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월 28일, 충남 서산시 운산면 원벌리 허도화씨 댁에 모내기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농부의 손길이 바쁜 5월이다. 마당 가에서, 한껏 멋을 부린 꽃을 여유롭게 쳐다볼 시간조차 없어, 꽃에게 미안한 날이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一紅)이라고 아름다운 꽃도 곧 질 텐데, 말이다.

이앙기로 모내기하는 모습
 이앙기로 모내기하는 모습
ⓒ 허관

관련사진보기


5월의 화사함과 풍부한 자연을 4계절 골고루 나누어 가지면, 한가할 때 유심히 봐줄 수 있는데, 모두 바쁜 철 5월에 피어 마당가에서 저리 천덕꾸러기가 되었을까. 기다려 주지 않는 세월처럼, 분주한 봄날이 지나면 꽃도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마당가에 핀 꽃과 모내기
 마당가에 핀 꽃과 모내기
ⓒ 허관

관련사진보기


이름에서도 연상되듯이 원벌리는 넓은 들 한가운데에 있다. 서뜸, 마래뜰, 구억말, 벗말, 언기미, 장동 이란 몇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구억말은 구석진 곳에 마을이 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벗말은 원벌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마을이 벌판이 된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했다.

서뜸, 마래뜰, 언기미, 장동에 대해서도 물어보려고 하다가 말았다. 허도화씨의 부인 유창금(72세)씨는 구억말과 벗말을 설명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사람이 살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행정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은 원벌리까지이다.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져 생긴 이름이 아닌 역사와 함께한 자연이름이다. 저 이름들을 다 설명을 듣자면, 마을의 역사를 설명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백제시대 최고의 걸작이라 칭송받는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84호)
 백제시대 최고의 걸작이라 칭송받는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84호)
ⓒ 허관

관련사진보기



허도화씨의 나이는 77세이다. 허도화씨댁이 있는 원벌리 벗말에는 8호, 16명이 살고 있다. 팔순에 가까운 허도화씨도 벗말에서 젊은 축에 속한다. 앞으로 20년 이내에 벗말이 사라진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인근에는 지금으로부터 1천 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백제 시대 최고 걸작이라고 칭송받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있다. 그리고, 원벌리 주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개심사가 있다. 개심사 또한 마애삼존불상과 역사를 같이 한다. 수 천 년 동안 이어온 마을이 최근 몇 십 년의 변화에 사라질 운명이다. 우리나라 농촌 모두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농가인구 감소추이
 농가인구 감소추이
ⓒ 통계청

관련사진보기


바다의 모든 생명들은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며 물로 돌아가듯이, 땅 위의 모든 생명은 땅에서 나서 땅에서 자라고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돌아가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다.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 하나의 죽음은 하나의 삶을 키운다. 그것이 자연이고 땅이다.

우리나라 문화의 기틀은 농경문화다. 수 천 년의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광야를 달리며 사냥을 하던 한족 몽골족과 험한 바다에서 삶을 살아온 게르만 족과 달리 오래전부터 정착하다 보니 온순하고,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맬서스의 인구론에 의하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다윈은 진화론을 생각해냈다. 즉 모든 생명은 먹이 때문에 경쟁을 해야 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종만이 살아남아 대를 잇고 그렇지 못한 종은 멸종한다는 진화론의 중심 이론인, 자연선택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증가했다. 왜일까.

이 물음에는 두 가지 답이 있다. 첫 번째로, 조물주가 분배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연을 파괴하여 인간의 먹거리를 많이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유전공학 등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대량생산체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저서《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인구와 식량 사이의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서 기근 ·빈곤 ·악덕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다윈의 진화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토머스 맬서스 저서《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인구와 식량 사이의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서 기근 ·빈곤 ·악덕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다윈의 진화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허관

관련사진보기


인간이 계속 생존하기 위해 실행한 이 두 가지 방법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모두 주지하다시피 자연 파괴로 인해 발생한 문제이다. 지금 지구촌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두 번째로는 아직까지는 기후변화보다는 덜 심각하지만, 인공 먹거리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질병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토피와 급속도로 증가하는 암환자들이다.

그리고 삶의 질, 즉 행복지수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먹거리를 얻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사람들은 점차 인공적인 먹거리로 연명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프랭크슈타인"처럼 여기던 GMO가 미래 식량을 대체 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는 식물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병충해와 농약에 강하고 수확량도 많은 곡물을 생산하는 첨단 유전공법이다.

지금까지의 인공 먹거리의 원재료는 그래도 자연에서 생산한 것이었는데, 앞으로는 이조차 인공적으로 만들어 먹는 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종은 수백만 년 동안 자연에서 먹거리를 취하면서 진화해 왔다. 이와 같은 인공 먹거리를 먹게 되면 아마 다른 종으로 변하지 않을까.

이미 변해 있을 수도.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일까. 아마 후세의 고생물 학자들은 우리를 콘크리트 족이라는 명명하지 않을까. 그럴 수 도. 하여튼 서뜸, 마래뜰, 구억말, 언기미, 벗말처럼 자연적으로 생겨난 자연마을은 이들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정착 민족이었던 우리는 부레옥잠처럼 떠돌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자주 발생하는 범죄의 유형이 흉측해지고, 대범해지고 있다. 몽골족 또는 게르만족처럼 거칠고 사나워지고 있다. 마을 단위로 정착 생활 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사건들이다. 미국 서부를 떠돌던 황야의 무법자처럼, 유럽 북해를 주름잡던 바이킹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도화씨를 비롯한 현재 농부들이, 어쩌면 우리민족의 마지막 종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자라다가 땅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지식을 지닌 분들일 것이다. 생텍쥐페리가 그의 소설 "인간의 대지" 서두에 "대지는 책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라고 했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다.

어쩌면 최후로 존재했던 우리민족이라고 역사에 기록될지 모를 마지막 농사꾼 허도화씨
 어쩌면 최후로 존재했던 우리민족이라고 역사에 기록될지 모를 마지막 농사꾼 허도화씨
ⓒ 허관

관련사진보기



태그:#농촌인구감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