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에 휴가 나간다고? 이틀 늦게 나가라!"
하늘이 무너내리는 순간이었다. 전역을 앞두고 나에게 3차 군 정기 휴가가 찾아왔다. 그리고 더 큰 기대는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서울디지털포럼에 래리킹이 참석한다는 것이었다. 평상시 CNN을 즐겨본 나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고,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또 직접 질문까지 준비했다. 그래서 휴가기간을 여유롭게 23일부터 31일까지 맞췄다.
하지만, 너무 일찍 잡았다는 부대 내 간부의 반대로 내 휴가는 이틀 늦춰진 25일부터 시작됐다.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25일 래리킹 세션은 오전 8시 20분에 잡혀있었기 때문에 오전 6시 기상하자마자 바로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25일 당직 계통의 엄격한 통제때문에 출발 시각은 늦춰졌고 교통등의 사정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됐다. 결국 그의 세션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래리킹이 온다는 소식에 설랬지만, 한 간부의 반대로 물거품이 됐다. 너무 허망했다. 질문의 기회도 다른사람에게 돌아가고, 세션도 참석하지 못했다. 단지 TV 생방송 시청으로만 그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왕(King)'같은 아쉬움을 여성운동가가 '영광(Glory)'스럽게 풀어주다
사실 이번 서울디지털포럼은 거의 모든 관심사가 킹에게 쏟아졌다. 세계적인 방송인의 첫 내한인 만큼, 국내외 언론사들의 관심도도 컸다. 그렇게 킹에게 집중되는 바람에 다른 연사들은 거의 언론에서 이목을 집중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 또다른 기회가 있었다. 바로 세계적 여성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글로리아 스테이넘(Gloria Steinem)의 세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연결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디지털포럼 마지막 날 기조연설을 맡았다. 래리킹 세션보단 덜하지만 이번 디지털포럼의 메인 이벤트 중 하나였다. 심지어 SBS TV로도 생중계된다고 현장에서 직접 들으니, 허망했던 마음이 갑자기 큰 기대로 전환됐다.
큰 기대만큼 강연의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영어 자체로 에로스는 로맨스 자체를 뜻하지만 포르노는 여성 노예의 어원에서 나왔다. 이차이점을 인지해야 한다"며, SNS 시대로 연결된 사회속에서 여성의 역할을 역설했다.
방송전파도 탈 수 있고, 연사에게 질문을 앞 둔 순간 난 아이폰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질문의 정확한 단어를 빠르게 검색했다. 그리고 3번 정도 손을 들었다.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은 바로 이렇다.
"한국 경찰이 집장촌 철거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에 반대하는 집장촌 여성들은 우리를 정상적인 노동자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내 질문에 한순간도 당황없이 대답했다.
"집장촌 여성들을 검거하는 것은 옮지 않습니다. 정부 자체적으로 이 여성들을 위해 안전한 가옥등을 마련해주는 대체법안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단속으로만 해결하려는 모습은 이 사회에서 보기 힘이 듭니다. 여성 자체가 처벌 대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내용이 내가 그렇게 바라고 바랬던 '연사에게 질문하기'와, 'TV출연하기'를 동시에 이룬 셈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난 지금쯤 아쉬움속에서 이번년도 디지털포럼을 맞이했을 지도 모른다.
두 연사 이름 그대로 '왕(래리킹')같은 아쉬움이 '영광(글로리아 스테이넘)'스럽게 풀린 유종의미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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