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800조 돌파?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회사의 가계대출과 신용카드의 외상 구매를 합친 가계 신용 잔액이 2011년 1/4분기 801조 3952억원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통계는 2010년 4/4분기 795조 3759억에 비해 6조 193억원이 늘어난 것이며 2010년 총가구수로 나누면 가구당 빚이 4600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서민들의 입장에서 빚 없는 사람들이 부자라는 말은 더 이상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이와 같은 높은 가계 대출과 신용카드 과다 사용이 점점 더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물가 불안 때문에 언제까지 저금리 정책을 고수할 수 없는 정부의 입장이 금융시장에 반영되어서 금리 인상이 본격화된다면 은행대출이나 카드 빚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늘어나고 있다.
물가 폭등, 공공요금 인상, 전세값 폭등, 1천만원에 육박하는 대학등록금을 이고 지고, 하루 하루를 버겁게 살아가는 서민들. 은행 대출과 카드 대란이 언제 가정 경제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기둥 뿌리까지 흔들어댈지 불안한 것이 서민 살림살이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60원 내리고 90원 효과가 있다는 아리송한 기름값 인하 자화자찬
7%의 성장. 4만불 소득. 세계 7위의 경제 대국을 만들겠다는 747공약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 집권 4년차. 배추 한 망에 2만원을 상회하는 사상 초유의 물가 폭등이 작년 하반기 일이었고, 밀가루값, 라면값에 아이들의 과자값까지, 돌림병처럼 몰아치는 물가 인상의 파고는 이제 공공요금마저 넘보고 있다. 휘발유값 2천원대 진입을 놓고 정부와 정유사간의 니탓네탓 공방만 주고 받더니, 결국 통큰 인하 약속은 '리터당 60원이 내렸지만 90원 효과가 있다'는 말장난 같은 자화자찬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26일 정부가 돌연 담합을 이유로 정유사에 43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름값을 둘러싼 논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 과징금 부과 이유는 가격의 담합을 적발한 것이 아니라, 주유소를 나눠먹기식으로 관리해서 경쟁에 의한 가격 인하를 막고 타사 기름을 팔 수 있는 복수상표 표시 제도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는 데 있다고 한다.
SK 1379억7500만원, SK이노베이션 789억5300만원, GS칼텍스 1772억4600만원, 현대오일뱅크 744억1700만원, S-Oil 452억4900만원 등의 과징금 부과와 더불어 SK, GS칼텍스, 현대오일 등 정유3사에 대해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공정위는 밝히고 있는데, 정유 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법적인 공방이 예고된다.
이번 과징금 부과가 예년에 볼 수 없는 강도 높은 조치임에도 불과하고 당장 기름값 인하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리라 보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우선 4348억 중 자진신고업체로서 과징금 전액을 면제 받을 수 있는 GS칼텍스 1772억원을 제외하면 실재 부과될 과징금은 2576억원이며 이마저도 법적 공방 속에서 더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실제 2009년 판매가격을 담합한 LGP 6개업체에 과징금 6689억원을 부과했으나 SK가 자진신고했다는 이유로 면제받아 납부된 과징금은 4094억원에 불과했다. 이번에 GS칼텍스가 조사활동에 적극 협조해 과징금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과징금 면제 받는데도 담합이 있을지 모른다는 관측까지 있다고 한다(CNB뉴스 5월 26일).
또 정유사들이 지금까지 높은 기름값 때문에 벌어들인 영업이익에 비하면 이번 과징금은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올 1분기 1조 1933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SK이노베이션의 경우, 790억원의 과장금은 영업이익의 6.6%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로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현재의 담합 구조를 바꿔 낼 수 없으며, 오히려 관행화된 담합 행위를 적절한 시기에 한 번씩 면죄부로 터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는 시선도 있다. 수년에 걸쳐 이루어진 담합과 거기에 따른 막대한 이익을 생각한다면 과징금 1조 이상은 되어야 제재 효과를 거두리라는 의견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석달 동안 1조원 유류세 챙긴 정부는 자유롭나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번 조치가 기름값 인하로 이어지지 못할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이다. 휘발유값의 50%를 상회하는 유류세 인하 논의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 버렸기 때문이다. 휘발류값이 리터당 2000원이 넘어가자 유류세를 인하하지 않고서는 실질적인 기름값 인하 효과를 거두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났었다.
이에 정부도 김황식 총리가 국회에 나서 워낙 물가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유류세 인하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유류세 인하에 부정적이던 윤증현 재정부장관조차도 지난 4월 7일 세수와 에너지 전략 등 여러 방향에서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박재완 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유류세 반대 입장을 밝힘에 따라 정부의 유류세 인하 논의가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유류세 논의는 원점으로 돌려놓고 정유사에 막대한 과장금 부과라니. 이런 모순된 조치에 정부의 기름값 인하 의지를 의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휘발유값 리터당 2000원을 상회하면서 정유사는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2011년 1/4분기 영업이익이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GS칼텍스나 현대 오일뱅크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고유가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것은 비단 정유사만이 아니였다. 지난 1/4분기보다 원유 수입금액이 40% 가까이 늘어 25조를 넘자 원유 관세만 2028억 늘어나는 등 석유 관련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이 지난해 1/4분기보다 1조원 가량 늘어났으며 총 4조원 이상이 작년보다 더 걷힐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EBN 산업뉴스 4월 7일).
주유소를 나누먹기식으로 관리하여 기름값 인하를 인위적으로 막은 행위는 엄벌에 처해 마땅하다. 서민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져다 준 물가폭등. 유가 폭등이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적인 곳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담합 행위에 의해 파생되었다면 그것이야말로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공공의 적'이다.
정유사의 담합행위에 4천억의 과징금을 부과한 정부. 그러나 정작 유가 폭등의 담합에서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오른 기름값에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낸 정유사나, 한 분기 석달 동안 1조원의 이상의 세금을 더 거둬들인 정부. 이 모두 서민 호주머니 터는 담합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물가안정, 서민생활 안정? 당장 유류세부터 낮춰라기름값이 높다고 자가용을 세워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란다. 그렇게 해서 기름값에서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물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기름값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물가는 없다.
콩나물 한 움큼, 아침 밥상에 오르는 고등어 한 토막도 기름값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아이들의 학원비, 직장인들의 점심밥값, 전기요금, 전화요금 어디에도 기름값과 별개로 움직일 수 있는 물가는 없다. 이런 물가 구조에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날로 삭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휘발유값 50%가 세금인 구조에서 정유사를 쥐어짜고 아무리 물가대책을 세워본들 한계는 너무나 뻔하다.
정유사 사상 최대의 영업 이익과 정부 유류 관련 세금 1/4분기 1조 이상 증가라는 기록 뒤에는 가계빚 800조라는 또 다른 어두운 기록이 숨어 있다. 물가 안정, 서민 생활 안정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정부. 그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유류세에 대한 재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서민도 사람이다 좀 살자'는 아우성이 넘쳐나고 있다. 모처럼 빼어든 칼, 서민 경제를 살리는 칼이 될지 죽이는 칼이 될지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 발언은 정유사나 정부 모두에게 회초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