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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한·미 FTA 협정문에서도 무더기로 번역 오류가 나왔다. 건수만 무려 296건에 달한다. '누더기' 비준안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한-EU FTA의 오류 207건보다 89건이나 많다. 이밖에 지난 3월 서명됐던 한·페루 FTA협정문에서도 145건의 오류가 확인됐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3일 이같은 내용의 한·미, 한·페루 FTA  협정문 재검독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새 협정문에 대한 의결을 거쳤고,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한-EU에 이어 한·미, 한·페루 FTA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추진해 온 모든 FTA 협정문에서 번역 오류가 무더기로 확인됨에 따라, 졸속협상뿐 아니라 정부의 신뢰 역시 큰 상처를 입게 됐다.

 

특히 한·미 FTA는 협정문 자체의 여러 독소조항뿐 아니라 작년 말 자동차 등 재협상에서 미국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민주당 등 야당은 국회 비준동의안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누더기 비준안 한-EU FTA보다 번역 오류가 더 많은 한·미 FTA 비준안

 

이날 외교통상부가 내놓은 한·미 FTA 협정문 번역 오류는 모두 296건이다. 지난 3월 한-EU FTA 번역 오류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미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한·미 FTA 협정문도 다시 검독하게 된 것이다.

 

결과는 한-EU FTA 오류보다 훨씬 많았다. 재검독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발견한 외교부는 지난달 4일 국회를 찾아가 비준동의안 철회를 요청했다. 여야 간 심한 몸싸움까지 벌이면서 지난 2009년 4월 상임위를 통과한 비준안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한·미 FTA 협정문 역시 졸속 번역이 여실히 드러났다. 협정문 본문과 부속서 등에서 영문 번역을 엉뚱하게 했거나, 번역을 아예 빼먹기도 했다.

 

'할부구매'로 번역해야 할 'hire purchase'는 '임차후 구매'로 엉뚱하게 썼다. '환산계수(conversion factors)'는 '변환인수'라는 전혀 다른 말로 번역됐다. '버터 및 우유 추출 기타 유지방(Butter and other facts and oils derived from milk)'에서는 '기타'라는 말이 빠진 채 씌여졌다.

 

최석영 통상교섭본부 교섭대표는 "지난 3월 통상협정 번역체계 개선방안에 따라 한글본 재검독을 실시해, 이번과 같은 오류를 발견하게 됐다"면서 "번역시스템 개선을 위해 현재 인력과 예산을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번역 오류 책임지겠다'던 김종훈 본부장은 여전히 버티기?

 

한-EU에 이어 한·미와 한·페루 FTA 협정문까지 정부가 추진해 온 FTA에서 무더기 번역오류가 잇달아 나왔지만, 여전히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날 한·미, 한·페루 FTA 재검독 결과 발표 자리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직접 나오지도 않았다. 김 본부장은 지난 한-EU FTA 오역 사건 때여야 국회의원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았었다. 심지어 김황식 국무총리까지 나서 "통상교섭본부장을 포함해 관련된 사람들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회견자리에서 향후 책임을 묻는 말에 대해, 최석영 대표는 "현재 번역 오류와 관련해 감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감사를 받는 기관 입장에서 책임 등을 언급하기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정부의 한 고위인사는 "지난 한-EU FTA 번역 오류건은 해외토픽으로까지 소개되면서 국제적 망신까지 당하지 않았나"라며 "여야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민감한 한·미 FTA (협정문)에서도 이렇게 많은 오류가 나왔는데 뭔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이 납득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종훈 본부장은 여전히 자진 사퇴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한 관계자는 "김 본부장의 거취문제는 이미 예전에 밝혔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4월 자신의 사퇴 요구에 대해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인사권자 결정이 있을 때까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내 직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태그:#김종훈, #최석영, #한미FTA, #한EU FTA, #번역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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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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