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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8시 서울시 마포구 망원우체국 앞 작은 인도에는 분홍색 옷을 입은 60여명의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누가 주최자이고 누가 참석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기 일처럼 앰프를 나르고 스크린과 현수막을 설치하는 사람들. 이들은 <성미산 지키기 일주년 기념 성미산문화제>를 하기 위해 모인 성미산마을 주민들이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성미산 남사면의 가장 아름답고 울창한 숲을 허물고 그곳에 학교를 짓는 것에 막기 위한 마을주민들의 움직임 '성미산지키기 비상행동'이 시작된 지 벌써 일 년이 지난 것이다.

나는 첫 번째 <성미산문화제>를 하는 날, 어리바리 사회자가 되었다. 그동안 마을 축제 등에서 사회를 봤던 경험 때문이기도 했고 대책위 언론홍보 담당자를 자처하여 이런저런 소식에 비교적 빠르다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 마을주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여건에서 성미산 지키기에 마음과 시간을 내던 분위기였다. 전 시민단체 활동가였던 나에게 문화제 사회를 본다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성미산 지키기 활동이 길어지면서 나에게 <성미산문화제>는 '큰 일'이 되어버렸다. 문화제 장소를 결정하고 문자를 보내고 공연자를 섭외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그저 매일 밤 시간을 비워야하고 매일 밤마다 거리로 나가는 일상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그렇게 이어왔던 <성미산문화제>가 어느덧 일 년간 지났다. <성미산지키기 일주년 기념 성미산문화제>에 대한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사에 배포하고 취재를 요청하는 것보다 그저 소소하게 문화제를 하며 느꼈던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기사를 작성하기로 했다.

"일단 촛불집회부터 하고 보자!"며 시작한 <성미산문화제>

<성미산문화제> 처음 발상은 2010년 5월 23일 마을회의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시가 성미산에 홍익초중고를 지어 이전하도록 허가해준 것을 안 다음날 마을 주민들은 비상 마을회의를 했다. 성미산학교 다목적실을 가득 채운 주민들은 성미산지키기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와 부담, 예상되는 어려움, 가능성 등을 모두 열어두고 이야기를 나눴고 그 결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우선 시작하기로 한 것이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촛불집회와 일인시위였다. 당장 시작하자는 주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하자는 의견에 따라 2010년 5월 24일 비오는 망원우체국 앞에서 첫 <성미산 문화제>가 열렸다.

망원우체국 앞에서 열리는 성미산문화제 성미산문화제 이틀째 날 현수막을 들고 행진도 했다.
▲ 망원우체국 앞에서 열리는 성미산문화제 성미산문화제 이틀째 날 현수막을 들고 행진도 했다.
ⓒ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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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을 때는 200명에서 적을 때는 10명 내외, 평균 50여명이 모이는 <성미산문화제>는 정말 평화적이고 아름답고 따뜻하게 매일 밤 이어졌다. 어떻게 해서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우리의 반대 의사를 전하기 위해서 행진을 하기도 했다. 촛불집회이니 처음에는 초를 들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많이 참여하는 동네 집회의 특성상 아이들의 불장난이 위험스러워보였다. 이에 풍선을 들고 집회를 하다가 여러 가지 피켓을 만들어서 드는 것으로 변화했다. 비가와도 문화제는 쉬지 않았다. 비로 인해 전기를 연결해서 마이크를 쓰는 것이 위험하면 핸드마이크를 들고서 발언하기도 했다.

