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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굴을 지나면 금방 마애불이 나타난다. 본디 서 있던 것이 지각 변동에 따라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 마애석불 토굴을 지나면 금방 마애불이 나타난다. 본디 서 있던 것이 지각 변동에 따라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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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49재를 지낸 곳이다.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 중간에 있다.
▲ 정토원 노무현 대통령의 49재를 지낸 곳이다.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 중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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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바위 바로 뒤에 있다.
▲ 봉수대가 있던 자리 사자바위 바로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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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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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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