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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골! 개골! 개골!"

모내기철이다. 논에 물을 가두고 난 뒤부터 밤에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다. 수컷 녀석들이 예쁘고 건강한 짝을 찾기 위해 자기 존재를 알리는 듯 아등바등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개구리들의 악다구니는 어떻게 보면 농염한 사랑의 노래일 듯싶다.

해질녘 시작한 합창은 꼭두새벽까지 이어진다. 한 녀석이 목청을 높이면 무논의 온 개구리들은 따라 부른다. 어느새 거대한 합창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딱 소리를 멈추기도 하는데, 녀석들도 쉬는 시간이 있는 모양이다. 울다가 쉬다가 개구리 합창은 한밤 내내 계속되는 것이다.

날이 밝아 밭에 나왔다. 개구리 소리가 잠잠하다. 밤새 울다 이젠 지치기라도 한 것인가? 하늘이 무척 맑다. 어느새 푸르러진 신록이 싱그럽다. 산을 바라보며 긴 호흡을 해본다. 어디서 들리는지 뻐꾸기가 청아한 목소릴 뽐낸다. 뻐꾸기소리는 올 들어 처음 들어본다. 작년 이맘때 들었던 새소리를 해가 바뀌어 다시 듣는다는 게 참 신비스럽다.

오늘은 고라니 녀석 다녀가지 않았나? 밭을 한 바퀴 둘러본다. 이랑에 비닐 피복한 자리를 보니 녀석들이 놀다간 흔적이 보인다. 이리저리 휘젓고 비닐 구멍을 숭숭 뚫어 놨다. 새로 옮겨 심은 고춧대에 입맛을 다시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올해 우리 밭에 자라고 있는 고추. 새뿌리를 내려 잘 자라고 있다.
 올해 우리 밭에 자라고 있는 고추. 새뿌리를 내려 잘 자라고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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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밭에도 봄을 맞아 많은 작물이 심어졌다. 빼곡히 심어진 밭을 둘러보며 작물의 건강상태를 확인해본다. 이른 아침에는 작물들이 이슬을 머금어 싱싱하다. 똑 바로 고개를 쳐들고 자라는 모양새를 보면 대견스러움에 기쁨이 있다. 농사짓는 사람만이 느끼는 하루의 시작이다.

작년에 실패한 고추농사를 또!

며칠 전, 우리는 고추를 심었다. 고추 심는 날 아침, 아내는 이러저러한 말을 쏟아냈다.

"난 사무실에 나가야 하는데, 미안해서 어쩌죠. 오늘 이웃 어르신들께서 도와준다면서요. 고맙기도 해라. 새참이랑 막걸리는 준비해둘게요. 점심 든든하게 대접해드리세요. 그나저나 올핸 고추를 조금만 심으면 안 돼요? 작년 고추농사 생각하면 너무 속상했는데! 올핸 작년의 반의 반만 심읍시다. 그 정도면 우리 먹을 고춧가루로 충분하고, 가꾸는 데 힘도 덜 들고!"

함께 할 일거리를 놔두고 내빼듯 사무실에 나가는 게 미안해서일까? 작년 고추농사 망친 것이 안타까워 양을 줄이자는 것일까? 아내는 이날따라 말이 많았다.

작년에도 우리는 고추농사를 지었다. 장사할 것도 아니면서 800주 남짓 가꿨다. 해마다 그만큼은 심는 셈이다.

작년 우리 고추밭. 장마가 끝난 뒤 망가지기 시작하였다.
 작년 우리 고추밭. 장마가 끝난 뒤 망가지기 시작하였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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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느 해와 달리 고추밭이 순식간에 망가졌다. 장마가 끝난 뒤, 건강하게 잘 자라던 고추가 붉어지기 시작할 즈음 역병이 들었다. 까닭 없이 고춧대가 시들시들 말라죽었다. 수도 없이 고추는 달렸는데, 고춧대가 죽어나다니! 한번 병든 고추는 아무리 손을 써도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수확량도 떨어지고 상품의 질도 엉망이 되었다. 그간 들인 공이 얼마인데 어떻게 이렇게 망가질 수가 있을까?

사실 고추 재배는 손이 많이 간다. 고추는 밭이랑에 비닐 피복을 하여 심는다. 비닐을 씌워 재배하면 잡초발생도 억제하고, 수분증발을 막아 가뭄도 덜 타게 된다. 또, 지온을 높여 고추가 잘 자라게 된다.

옮겨 심은 고추모가 어느 정도 자라면 곁순을 질러준다. 그리고선 말짱을 박아 자라는 것을 봐가며 고춧대를 네댓 차례 붙잡아준다. 그래야 비바람에 고춧대가 쓰러지지 않는다. 밭고랑에 자란 풀을 잡는 것도 큰일이다. 제초제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서너 차례 이랑을 일궈줘야 풀과의 싸움에서 이긴다.

