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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네 잔치 때마다 귀한 대접받으며 쿵쿵 울렸을 돌절구, 아낙네의 손길에 닳을 대로 닳아진 멧돌, 이름도 생소한 똥장군, 쇳대라 불리던 오래된 자물쇠와 열쇠, 아이들 손때 묻은 교과서와 구슬 등의 장난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삐삐' 등등... 역사박물관이 따로 없다.

 

무등산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이서면에 위치한 설봉농원이 그 곳이다. 설봉농원은 설봉 이동근 선생이 30여 년에 걸쳐 모아놓은 온갖 민속품과 석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곳이다. 그리 크지 않는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얼마 만큼이 있는지는 이동근 선생도 모른다.

 

공직생활을 하다가 퇴임한 이동근 선생이 민속품 수집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78년 무렵이다. 1960년대 서울에서 근무했던 이동근 선생에게 고향은 늘 그리움이었다. 광주와 서울을 잇는 호남고속도로가 1970년에 개통됐으니 쉽게 오갈 수도 없는 곳이 고향이었다.

 

그리고 1975년부터 곡성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고향 가까이에 있을 수 있게 됐지만 그리움이었던 고향은 서서히 그 정취를 잃어가고 있었다. 1970년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과 산업화 때문이었다.

 

초가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돌담이 시멘트담으로 바뀌고 전기가 들어오면서 호롱이며 인두 등 살림살이들이 전등이며 다리미 등으로 바뀌고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동근 선생의 민속품수집이 시작됐다.

 

지금이야 민속품이니 골동품이니 하고 불리지만 그 당시에는 낡은 살림살이들에 불과했었다. 도곡 죽청리가 고향이지만 무등산이 좋아 무등산이 바라다 보이는 이서면에 터를 잡고 수집한 민속품들을 모아뒀다. 그리고 그곳을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

 

무등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돌과 나무와 민속품이 어우러진 작은 공원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기에 사찰 등에서 버려지는 석등과 불상 등의 석물도 모았다. 5m길이에 무게만도 4t에 달하는 청옥으로 만든 대형 악어 조각품과 거대한 용, 말, 오리, 전설의 해태, 칼을 든 장군, 인자한 웃음의 불상 등 그의 농원에는 온갖 돌 조각품이 다 모여 있다.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농장 곳곳에 나무를 심고 나무가 자라는 모양에 따라 주변과 어우러지게 이런 저런 형태도 만들었다. 허물어지고 버려지는 돌담의 돌들을 모아 곳곳에 크고 작은 돌탑도 쌓았다.

 

돌탑을 쌓을 돌을 모으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시골마을이며 산과 들, 냇가 등을 누비다가 간첩으로 오해를 받아 경찰서에 간 일도 있다고. 

 

농원 입구에서부터 쌓아올려진 돌탑들은 크고 작은 태풍에도 끄덕없이 농원을 지킨다. 봄이면 만개한 철쭉으로 상춘객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화순 만연산에서 이서면으로 이르는 철쭉길에 수백여기의 돌탑을 쌓은 이도 이동근 선생이다.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지금은 대부분이 사라지고 없지만...

 

그동안 입소문을 듣고 설봉농원을 다녀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지역의 인사들은 물론 장병완 국회의원이며 강운태 광주시장,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장관 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인사들이 설봉농원을 다녀갔다. 무등산 산행에 나섰던 등산객들도 심심찮게 찾아온다.

 

영국의 여행가 데이비드 힙스도 그 중 한사람이다. 특히 "설봉농원에서 한국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며 감탄하던 힙스의 모습은 이동근 선생이 30여 년간 설봉농원을 가꿔 온 보람과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줬다. 힙스를 통해 무등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돌과 나무와 민속품이 어우러진 공원을 만들고 싶다던 꿈이 이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농원에 없어 일부러 농원을 찾았다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이들도 상당하다. 민속품이며 석물들을 모으는 그를 위해 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민속품을 내주거나 버려지는 민속품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에게 가져다 주며 그의 꿈에 관심을 가져주는 지인들은 그에게 늘 고마움이다.

 

설봉농원은 지금 지역의 명소로서의 이름을 굳건히 하기 위해 민속박물관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화순군의 이서면농촌개발사업에 그의 농원을 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한 사업이 포함된 것이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설봉농원은 3천여평의 넓은 부지에 민속품 전시실과 차 한잔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쉼터, 돌탑과 석물, 나무가 어우러진 박물관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를 위해 이동근 선생은 오늘도 나무를 다듬고 돌탑을 쌓고 민속품을 모으면서 농원을 가꾸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무등산, #민속박물관, #이서면, #설봉농원, #이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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