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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날이 더워지던 5월의 마지막 날. 비가 오려는지 날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그래서 점심께 도서관에 잠시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집에 돌아와보니, 어머니는 먼저 밭일을 나가신 듯 보였다. 중간문 계단에 밭일용 신발 대신 슬리퍼가 있는 것을 보면 어머니가 밭에 나간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서둘러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 아랫밭으로 향했다. 점심을 먹을 때 아랫밭에서 고구마 모종 천 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잘 알지 못하는 외지인이 고구마 모종 천 개를 산다고 해서 말이다. 밭으로 내려가는 길에 하늘은 더욱 꾸르릉 거렸고, 하우스에 들어서자 빗방울이 모를 낸 논 위로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허리도 안 좋으신 어머니는 하우스 맨 끝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고구마 모종에 쓸만한 줄기를 가위로 잘라내고 계셨다.

그런 어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밭에 나온 내게 "비도 오는데 뭣하러 나오냐?"며 하우스 비닐창 밖에 떨어지기 시작한 빗줄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김포 쪽에서 쿠쿠쿵하는 천둥소리가 점점 우리쪽으로 다가왔고, 굵은 빗방울은 뚝뚝 시원하게 쏟아졌다.

그 빗방울 소리에 맞춰 쉼 없이 손을 움직이는 어머니가 건네준 고구마 모종의 끝부분을 다듬는데 손을 보탰다. 불필요한 고구마 줄기를 똑똑 잘라 심기 좋게 만들었다. 빗방울이 뚝뚝뚝 천둥이 쾅쾅쾅 울리는 속에 고구마 모종도 똑똑똑 떨어져나갔다.

어머니는 그런 짖궂은 날씨가 "참 지랄 맞다"며 더 비가 오기 전에 집에 먼저 들어가라 하셨지만, 우산살이 고장난 우산만 어머니와 남겨두고 집에 돌아갈 생각은 전혀들지 않아 묵묵히 부케같이 예쁜 고구마 모종을 만들어냈다. 요란한 천둥번개와 힘찬 빗줄기가 서서히 물러갈 때까지.

그리고 비가 한바탕 쏟아지는 동안 고구마 모종을 천개를 모두 만들어 흙에 묻어둔 뒤, 아예 모종을 하고 난 고구마도 파냈다. 고구마 줄기가 정신없이 뻗어나가면 밭이 엉망이 된다고 하시기에 삽으로 파내 버렸다. 빗줄기처럼 시원하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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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구마, #모종, #어머니, #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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