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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9일 4대강 조사단이 방문한 낙동강 지류 감천의 모습. 강 바닥이 침식돼 물이 폭포수 처럼 흐르고 있다.
 지난 19일 4대강 조사단이 방문한 낙동강 지류 감천의 모습. 강 바닥이 침식돼 물이 폭포수 처럼 흐르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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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들이 펼쳐졌다. 강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강기슭은 그동안 감춰왔던 지층을 드러냈다. 부서지고 깨진 바위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한국에 그랜드 캐니언이 생겼다"라는 말도 들려왔다. 4대강 사업 공사가 막바지에 들어선 낙동강의 모습이다.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낙동강 홍수 피해조사를 다녀왔다. 김정욱 서울대 명예교수와 박창근 관동대 교수 등이 이끄는 '4대강 사업 대응 하천환경 공동조사단'(이하 조사단)과 동행한 이번 조사에서 본 낙동강의 모습은 실로 충격이었다.

낙동강은 지난 9일에서 11일 사이에 내린 봄 비로 곳곳이 망가졌다. 경북 안동 등 낙동강 상류 지역에 110mm 가량, 대구 아래 하류 지역에 40mm 가량의 비가 내렸다. 봄비 치고는 꽤 많은 양이었지만,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장마철을 떠올린다면 불안감이 커진다.

다리 붕괴시킨 '역행침식', 낙동강 곳곳에서 발생

붕괴된 병성천의 제방 모습. (5월 19일 촬영)
 붕괴된 병성천의 제방 모습. (5월 19일 촬영)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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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이 2박 3일 동안 찾은 50여 개의 낙동강 지천 중에선 그 모습이 온전한 곳이 거의 없었다. 특히 지천의 하류, 즉 낙동강 본류와 지천이 만나는 지점(합수부)에는 제방이 무너지고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한 하상유지공이 부서지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작년보다 더 진행된 낙동강 본류 준설"이라는 게 박창근 교수의 설명이다. 그 전에는 자연스럽게 본류로 흘러들어가던 지천수가 대규모 준설로 인해 본류 강바닥이 낮아지면서 큰 낙차로 떨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유속이 빨라졌고, 그 힘이 지천 하류 주변의 파괴현상을 일으켰다. 이런 침식작용이 지천 하류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 상류로 번져 가는 현상을 '역행침식'이라고 하는데, 박 교수는 "작은 지천(지방하천)은 2~3 킬로미터 가량, 큰 지류(국가하천)은 10킬로미터 이상 상류 쪽으로 역행침식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역행침식이 지천에서 활발하게 일어날 경우 인근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침식 작용은 주로 강바닥이나 강의 측면에서 일어나는데, 이는 지천에 설치된 교량과 제방이 파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에 무너진 경기도 여주 신진교도 역행침식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번 조사에서도 장천(경북 상주시)에 설치된 장천교의 교각 하부가 심하게 파여 있는 모습이 관찰됐다.

제방 붕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조사를 실시한 거의 모든 지천 하류에서 제방 붕괴가 목격됐다. 특히 병성천(경북 상주), 감천(경북 구미), 용호천(대구) 등, 공사 구간이 밀접된 낙동강 상류 지역에서 그 현상이 가장 두드러졌다. 제방이 무너져 곳곳이 협곡처럼 변했고 많은 양의 모래가 쓸려 나가 낙동강 본류에는 다시 모래톱이 생겼다(관련기사: 비 올까 '덜덜덜', 4대강 '너 떨고 있니?').

낙동강 하류 지역도 마찬가지다. 경남 합천의 회천, 덕곡천, 황강은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하천바닥이 침식되어 있었다. 덕곡천과 회천은 제방도 유실됐고, 덕곡천은 심지어 기존에 설치된 콘크리트 보가 무너지는 일도 발생했다.

"6월 말에 무조건 공사 끝낸다"

19일 영풍교 일대 끊어진 하상유지공. 위쪽 잔해와 아래쪽 잔해가 본래 연결돼 있던 것으로 보인다.
 19일 영풍교 일대 끊어진 하상유지공. 위쪽 잔해와 아래쪽 잔해가 본래 연결돼 있던 것으로 보인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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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현재 가장 염려되는 것은 이러한 피해상황에도 공사 진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국토해양부 '4대강 사업 추진본부'에 따르면 4대강 사업의 공정률은 69.8%로 핵심 사업인 보 건설은 93%, 준설은 90%가 진행됐다.

