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추상과 네온아트'로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프랑수아 모렐레(François Morellet 1926~)-노련한 선(Senile Lines)' 전이 6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에는 1960년대부터 근작까지 총 30여 점을 선보인다.
지금 유럽에서는 1926년 프랑스 숄레(Cholet)에서 태어난 이 원로작가를 재조명하는 열풍이 뜨겁다. 지금 현재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그의 회고전 '재설치'(Réinstallation)가 7월 4일까지 열리는데 이번 갤러리현대 서울전은 파리 퐁피두전이 축약된 전시라 할 수 있다.
20세기 현대미술의 산 증인
이 작가가 중시하는 것은 우연성, 관객참여, 유희정신, 기하학 추상미술, 네온아트로 표현하는 위트와 유머감각 등이다. 위 제목에서 보듯 0도와 90도처럼 서로 기울기가 다른 선이 만나면서 일으키는 선의 긴장감은 경쾌하고 흥미롭다.
모렐레는 "나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단순한 기하학 형태에 마음이 끌린다"라는 했는데, 이는 그가 개념미술, 추상미술, 미니멀리즘 등 현대미술의 주요사조를 기초로 하면서도 거기에 옵아트, 네온 아트, 대지미술, 설치미술과도 긴밀하게 엮여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모렐레는 회화와 조각을 독학했다. 그리고 1961년엔는 키네틱(움직이는)아트와 비주얼아트를 연구하는 그룹인 그라브(GRAV, Groupe de Recherche d'Art Visuel)를 창설하기도 한다. 이번이 그의 455번째 개인전인데 그만큼 그는 현대미술의 산 증인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20세기 미술사의 흐름이 두루 혼재돼 있다.
기존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움 구가
그는 독학자답게 기존의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미술의 경계를 넘어 자유로운 선을 통해 조형세계를 구축한다. 여러 장르를 경험하면서 그 복잡한 조류를 융합시켜 더 이상 단순화 할 수 없는 데까지 압축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그래서 기하추상을 택한다.
그는 실험정신이 치열한 만큼 사용해온 매체는 다채롭다. 2차원 평면에서는 연필, 드로잉 펜, 붓, 접착테이프, 격자무늬담장, 작은 가지, 네온불빛 등을 3차원 공간에서는 막대, 파이프, 전기선, 나무, 금속광선, 큰 가지, 나무줄기 등을 쓴다.
네온아트로 관객을 그의 작품에 끌어들여 웃긴다
그는 여러 방안에 도전한다. 모렐레에게 특히 선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1951년부터 선의 '병렬과 중첩', '간섭과 분절' 등을 실험한다. 그러다가 12년이 지난 1963년에 우연히 발견한 게 바로 네온아트다. 그는 여기에 올인한다. "네온은 항상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게 딱딱하고 차가운 재료임에도 내 작품에 시간과 리듬을 준다"라고 말했다.
'몸짓 3번'을 보고 있으면 네온이 댄서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서커스에서 곡예사가 아찔한 묘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직선의 네온불빛과 곡선의 가는 케이블 선은 흑백의 대조를 이루며 자칫 딱딱해 지기 쉬운 공간에서 리듬과 흘러넘치는 멋을 낸다.
추상이 어렵다는 관객의 고정관념을 깨고 그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막대스위치를 작동시킴에 따라 관객이 지나가면 네온에 불이 들어와 관객에게 말을 거는 효과를 낸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전시에서 관객의 참여(participation du spectateur)를 중시한다.
그는 미술관을 '소풍장소'로 비유한다
작가는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미술애호가는 작가가 뭐라 하든 개의치 않고 때로 해설자의 설명과 모순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라고 언급했는데 참으로 의외다. 게다가 "미술 감상은 축제를 만드는 것이며 미술관은 스스로 가져온 음식을 먹는 소풍장소다"라는 정의도 신선하다. 그는 이렇게 미술의 범위와 감상방식 그리고 장소개념 등이 독특하다.
위 작품은 마치 물레방아가 돌아가거나 서울랜드 등의 놀이기구가 뱅뱅 돌아가는 것 같다. 그는 조용하고 엄숙한 미술관을 작품명대로 '난장(débandade)'으로 바꾼다. 추상이라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전시장에 들어갔는데 그런 편견이 싹 가신다.
유쾌한 감각과 결합된 우연성의 추상
그의 기하추상의 특징의 하나는 '우연성'이다. 논리적으로 보이는 작품의 선은 사실 무작위에 의거한 것이다. 혼란스러움과 질서가 공존하고 우발성과 의도성의 결합되어 있다. 조형적으로 빈틈도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 우연성의 산물이다.
그의 추상은 엄격한 규칙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 유쾌한 감각과 결합된 추상이다. 그는 무거운 추상미술을 공중에 매달아 놓고 관객을 가볍게 웃기는 것 같다. 그의 미술을 연극에 비유한다면 비극보다는 희극에 가깝다.
그의 선은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갈지 예측불가다. '경련(spasme)'을 일으킬 것 같은 그의 기하추상은 그래서 다소 혼란스러워 '다다(Dada)추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복잡하게 얽힌 혼란 속에서도 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낸다.
루브르박물관에서 영구설치작품으로 의뢰받다
이 작가는 그 전성기를 맞아도 여전히 미술계의 이단아의 길을 걷었다고 미술평론가 김승덕은 말한다. 그가 젊은 시절 같이 길을 걸었던 스위스의 구성주의에서 떨어져 나온 이유다. 그런 자신만의 신념이 있었기에 독창적인 네온아트를 낳을 수 있었다. 결국 작년엔 루브르박물관으로부터 영구히 설치할 작품을 의뢰받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나이 들수록 더욱 빛난다. 그가 가진 최고의 미덕을 역시 유머정신일 것이다. 그는 나이와 시대를 초월해 회화의 본질, 작품과 관객의 관계, 새로운 매체의 실현가능성 등을 끊임없이 물으며 현대미술에 새로운 파동과 자극을 준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현대(서울 종로구 사간동 80번지 전화 2287-3500) 입장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