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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수성찬이다."

반찬 가짓수가 얼마나 많은지, 그 수를 다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커다란 상 위에 이층으로 나열하고 있는 반찬들의 수가 상상을 초월한다. 잘 차려진 상 앞에 앉아 있으니, 군침이 저절로 돈다. 4열 이층으로 나열되어 있는 상 한 가운데에는 찌개가 4개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된장국, 소고기 조림, 버섯 찌개가 두 개가 펄펄 끓고 있었다. 잘 차려진 산책 백반의 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발동하였다.

산나물
▲ 반찬들 산나물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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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님을 모시고 식당을 찾았다. 정읍시 내장사는 원래 산채 백반으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국립공원인 내장사에 들러서 산채 백반을 먹지 않고는 내장사를 구경하였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내장사 산채 백반의 맛을 보기 위해서 음식을 시켰다. 소문이 왜 났는지 알 수가 있을 정도였다. 갖가지 산나물이 즐비하게 놓인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정도였다.

맛을 보았다. 각종 산나물의 맛을 보았다. 달콤하고 감미로운 맛이 혀끝을 자극한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각종 산나물들이 저마다 독특한 맛을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당귀의 독특한 향은 입맛을 자극하였다. 이는 음식이 아니라 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산나물의 별미에 푹 젖어들 수 있었다.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다양한 맛이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어나니, 미락의 진수를 즐길 수 있다.

꽁보리밥. 혀끝에서 살아나는 미세한 맛들을 맛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셨다. 그럼에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점심 한 끼를 굶는 것은 다반사였던 그 시절이 왜 생각이 나는 것일까?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에는 너무 참담하였던 그 시절이 왜 이렇게 그리워지는 것일까? 자랑스럽게 생각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지각색의 반찬
▲ 진수성찬 가지각색의 반찬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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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절실해지기 때문이리라.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하였다. 가난한 살림에 많은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였다. 그렇지만 언제나 허덕였다. 수입은 제한적인데 식구는 많으니, 그 입을 다 채우기가 어려웠다. 물로 배를 채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보리는 쌀에 비해서 가격이 아주 저렴하였다. 그것도 찰 보리가 아니라 겉보리는 더욱 더 가격이 저렴하였다. 겉보리를 가지고 밥을 하면 밥이 아주 새카맣다. 밥알을 입안에 넣으면 밥알이 씹히는 것이 아니라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이 사이로 빠져나가는 밥알들을 속절없이 씹어야 하는 일은 비극이었다. 잘 씹히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꽁보리밥을 물에 말아서 씹지도 않고 넘겨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한여름에 먹어야 하는 꽁보리밥. 처마에 매달아 놓은 바구니에는 꽁보리밥이 담겨 있었다. 파리가 많은 여름이라 바구니에 담아 놓지 않으면 보관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때에는 왜 그렇게 파리나 모기가 많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바구니에 꽁보리밥을 담아서 처마 밑에 달아놓으면 안전하였다. 꽁보리밥을 물을 말아 먹으면 목이 막힌다. 그러면 풋고추를 하나 된장을 찍어 먹게 되면 아삭아삭 소리가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다.

보고 싶은 얼굴
▲ 그리운 어머니 보고 싶은 얼굴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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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그런 꽁보리밥조차도 배불리 드시지 못하였다. 물론 자식들 때문이었다. 자식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어머니는 아끼고 또 아낀 것이다. 그때에는 어머니의 그런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단지 왜 이렇게 우리는 가난한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불평을 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먹인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이 이제는 내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모으는 것이 남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하였던가?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고스란히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먼 산을 바라보아도 어머니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파란 하늘을 보아도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다 내 가슴에 살아 있었다. 그 때에는 알지 못하였지만 내가 나이를 먹어 아버지가 되어보니,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의 진실한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채 백반을 먹으면서 어머니가 지어주신 꽁보리밥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산채 백반을 이제는 얼마든지 어머니에게 대접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옆에 계시지 않는다. 아! 이는 비극이다. 슬픔이다. 은사님 앞에서 슬픔을 내 보일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울고 있었다. 오묘한 맛을 맛보면서 어머니의 꽁보리밥을 생각하였다.<春城>

덧붙이는 글 | 단독



태그:#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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