보 건설과 준설이 끝나면 4대강 사업은 고수부지나 자전거 도로 등 편의 여가 시설 공사만 남게 된다. 추진본부의 계획대로 사실상 6월 말이면 공사가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만난 현장 관계자들도 대부분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지천과 만나는 지점에 제방이 무너지고, 쓸려 내려온 모래가 이미 준설을 실시한 지점에 다시 쌓여 모래톱을 만들었지만 "공사는 6월 말에 무조건 끝낸다"는 것이다.

공사현장에는 그런 조급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강물이 빠르게 흘러 위험해 보였지만 굴착기는 강 한복판에 들어가 모래바닥을 퍼올렸다. 낙동강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또 탁수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설치하게 돼 있는 '오탁방지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경북의 한 지천을 조사하던 도중 만난 현장 관계자에게 이 문제를 물었다. 그는 "현재 물살이 세서 오탁방지막을 설치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럼 물살이 약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오탁방지막을 설치한 후 공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6월 말까지 마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물살이 세서 위험한데 저 굴착기는 강 한복판에서 작업을 해도 되냐?"고 또 되물었다. 그는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낙동강 본류에 놓인 영풍교(경북 예천) 주변 현장에서 만난 현장 관계자는 더욱 황당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풍교 주변은 강변에 하상유지공이 파괴되는 피해가 발생했던 곳이다.

관계자는 "6월 말까지 복구가 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복구를 했는데 비가 다시 오면 또 무너지는 거 아닌가"라고 묻자 "비가 와서 공사 못한다고 생각하면 4대강 사업은 할 수가 없다, 비가 오면 공사를 중단하겠지만 비가 올 거라고 겁먹을 게 아니라 공사를 빨리 마치면 된다"고 말했다.

낙동강 전역에서 영풍교 주변처럼 제방이 무너지고, 하상유지공이 유실되고, 강바닥이 침식되고, 다시 모래가 쌓인 곳이 발견됐다. 이를 모두 복구하고 다시 준설하는 데 '한 달이면 된다는 말'을 과연 쉽게 믿을 수 있을까? 이미 준설한 곳에 또 다시 모래가 쌓이고 있는데, 완공되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곧 홍수기(6월 20일~9월 20일)를 앞둔 만큼 언제 또 큰 비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 '6월 말 준공'이라는 맹목적인 목표로 달려가는 이 사업을 보며 불안하기 짝이 없다.

엄청난 속도전 필요... 노동자 사망 더 이상 없기를

낙동강에서 작업 중인 굴착기. 강 한복판에서 작업을 해 흙탕물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주변에는 흙탕물을 막아주는 오탁방지막 등이 전혀 설치돼 있지 않다(19일 촬영).
 낙동강에서 작업 중인 굴착기. 강 한복판에서 작업을 해 흙탕물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주변에는 흙탕물을 막아주는 오탁방지막 등이 전혀 설치돼 있지 않다(19일 촬영).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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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명필 4대강 추진본부장은 23일 오전 국토해양부에서 열린 기자 브리핑에서 "이번 비로 인한 피해가 전체 공사 기간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다"며 "지류에서 일어난 침식은 충분히 고려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심 본부장은 이어 "정부와 전문가가 합동으로 81명의 조사단을 꾸려 피해가 예상되는 여러 현장을 점검할 계획"이라면서도 "보와 준설은 6월 말에 끝난다"고 못 박았다. 더 큰 홍수 피해를 우려하는 각계의 지적을 일축하면서 변함없는 공사 진행을 천명한 것이다. 결국 엄청난 속도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순간, 강 한복판에 나가 준설작업을 펼치고 있을 굴착기 기사가 떠오른다. 쉴 틈 없이 모래를 퍼날라야 하는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노동자를 비롯해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해야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각난다.

4대강 사업 낙동강 구간에서는 지난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1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강물에 휩쓸려 익사한 굴착기 기사 3명이고 덤프트럭 운전자 2명을 포함해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태그:#4대강, #4대강 사업, #낙동강, #남한강,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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