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다시는 오르지 않으리 "설악산 공룡능선"한 달 전 쯤이다. 지난 2월 1일부터 5월15일까지 104일 동안 산불 방지 예방차원에서 입산 통제하였던 설악산 산문이 열린다고 "청파 형님 오랜만에 무박 산행으로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 한 번 하면 어떨까요?"하고 연산동 아우가 제안했다. 나야 쌍수 들어 손뼉을 치면서도 내 나이 어언 '6학년8반'이니 그 힘들고 어려운 코스 산행을 다시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갈망하는 산악회 회원들 바람이 워낙 컸기에 힘은 들어도 '한 번 해 보지 뭐' 하고 OK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인터넷 카페에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 공지글이 올랐고 이를 본 회원들이 구미가 댕기는지 30여 명 넘는 인원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중에는 나의 친동생, 매제, 외사촌 여동생, 40년 지기 전우와 친구처럼 형제처럼 지내는 후배 2명과 오랜 지기들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산행을 2,3일 앞두고 지인 중에 꽁무니 빼며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생겼다. 나는 동생들을 감언이설로 유혹해 결국 공룡능선 동반 산행을 이끌어 냈다. 내가 이렇게 일행들을 설득하고 챙긴 것은 나 개인적인 목적이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더러는 소심한 생각과 판단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을 쉽게 포기하곤 한다. 만약 이번 공룡능선 산행이 성공한다면 동생들과 일행들 일생일대에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평소 나는 늘 "친구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요 나의 기쁨이 친구의 기쁨"이란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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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공룡능선 설악산에서 험하기로 소문난 공룡능선 산행을 하며 본 기암절경과 아름다운 장관의 운해 풍경을 동영상에 담아 소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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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도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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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기상청 예보가 우리들이 공룡능선 산행을 하는 날(5.21) 비가 내릴것이라는 예보가 전해졌다. 한때는 기상청 예보가 너무 안 맞아 "구라청"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너무 정확하게 잘 맞혀 어느 땐 얄미울 때가 있다. 이번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 사람이 빠지고 26명의 회원이 마치 중대한 임무를 띠고 출장하는 군인들처럼 20일 밤 11시 사당역 10번 출구에서 만나 빗길을 달려 설악산 신흥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21일 새벽 2시다. 이때부터 우중 산행을 대비하여 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했다. 기막히게도 시간에 매표소에선 문화재관람료 명목으로 1인당 2500원을 받으며 매표를 하고 있다. 야간이라 문화재는 개방도 안했는데 말이다.
거기다 비까지 질퍽 거리니 대원들의 분위기는 다소 다운된 가운데 단 2-3미터 앞 사람도 구별이 쉽지 않을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회원들의 이마에는 마치 탄광 근로자들이 이마에 라이트 켜고 갱도에서 일하시는 모습처럼 모두 머리에 라이트를 켜고 긴장된 표정으로 비선데 지나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꺾어 곧추세운 금강굴 ~ 마등령 구간 마의 산행이 시작됐다.
그간 오랜 산행 경험에 의하면 장거리 산행의 성공 여부는 맨 처음 산행 시작할 때 일행들의 스피트 여부가 그날의 산행 성공 여부를 판가름 한다. 그러다 보니 산행 경험을 두루 거친 대장들이 선두, 중간, 후미에서 무전기로 무리한 속도 산행을 철저하게 통제하며 오르는데도 금강굴을 지나자 외사촌 누이동생이 뒤처지기 시작하는데 불안하기 짝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후배들에게 배낭을 넘기고 여동생과 함께 마등령 능선 정상에 오른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이때 시간이 아침 6시 50분이다. 그런데 배꼽시계가 자꾸만 알람을 울려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마등령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곁들여 해장술을 한 잔 걸치니 한결 몸이 풀리는 것 같고 기분이 상쾌하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창창하게 이어지는 고난도 오르내림 코스 공룡능선 산행길은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혹시 일행들에게 자칫 화가 되지 않을까 긴장의 연속 산행이 이어진 진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험준한 공룡능선 코스에 들어서고 부턴 비도 그치고 간간히 능선에 올라서면 그야말로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아름다운 설악산 운해가 장관을 이뤄 지친 일행들을 환호하게 한다.
그러다가도 또다시 가파르게 이어지는 곧추세운 암릉 구간을 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란 고운봉 선생의 <선창> 노래를 뜬금없이 흥얼거리며 올라도 공룡은 호락호락 속살을 드러내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힘도 빠지고 너무 지쳐 이러다가 내가 혹시 미리 천국의 계단을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혼란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일행들과 가던 길을 멈추고 둘러 모여앉아 간식으로 챙겨온 과일과 양갱이류 과자들을 나누어 먹으며 하나 된 마음으로 이날 공룡능선 산행을 성공으로 이끌려는 대원들의 의지가 충만함을 엿 보며 갑자기 울컥 목이 멘다. 그러면서 신앙도 없는 사람이 '하느님 우리 일행들의 무사안전 공룡능선 완주 산행을 굽어 살피소서' 하고 주문을 한다.
오죽했으면 어떤 이는 중도에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산행인데 왜 어렵지 않다며 날 데리고 왔느냐는 푸념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이젠 죽으나 사나 최종 유종의 미(완주)를 이루는 순간까지 다 함께 서로 돕고 의지하며 약진 앞으로 약진 앞으로 나가는 길 밖에는 뾰족한 묘수가 없다. 그러는 사이 공룡능선도 신선봉을 지나며 일행들에게 "해냈다"라는 희망과 용기를 준다.
소공원 비선데, 금강굴, 금강문, 마등령, 오세암 갈림길, 나한봉(1,276m) 그리고 공룡능선 지나 신선봉(1,218m) 능선에 서서 용아 장성, 그리고 설악산 울산바위 저항력 방면과 화채 능선 방향에 걸쳐 길게 늘여진 변화무쌍한 운해의 운무 춤을 보며 산행길 내내 긴장했던 고통, 두려움들을 훌훌 털어 신선봉 능선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이어진 천당폭, 양폭, 오린폭, 귀면암, 이화담, 문수담, 비선데, 와선대, 군량장, 신흥사 일주문, 소공원까지의 하산길에 들어서니 공룡능선 통과 시간 동안 용케 참았던 비가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그러다 보니 얇은 옷을 입은 나는 다소 추위를 느껴 자칫 저체온증이라도 걸리게 되면 일행들에게 누를 끼칠 것이 염려되어 서둘러 선두로 신흥사 일주문 지나 소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녹다운 일보 직전이다.
그리고 뒤를 이어 동생들과 일행들이 속속 도착한다. 칠흑 같은 새벽 2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산행을 모두 끝내니 오후 4시다. 그러니까 장장 14시간에 걸쳐 산행을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행들 너도 나도 힘은 들었어도 보람이 있다며 그 기쁨이 얼마나 컸으면 외사촌 누이동생은 일행들에게 피로회복제를 돌리며 여러분 덕택에 공룡능선 완주 산행을 할 수 있었다며 연거푸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여동생 모습을 보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쁘던지 어깨가 으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