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40분. 제주도 성산포 종달리항을 출항한 은갈치2호에서 물닻(꾼들이 '풍'이라고 부르는 낙하산 모양의 닻. 물 속에서 낙하산 처럼 퍼져 배를 안정적으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이 내려졌다. 바람이 꽤 세다. 너울이 일어 채비를 서두르는 꾼들의 손을 더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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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놈으로 한 쿨러 채워 가면 아내에게 사랑 받겠지요.” 천안에서 온 서운환씨는 족히 손가락 7개(7지) 씨알의 대형갈치를 낚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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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오시지……. 이런 걸로 한 쿨러씩 잡아갔는데……."

은갈치2호 강인준 선장이 쫙 편 손바닥을 내 얼굴 앞으로 쑥 내민다. '5지'짜리란 얘기다. 갈치 씨알은 보통 손가락 굵기로 표현한다. 3지면 검지 중지 약지를 붙인 정도 굵기의 씨알을 말하고 4지면 손가락 네 개, 5지면 다섯 손가락을 다 합친 씨알이란 뜻이다. 3지 이하 씨알은 '풀치'라고 해서 어린 갈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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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인트에 도착하면 선장의 안내에 따라 포인트 수심에 맞춰 채비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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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과 '꽝'을 가르는 수온 15.6도

제주도 먼 바다 배낚시에 낚이는 건 '풀치'가 없다. 15도 이상 수온이 오르면 여기서 낚이는 갈치는 무조건 4지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

지난 5월 3일 성산포 동남쪽 40마일(약 64km) 해상의 오후 7시 수온은 14.5도. 아직은 정상 수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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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았다~! 이거 5지는 되겠죠?” 경기도 시흥에서 온 윤종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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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는 수온이 높긴 한데, 아직은 낮아."

키를 잡고 있는 강인준 선장이 걱정이 나지막하다.

"몇 도 정도 돼야 좋은가요?"
"15.6도 이상은 돼야 마릿수 입질을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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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여 올라온 갈치의 입에서 바늘을 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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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도나 16도가 아닌 정확히 15.6도라고 말하는 근거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금은 수온이 1도 정도 낮다는 말이다. 바다 수온 1도 차이는 실제로 조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심지어 0.1~0.2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수온만으로도 속칭 '꽝'과 '대박'이 갈린다. 수온변화에 민감한 갈치가 대상어라면 강 선장이 말하는 '15.6도'는 마릿수 조과를 보장하는 수온의 마지노선 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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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싯대 끝이 아래로 쑥 들어가면 갈치가 문 겁니다.” 한 낚시꾼이 입질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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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조비 4곱 이상 남는 장사, 갈치낚시

오후 8시가 넘어가자 포인트 수온이 15.4도까지 올랐다. 이쯤 되면 마릿수 호황을 기대할만 한데, 예상했던 것보다 바람이 너무 거세고 너울이 심하다. 물닻을 달고 있는 은갈치2호가 조류 방향으로 돌아서질 못하고 바람에 계속 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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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갈치2호 선주인 박범수씨도 뱃머리에서 5지짜리 갈치를 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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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따~! 고놈 싱싱하네.” 서울 양재동에서 온 이형남씨는 1년에 대여섯 번은 갈치낚싯배를 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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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40분 드디어 마수걸이 입질이 왔다. 선미에 앉은 경기도 시흥꾼 윤종섭씨가 은빛 칼춤을 추는 5지짜리 한 마리를 걸어 올린다.

"요즘 갈치 비싸잖아요. 이런 놈은 대형 마트에서 7~8만 원에 팔리지요."

제주도까지 왕복 비행기 삯이 포함된 출조비 30만 원이 아깝지 않다는 게 윤종섭씨의 갈치낚시 예찬론이다. 조황이 좋을 때는 4지 이상 6지짜리로 70마리 이상도 가능하니, 출조비 4배 이상 남는 장사가 바로 제주도 갈치 배낚시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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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치낚시 조과의 관건은 입질층을 찾는 것. 갈치 떼가 몰려있는 수심층에 전동릴로 채비를 고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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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릿수가 떨어지는 날도 열댓 마리는 보장 되는 곳이 제주도 거든요. 그 정도면 충분히 본전 뽑는 거지요."