문화제의 순서는 늘 똑같았다. 성미산대책위 상황실장 쟁이(이창환)가 하루 동안 성미산이 얼마나 안전하게 지켜졌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쟁이는 나무 하나가 베어졌다는 말을 하며 울적해하기도 했고, 몸싸움과 욕설에 시달려 지쳐 파김치가 되기도 했다. 대책위원장 웅이(문치웅)는 매일 성미산대책위 활동의 전체적인 그림을 이야기했다. 늘 이야기의 끝은 힘을 내자 고맙다였다. 이어 공연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는 등 다양한 '문화제'다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성미산문화제에 꼭 있다는 사람들  문화제 사회를 본 소녀(김언경),성미산대책위 위원장 웅이(문치웅), 상황실장 쟁이(이창환)
▲ 성미산문화제에 꼭 있다는 사람들 문화제 사회를 본 소녀(김언경),성미산대책위 위원장 웅이(문치웅), 상황실장 쟁이(이창환)
ⓒ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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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주민들에게 <성미산문화제>는 특별했다. 주민들은 <성미산 지키기 비상행동>이라는 이름 아래 성미산에 천막을 치고 밤새 산을 지켰고 나무가 베어지지 않도록 몸으로 막았다. 여러 차례 기자회견과 서울시, 서울시교육청에 항의방문을 했고 성명서 발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성미산 전체의 생태공원화와 기존 마을 학생들의 교통안전권을 요구했으며 이를 위해 홍익초중고 이전을 위한 대체부지 마련해주기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성미산 주민들은 사실 모두 생업에 종사하고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일상을 유지해야 했다. 따라서 밤낮없이 산을 지키고 공사장 안전을 감시하는 데 동참하기 어려웠던 주민들은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휴가를 내서라도 번갈아가면서 산을 지키는 당번이 되곤 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평일 밤 8시마다 열리는 문화제만이라도 나와서 성미산과 성미산마을 주민들의 소식을 들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모아왔다.

반팔을 입기 썰렁한 시기부터 시작했던 문화제를 장마와 더운 여름을 지나 시원한 가을, 그리고 겨울로 이어져 두꺼운 외투에 모자에 목도리로 무장한 채 이어졌다. 그러다 결국 우리는 마을카페인 작나무로 문화제 장소를 바꾸었다. 추운 겨울 거리에서 문화제를 계속 하는 것은 어린이들까지 함께 하는 마을의 특성상 무리이며, 누군가에게 성미산 투쟁을 알리는 것보다 우리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서로 힘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라면 따뜻한 사랑방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의미를 두기로 했다.

성미산문화제에 함께 많은 분들에게 깊은 배꼽인사 드립니다!

성미산문화제의 꽃은 역시 공연이었다. 처음 문화제가 열릴 때에는 주로 '노래 잘하는 마을 주민들'이 나와서 힘을 내자는 의미로 공연을 했다. 마을 주민들이 만든 성미산의 아름다움을 담은 동영상을 보기도 했다. 레퍼토리가 떨어지자 나무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시를 낭송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마을 어린이와 중고등학생들이 노래는 물론 피아노, 기타, 밴드합주, 율동 등 을 하는 작은 학예회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성미산지키기 비상행동의 활동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문화제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백자, 연영석, 지민주, 최도은, 엄보컬 김선수, 조약골, 재개발 등 인디밴드 여러분들, 노래패 꽃다지, 아마도 우린, 한신대 노래패 보라성. 새민족교회 노래패, 환경운동연합 노래패 솔바람, 한백교회, 서울대 율동패 연 등 참 많은 공연자가 오셨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초대손님은 '엄보컬 김선수', '갤럭시 익스프레스', '연세대학교 문과대 풍물패 발버둥'이다.

기타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엄보컬 김선수'는 홍대앞 두리반 칼국수집 철거반대는 물론 용산참사 현장 등에서 지지공연을 하며 힘을 주는 가수이다. 성미산 소식이 들리자마자 달려와준 '엄보컬 김선수'는 폭이 1미터도 되지 않는 좁은 거리에서 한 시간이 넘게 공연을 했고, 시간이 날 때 마다 수시로 와서 공연을 해주었다.

엄보컬 김선수 성미산문화제에 가장 여러번, 가장 오랫동안 공연해주신 분들이다.
▲ 엄보컬 김선수 성미산문화제에 가장 여러번, 가장 오랫동안 공연해주신 분들이다.
ⓒ 성미산을 지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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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익스프레스' 역시 매우 인상적인 음악인이었다. 어느 날 성미산문화제에 출연해주겠다는 그룹이 있다고 전화가 왔다. 성미산문화제는 앰프 하나가 음향의 전부여서 전문 뮤지션을 모시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경찰이 수시로 소음 측정을 하고  인근 주민들의 소음신고가 한두 번 있었기에 진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장비를 늘려 공연여건을 좋게 해주는 것도 부담이었다. 연주할 여건도 되지 않는 주제에 나는 '갤럭시 익스프레스'에게 "너무 시끄럽지는 않은 노래"를 부탁하는 황당한 무례를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어수선한 동네 아이들 앞에서 '개구쟁이'를 불러줬고 정말 조악한 음향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들 전체에게 큰 감동을 주는 연주를 해주었다. 성미산문화제에 참석하지 않는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멈춰 서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공연에 빠져 드는 시간이었다.

