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미술 애호가들은 6월초 저절로 행복해진다. 6월 2일부터 6월 6일까지 엑스코에서 열리는 '샘 프란시스 특별전'과, 5월 31일부터 6월 5일까지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는 '대구 아티스트전' 덕분이다.
엑스코에서는 추상표현주의 제2세대의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수성아트피아에서는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구상계열 중진작가들의 최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니, 진정한 미술 애호가라면 그 소식만 듣고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추상표현주의 2세대를 대표하는 샘 프란시스(Sam Francis,1923-1994)는 흔히 이성과 열정을 결합한 공간미학의 거장으로 불려진다. 그의 독창성이 빛을 발한 것은 추상표현주의와 액션페인팅 그리고 색면추상 등 다양한 회화적 탐구를 거쳐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김옥렬(현대미술연구소 소장)은 "샘 프란시스의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흰색은 의식이고 파란색은 무의식'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샘 프란시스에게 있어서 여백은 무의식을 뚫고 지나가는 의식의 지평이고, 파란색은 무한히 펼쳐진 열린 공간이다. 그에게 있어 열린 공간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직관과 사유가 작용한 '흰 여백의 공간미학'이 된다."고 말한다.
샘 프란시스는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동양의 사상과 문화적 체험을 작품에 담아 그만의 회화적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70년대에 '여백의 미'와 '선(禪) 사상'을 결합해 독자적인 공간미학을 형성했다.
대작의 캔버스와 무제 연작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색과 형의 유동적인 흐름 속에서 꾸미지 않은 행위의 흔적 이면에서 발하는 흰 여백의 공간미학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물감이 튀긴 흔적과 번짐 그리고 흘러내림은 회화적 흔적이 드러나는 존재의 파동이고, 작가의 직관과 사유는 색의 파동이 멈춘 시간과 장소, 즉 공간에 대한 새로운 탐구가 시작되는 여백이 된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가로지르며 동양화의 시적 감흥을 일깨우는 샘 프란시스의 이 같은 여백은 잠재된 의식의 껍질을 벗고 풍부한 색, 자연스런 필치로 이루어진 물감의 흔적들이 꾸미지 않은 우연들로 자발적인 화면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상미술의 진수 보여주는 '대구 아티스트전'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는 'D.A.(대구 아티스트) 전'에서 볼 수 있는 그림들은 샘 프란시스전의 것들과 아주 다르다. '판이하다'는 말은 아마도 이런 때에 쓰는 단어일 것이다. 수성아트피아에서는, 현대 추상미술에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샘 프란시스 앞에서 일순 당혹했던 기억을 잊어도 좋다. 일상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서정들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에 비록 미술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샘 프란시스의 그림과 아래의 작품들을 한번 비교해 보자.
대구는 구상 미술의 본거지이다. 지역의 보수적 기질이 그같은 예술적 경향성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강렬한 실험 정신은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와 거리가 먼, 낯선 것을 추구하는 미지 세계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수성문화재단과 수성아트피아가 후원하는 '대구의 아티스트전'은 오늘(5월 31일)부터 6월 5일까지 열린다. 장소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의 수성아트피아 전시실. 자리를 함께 한 9명의 작가는 공성환, 김영대, 류성하, 박성열, 손만식, 여환열, 예진우, 장이규, 전재경 화백이다.
참여 작가들의 개인전 이력을 보면 대단하다. 공성환 15회, 김영대 24회, 류성하 12회, 박성열 13회, 손만식 20회, 여환열 6회, 예진우 4회, 장이규 35회, 전재경 14회를 기록하고 있다. 단체전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수성아트피아 배선주 관장은 "이번 전시회는,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구상미술의 정점에 선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풍부한 예술적 감수성으로 승화시킨 구상미술의 참맛을 새롭게 감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D.A.(대구의 아티스트) 멤버들이 그동안 그룹별로 전시회를 자주 가졌다고는 하나, 다 함께 모여 전시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라고 말했다.
대구 미술계는 구상 계열이 너무 일방적으로 강하고, 진지한 비평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점을 가진 것으로 오랫동안 회자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수성아트피아의 '대구 아티스트전'을 감상한 시민이라면 '샘 프란시스전'도 꼭 방문할 필요가 있다. 나의 작은 발걸음 한번 한번이 쌓이고 쌓여 대구 미술의 미래를 다채롭게 하고, 나아가 대구사회를 바꾸는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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