선실 옆에서 막 5지짜리 한 마리를 올려 낸 유춘근(서울 방학동)씨도 이런 '제주 갈치 배낚시의 경제론'에 동의한다. 갈치 배낚시는 이런 이유로 대표적인 '생활낚시'다. 낚시라면 치를 떨며 말리는 아내들도 갈치낚시만은 등을 떠밀어 보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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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 씨알은 쑥스러운데…….” 서울 방학동에서 온 유춘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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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낚시는 연안에서도 되지만 여름~초가을로 그 시즌이 짧고, 포인트도 목포 등 서남해 안 일부에만 한정돼 있다. 게다가 연안에서 낚이는 갈치는 좀처럼 '풀치' 씨알을 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갈치낚시=배낚시'가 정석이고, 그 중에서도 제주도에서 출항하는 먼 바다 갈치낚시는 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아이템이다. 전남의 완도나 여수에서 나가는 갈치 배도 있지만 제주 배만큼 멀리 나가지 않기 때문에 낚이는 씨알이나 마릿수에서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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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갈치낚시는 2월 한달을 제외하고는 사철이 시즌이다. 5월 중순부터 5지 이상 굵은 씨알이 마릿수로 낚이기 시작해서 가을까지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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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 이후 조황 상승곡선

이날은 그러나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황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은갈치2호 선주인 박밤수씨가 자정쯤 6지급 대형갈치를 낚아낼 때만 해도 선상에는 한껏 기대감이 부풀었다. 그러나 새벽 1시를 넘어서면서 입질이 뚝 끊기고 꾼들의 손놀림도 느려졌다. 새벽 1시 반경 서울 양재동에서 온 이형남씨와 천안꾼 서운환씨가 5지 갈치로 낱마리 손맛을 보긴 했으나 이때까지 배에 오른 꾼들의 절반은 아직 자신들의 아이스박스를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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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갈치2호에 오른 꾼들이 갈치어신을 기다리고 있다. 5월 중순 이후면 밤바다도 차지 않아 갈치낚시를 즐기기에는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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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가 맞다면 오늘 바람이 이렇게까지 세지 않아야 하는데……. 너울이 이 정도로 높을 거라면 사실 출항도 어렵죠."

강 선장의 말대로 파도의 높이가 1~1.5m일 거라는 일기예보는 빗나갔다. 시간이 갈수록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너울은 더 크게 배를 덮친다. 물닻을 내려두고 있어 배는 안전하지만 더 이상 낚시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새벽 2시. 아쉽지만 철수를 해야만 했다. 물닻을 끌어올리고 서둘러 성산포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꾼들은 모두 선실 안으로 들어갔고, 노련한 강인준 선장이 잡은 키는 칠흑 같은 어둠 속 집체만한 파도를 맞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제주 갈치낚시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바다 상황만 괜찮으면 매일 출항하니까 조만간 다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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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쁘다 바빠.” 동시에 두 마리의 갈치를 걸어낸 서울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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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선장은 아이스박스를 가득 채우는 마릿수 조황을 보여주지 못한 걸 퍽 아쉬워한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먼바다 제주갈치낚시는 이제 막 시즌을 열었다. 정상적으로 수온이 오르지 않았던 지난 4월 20일부터 마릿수 입질이 시작되었으니 앞으로 3~4달은 조황이 상승곡선을 그릴 것이다. 그때는 나도 아이스박스 하나 들고 다시 은갈치2호에 오를 생각이다.

제주도 갈치낚시 시즌과 채비

6월부터 5지 이상 마릿수 쏟아진다 제주도 갈치낚싯배는 거의 연중무휴다. 보통 3월 말부터 시즌이 시작되고 5~9월까지 조황 정점을 찍은 후 이듬해 2월까지 이어진다. 초반에 낚이는 갈치는 마릿수가 떨어지는 대신 씨알이 굵다. 3월부터 5월초까지는 5지급이 간간이 얼굴을 비치고, 초여름부터 가을시즌까지는 마릿수와 씨알이 모두 호황을 보인다. 그러다가 수온이 내려가는 늦가을부터 겨울에는 마릿수 입질이 없는 대신 어른 손바닥 보다 더 넙적한 갈치가 뱃전에 뒹군다. 갈치낚시 채비는 의외로 단순하다. 개인이 챙겨갈 거라고는 선상 갈치 전용 낚싯대와 전동릴, 합사 원줄, 그리고 원줄 끝에 달아주는 소형 집어등이 전부다. 미끼(꽁치)와 가짓줄 채비는 배에 준비돼 있다. 가짓줄은 보통 5개에서 많게는 10개까지 원줄에 달아준다. 가짓줄을 너무 많이 달면 채비가 엉키기 쉽다. 모든 배낚시가 그렇듯 갈치낚시 역시 선장이 조과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다. 경험 많고 노련한 선장은 자신만 알고 있는 알짜 포인트가 많다. 포인트에 도착하면 선장은 어탐기를 확인하고 꾼들에게 채비수심을 가르쳐 준다. 큰사진보기 ▲  갈치 배낚시는 꽁치 살을 미끼로 쓴다. 배에는 미끼로 쓸 냉동꽁치가 항상 준비돼 있다. ⓒ 김동욱 관련사진보기 큰사진보기 ▲  제주 갈치 배낚시 채비 ⓒ 김동욱 관련사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