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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깃들이는 마을...어린 새들...
▲ 산책길에서... 새들이 깃들이는 마을...어린 새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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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는 가늠하기 어렵다. 봄옷을 입어야할까 여름옷을 입어야 할까, 조석으로 다르니 참으로 변덕스럽다. 손바닥 뒤집듯 변덕스러운 날씨이긴 해도 이젠 조금씩 여름으로 내딛고 있다. 이따금 산보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마을 골목길을 돌기도 하는데 시절마다 바뀌는 들꽃들과 짹짹 지저귀는 새소리에 자전거 두 바퀴 저어 달리다가도 서고 또 선다.

까치가 예서 제서 저희들끼리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짹짹 어린 참새들 노래한다. 가끔 뻐꾸기 소리도 들려온다. "새들이 없는 집은 양념을 치지 않은 고기와도 같다"(인도의 옛 시 <하리반사> 중)고 했던가. 이곳에 깃들인 새들은 한두 종이 아닌가보다. 나뭇가지에서 가지로 날아다니는 새들의 소리도 다양하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새들 이름을 많이 모르고 있다는 것과 야생화들조차 이름 모르는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산줄기 부드럽고 힘차게 뻗어나간 오봉산이 있고 낙동강을 돌고 숲을 흔들어 헹구어 나온 바람이 싱싱해서일까. 내가 사는 마을엔 새들이 깃들인다. 그것들은 하늘을 날다가 미루나무 위에도 소나무 위에도 무성한 나무 위에 시나브로 들락거린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1년, 이제야 산책로 끝까지 걸어보다

저만치 오봉산...
▲ 아침산책... 저만치 오봉산...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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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남편 출근 배웅을 하고 오는 길에 마을 옆구리에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산책로가 아주 짧은 줄로만 알았다. 나는 그동안 골목길 끝나는 지점부터 시작되는 산책로가 쭉 이어지다가 언덕 위로 올라가서 다시 길게 이어지다가 S교회 앞에서 끝나는 줄 알고 아쉽게 돌아서 왔었다. 길을 걷다 만 느낌이어서 '이 길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쉽게 돌아서곤 했다.

며칠 전이었다. 퇴근해 온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고 저녁 산책을 나섰다. 요즘은 날씨가 포근해지면서 산책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저녁 산책도 제법 산책을 제법 활기를 띤다. 골목길을 걷다가 산책로로 접어들자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평소에 산책로를 걷다가 아쉬워하며 돌아섰던 길에서 막 돌아서는데, 저만치 앞서 가던 사람이 더 멀리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니, 여기가 끝이 아니었나? 우린 어디까지 가는지 따라 가 보기로 했다. 그들은 내가 평소에 산책로 끝이라고 생각했던 길에서 훨씬 더 올라갔다. 산책로는 한참 더 길게 이어졌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길이 눈앞에 이어지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산책로는 끝이 났다.

산책로 끝에서 다시 돌아오는 길. 한쪽에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그 뒤편에는 허허벌판이다. 다른 한쪽은 짙어가는 어둠에 깊은 침묵 속에 침잠한 산이 우뚝했다. 길가에는 산비탈을 일구어 만든 오밀조밀한 계단식 텃밭에 밀과 보리, 감자, 양파, 상추, 깻잎, 콩잎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향기롭고...
▲ 찔레꽃... 향기롭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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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로 이사 온지 거의 1년. 이제야 산책로 끝이 어딘지 알다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 지척에 있는 것도 이렇듯 그때그때 모르는 것이 많다. 어디 산책로뿐이겠는가. 눈을 떴으나 보지 못하는 것들이 실상 얼마나 많을까. 관심을 갖지 않고 보는 모든 것,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는 모든 것은 어쩌면 보는 것이 아니다.

어느새 어둠이 먹물처럼 풀어지고 멀리서 가까이서 사람 사는 지붕 아래 불이 켜지고 양산 시내 쪽 불빛은 은하수가 내려앉은 듯 아련하게 반짝거렸다. 맑은 날 아침에 다시 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우린 되돌아 왔다.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이른 아침 산책로를 끝까지 걸어보았다.걸었다. 밤에 걸었을 때보다 그렇게 길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길은 예전보다 훨씬 길었다. 제법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 멀리까지 조망되었다. 머리 위엔 오봉산의 부드럽고도 힘찬 능선이 파도처럼 굽이굽이 흐르고 상쾌한 바람이 숲을 돌아 나와 더욱 상쾌했다. 새들은 끊임없이 여기저기 나뭇가지 위에서 위로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햇살은 부챗살처럼 퍼져 나갔다.

밀도 보리도 황금빛을 띠기 시작...
▲ 산책길에서... 밀도 보리도 황금빛을 띠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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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길을 걷다가도 내 발을 붙잡는 것에 홀린 듯 멈추어 선다. 산책로 가에는 하얀 찔레꽃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롭고, 산딸기나무엔 잎이 무성해지고 산딸기가 알알이 굵어져 붉게 익어가고 있다. 매일 보는 것들이지만 하루 지나고 보면 또 어제와 달라져 있었다. 동백꽃, 철쭉꽃 목련꽃 꽃 먼저 피는 봄꽃이 진자리 옆에는 엉겅퀴꽃, 민들레꽃, 클로버꽃 등 야생화들이 시시때때로 피고 지고 피고 진다.

앞 다투어 피던 아카시아꽃 발밑에 후드득 떨어지고 찔레꽃 향기와 붉디붉은 장미꽃향기가 발을 붙잡는다. 풋보리와 밀은 또 무성하게 자라 초록빛을 넘어 어느새 황금빛으로 물결친다.

가가호호 옆구리에 끼고 있는 텃밭엔 언 땅을 일군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땅은 성실하게 보배로운 작물들을 길러내고 있어 발길 머문다. 콩, 깨, 상추, 파, 정구지 등.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산딸기나무, 매실나무에서는 제법 견실한 열매를 달고 나날이 알이 굵어지고 붉게 익어간다.

...
▲ 산책길... ...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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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매일 새롭다. 자연의 변화에 매 순간 그 신비에 놀라고 또 놀란다. 좋은 계절이다. <소로우의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계절이 지나가는 대로 각 계절 속에 살아라. 계절의 공기를 호흡하고, 계절의 음료를 마시며, 계절의 과일을 맛보아라. 각 계절의 영향력에 너 자신을 맡겨라. 계절들로 하여금 너의 유일한 식품, 음료, 약초가 되게 하라."

이제 초여름으로 내닫는 이 계절에 나는 오늘도 산책길을 걷는다. 봄, 여름, 가을… 시나브로 변해가는 이 작은 벗들을 마음 눈 열어 바라보면서 나의 산책은 계속되리라. 두 다리로, 또 자전거 두 바퀴 저어서.

산책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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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태그:#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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