갤럭시익스프레스 성미산문화제에 두번 출연해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갤럭시익스프레스 성미산문화제에 두번 출연해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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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문과대 율동패 '발버둥'은 문화제에 두 번 출연하는 것에 이어 아예 성미산과 두리반을  지키자는 주제로 공연극을 만들어서 연세대학교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이 공연은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재공연되기도 했다. 단편선 조약골 등 두리반 투쟁에 함께 하는 인디밴드 그룹들이 홍대 정문 앞에서 문화제를 열어주기도 했다. 한편 아폴로18, 비둘기우유, 잠비나이, 선결, 스윗 게릴라즈, 텔레플라이, 48몰핀스가 함께 하는 '에스텔라 레코드' 레이블에서는 성미산지키기 공감이라는 주제로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하여 수익금을 전달해주기도 했다.

연세대 문과대 율동패 발버둥 성미산문화제의 활력소 발버둥! 2회 출연, 2회 무대공연을 해줬다.
▲ 연세대 문과대 율동패 발버둥 성미산문화제의 활력소 발버둥! 2회 출연, 2회 무대공연을 해줬다.
ⓒ 성미산을 지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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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주민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문화제는 9월 3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성미산 백일문화제>이다. 본격적인 음향설비를 갖춰 모신 소히와 친구들, 아카시아, 갤럭시 익스프레스, 허클베리핀, 치즈스테레오의 공연은 주민들에게 백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또 다른 에너지를 주는 시간이었다. 지나가며 백일문화제를 보던 많은 시민들은 비장하고 슬픈 싸움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성미산 주민들이 지나치게 발랄하고 행복해보여서 의아해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마을의 주제를 가지고 시청 앞으로 나와 백일떡을 돌리고 흥겹고 즐거운 음악과 힘찬 지지발언을 듣는 문화제 분위기에 참신하다는 박수를 보내주기도 했다.  

허클베리핀 서울시청앞에서 열린 성미산백일문화제에서 가장 열정적인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 허클베리핀 서울시청앞에서 열린 성미산백일문화제에서 가장 열정적인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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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을 찾아가 문화제를 하기도 했다. 성미산지키기 문화 프로젝트로 기획했던 '성미산백인합창단'이 홍익대를 찾아가서 공연을 했고 성미산 이야기와 홍익대 청소용역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위로하고 연대하기도 했다.

성미산문화제에 참석한 많은 음악인, 동아리, 대학생들은 마을 주민들의 작은 싸움에 큰 힘을 주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쳤을 것이고 외로웠을 것이다. 주민들 모두를 대신해서 성미산지키기에 함께 해줬던 모든 분들, 오가며 지지발언을 해주시고 성미산지키기 성금을 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소박했지만 따뜻했던 '성미산지키기 일주년 기념 문화제'

'성미산지키기 일주년 기념 문화제' 를 준비하면서 마을회의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큰 장소에서 음향설비를 제대로 갖추고 멋진 문화제를 할 것인가, 성미산 숲을 위한 위령제를 할 것인가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으나 결국 소박하게 평소대로 문화제를 하기로 했다. 늘 하던 망원우체국 앞에서 늘 듣던 발언을 듣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웅이에게  성미산지키기 상황을 들었고, 쟁이로부터 그동안 성미산을 지키며 느꼈던 소감을 들었다. 그동안 성미산문화제에 참석해줬던 많은 공연자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함께 보며 박수로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성미산지키기 일주년 기념 동영상을 보며 함께 울기도 했다.