고추에는 진딧물도 끼고, 여타 해충들도 많이 달려든다. 거기다 탄저병이라는 무서운 병이 들기도 한다. 적기에 소독하여 예방하지 않으면 상품가치를 떨어뜨린다. 작년 우리처럼 역병이 돌기도 하는데, 다된 밥에 코 빠뜨린 격이 되어 농사는 한순간에 망치게 된다.

고추농사는 수확하는 일도 쉽지 않다. 한여름에 첫물을 따기 시작하면 한 열흘 간격으로 대여섯 번에 나눠 딴다. 따고 난 물고추를 말리는 일도 만만찮다. 태양초를 만들려면 하늘이 도와줘야 한다. 건조장에 넣어 말리는 것도 깨끗이 씻어 말려야 위생적이다.

그래도 올해 또 도전해본다

우리 고추농사는 아마추어일뿐이다. 가꾸는 기쁨과 친지나 이웃들과 나누는 재미로 농사를 짓는다. 아무리 아마추어 농사라도 저절로 크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은 없다. 정성을 기울여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는 게 즐거움이다. 그런데 애쓴 보람도 없이 농사를 그르칠 땐 김이 빠진다.

아내는 작년 역병에 영금 본 게 생각 나 올핸 한사코 풋고추나 따먹을 요량으로 심자고 한다. 200여 주만 가꾸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도 나는 고추모를 600여 주 사왔다. 실패를 거울삼아 잘해볼 연구를 해야지, 뒤로 물러서면 되냐고 아내 입을 막았다.

고추 심던 날, 고추 심을 자리에 구멍을 뚫고 있는데 이웃집 어르신 두 분이 오셨다. 고마운 이웃들이다. 옆집 아저씨와 새집 할아버지는 일에 쫒기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다. 올해도 밭이랑 비닐 씌울 때나 감자 심을 때도 당신들 일처럼 도와주셨다.

이웃집 어르신들과 함께 시작한 고추농사. 두 분은 우리가 밭 가꾸기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다.
 이웃집 어르신들과 함께 시작한 고추농사. 두 분은 우리가 밭 가꾸기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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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손에는 호미와 모종삽이 들려 있었다.

"올핸 실패하면 안 되지! 정성들여 가꾸면 하늘도 도와준다잖아. 잘 심어보자구."
"금년은 미리 소독을 잘해야 해! 예방이 제일이잖아. 힘들여 가꿔 순식간에 무너지면 보기도 딱하다고!"

두 분께서도 작년 우리 고추밭에 병이 든 것을 보고 속상해하셨다. 오며 가며 자라는 것을 보고, 가끔 일손을 거들어줘 함께한 농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옆집 아저씨는 뚫어놓은 구멍에 물을 넣었다. 나는 뒤따라 고춧모를 심고, 할아버지는 심은 자리에 흙을 채워 넣었다. 분업적으로 일을 하니 한결 수월하였다.

한참을 심다 새집 할아버지께서 허리를 펴고 말씀하셨다.

"아무튼 올핸 첨부터 정성을 쏟으니 잘될 거야!"

실패는 성공의 거울이라 했던가? 올해는 밑거름부터 든든히 했다. 잘 썩은 두엄을 발효시킨 유기질 비료를 많이 뿌렸다. 고추는 이어짓기를 하면 병해가 많다 하여 작년 참외와 땅콩 심은 자리로 옮겼다. 고춧모도 믿을 수 있는 농장에 직접 찾아가 구해왔다.

허리가 뻐근하고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다리가 아파왔다. 해가 중천까지 떠오를 즈음 일이 끝났다. 일이 손에 익숙한 어르신들은 민첩하게 일을 마무리했다.

모를 옮겨 심은 지 2주 남짓 지나 제법 자랐다.
 모를 옮겨 심은 지 2주 남짓 지나 제법 자랐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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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르신들! 우리 막걸리 한 잔씩 먹읍시다. 우리 집사람이 새참을 준비한걸요."

일하고 먹는 막걸리 새참은 꿀맛이었다. 힘든 만큼 보람도 느껴졌다.

기다리는 수밖에

며칠이 지난 뒤, 처음 시들시들 몸살을 앓던 고춧모가 이젠 땅맛도 보고, 새 뿌리를 내린 것 같다. 곁가지도 쳤다.

작물은 자라면서 열두 번도 더 변한다고 한다. 가뭄 때는 시들고, 비바람에 부러지고 쓰러지고. 또 병해충에 순식간에 망가진다. 요즘은 고라니와 같은 동물들이 훼방을 놓기도 한다. 작물은 그러다가도 스스로의 힘으로 복원도 한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을 김매기를 해주면 말끔한 밭이 되기도 한다.

올 우리 고추농사는 어찌 될까? 오늘 아침처럼 싱싱한 모습으로 자라 튼실한 열매를 안겨줄 수 있을까?

그저 정성을 다해 보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 농사는 하늘과 함께 짓는다고 하지 않는가!


태그:#고추, #고추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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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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