성미산학교 율동패 몸부림 성미산마을 아이들이 만든 율동패 '몸부림'이 성미산지키기 일주년 기념문화제에서 공연하고 있다.
▲ 성미산학교 율동패 몸부림 성미산마을 아이들이 만든 율동패 '몸부림'이 성미산지키기 일주년 기념문화제에서 공연하고 있다.
ⓒ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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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공연자는 성미산율동패 '몸부림'이 했다. 연세대와 서울대 율동패 공연을 본 동네 아이들이 자신들도 율동을 배워보겠다며 만든 동아리였다. '바위처럼' 한 개의 레퍼터리뿐이었지만 열광적인 앵콜 요청에 응하기도 했다. 지난 일 년 동안 늘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아이들이었다. 생태적 삶을 지향하며 자연을 지키려는 엄마 아빠,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예술인의 공연과 여러 어른들의 지지발언을 들으며 지낸 일년이었다. 어쩌면 그냥 밤마실 삼아 엄마 아빠를 따라 나온 것이지만 부쩍 자라난 아이들의 키만큼 이 아이들의 생태 감수성도 부쩍 자라나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늘 불렀던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은" 개사곡을 부르고 "성미산아 사랑해" 구호를 외쳤다. 우리는 이렇게 소박하게 진행된 '성미산지키기 일주년 기념 문화제'로 성미산문화제를 일단락하기로 했다.

성미산지키기 18번 "아이들은" 개사곡 아이들이 많은 동네 집회의 특성상 동요를 개사하여 많이 불렀다. 백일문화제에서 함께 부르고 있다.
▲ 성미산지키기 18번 "아이들은" 개사곡 아이들이 많은 동네 집회의 특성상 동요를 개사하여 많이 불렀다. 백일문화제에서 함께 부르고 있다.
ⓒ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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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지키기는 아직도 진행중

그렇다고 우리의 싸움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작년 8월 17일에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건축허가 승인 취소에 대한 행정소송을 접수하였고 1심 최종 선고가 6월 22일에 있을 예정이다. 재판 결과를 떠나서 이번 소송은 원고인단이 천명이 넘었으며, 재판부의 현장검증, 프리젠테이션, 증인심문 등 재판부의 관심이 높았다. 감사원에서 제출한 한강유역환경청에 대한 감사청구도 검토 중이다.

그리고 성미산마을은 지금 축제 중이다. 해마다 5월이면 열렸던 성미산마을축제가 올해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준비되었다. 누군가 묻는다. 성미산을 지키지도 못했고, 그 싸움 때문에 많이 지치고 많이 상처받았을 법 한데 무슨 힘으로 그렇게 신나는 축제를 하냐고.  그러나 우리는 절실하게 일상의 복원을 바라며 여전히 행복한 마을살이를 꿈꾸는 것이다.

나무 하나 베지 못하게 하려고 하루 종일 몸싸움을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주민들은 지금 참혹하게 무너져버린 홍익초중고 공사현장을 매일 보고 있다. 아직도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놀라고 굴착기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거리에 쓰러진 나무 한 그루를 봐도 마음이 아프다.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재판결과 여부를 떠나서 성미산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성미산마을 주민들 역시 살아야 한다. 서로 아픈 마음을 보듬고 다시 힘을 모아서 일상성을 회복하고, 무엇보다 사라진 녹지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4월 5일 우리는 성미산 나무심기 행사를 했고, 마을 곳곳에 상자텃밭을 하고, 집집마다 주머니텃밭을 분양했다.

끝은 없다. 우리의 삶이 계속되고 마을이 계속되며, 성미산을 지키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재판을 준비하면서 관청의 인허가 과정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는 허무하게 동네 뒷산이 무너지게 하지 않도록 우리가 일 년 동안 경험하며 배운 소중한 교훈을 정리할 것이다. 성미산지키기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지지해준 분들이 참 많다. 전국 곳곳에서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주시고 성금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모든 분들께 <성미산지키기 일주년 문화제 이야기>를 통해 거듭 감사를 드린다.


#성미산#성미산대책위#성미산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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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의 회원으로 언론모니터를 시작하여 민언련 모니터부장, 협동사무처장, 사무처장, 공동대표 등으로 언론개혁운동을 했습니다. 현재는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으로 인권 관련 미디어비평을 하고, 매주 일요일 8시 유튜브 <뭉클했슈>를 통해 작은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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