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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이철재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겸재 정선기념관에 갔다가 그 곳에서 사라진 풍경들을 추억했습니다.

"이 일대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염창鹽倉들이 즐비했습니다. 나무로 지어진 그 소금창고 들이 화가의 발길을 잡곤 했지요.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한두 개만이라도 보전되었더라면……."

류충렬선생님께서는 잿빛 하늘 멀리, 아파트의 풍경이 보이는 곳을 향해 못내 허허로운 마음을 꼬리가 매듭 되지 않는 말로 뱉었습니다.

염창이 개조된 것으로 추축되는 한 건물이 멀리 아파트 숲을 배경으로 오늘날의 진경眞景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염창이 개조된 것으로 추축되는 한 건물이 멀리 아파트 숲을 배경으로 오늘날의 진경眞景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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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정선기념관의 서울 모형전시
 겸재정선기념관의 서울 모형전시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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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것을 보전할 수 있는 문화적 안목이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은 갖추어진 것일까요?"

송효섭 교수님이 아쉬움을 보탰습니다.

저는 류 선생님의 염창 얘기에 홋카이도의 오타루(小樽, Otaru)가 생각났습니다. 19세기에 상항(商港)으로 개발된 그곳에는 그 시대를 증언하는 부두의 창고건물들이 본래의 기능을 잃고 남았습니다. 그 창고로 오가던 운하도 그대로입니다. 본래의 기능이 사라진 오타루항의 오래된 창고들은 박물관 레스토랑과 공방, 기념품점으로 개조되어 과거 속에 현대를 담은 모습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2008년 8월 21일, 한 여름의 오타루 운하
 2008년 8월 21일, 한 여름의 오타루 운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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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어서 없애는 대신 현대적 활용을 방법을 찾은 오타루 부두의 창고들
 헐어서 없애는 대신 현대적 활용을 방법을 찾은 오타루 부두의 창고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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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치 있는 오타루운하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산책 장소이며 영화(러브레터)나 뮤직비디오(조성모) 촬영지로 각광받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개성 있고, 편리하고 모던한 그 오타루의 부두와 운하의 거리를 걷노라면 시간을 거슬러 환영 속을 걷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거리의 증기시계, 오로골들의 속삭임, 시뻘건 불꽃이 머금은 가마가 있는 유리세공공방, 인력거…….

커피향이 가득한 그 거리의 풍경은 바로 오타루항의 창고건물들이 보전됨으로써 가능했던 것들입니다.


중국에서 온 사신들조차 한 번쯤 유람과 풍류를 원했다는 양천(강서구)의 경승지는 이제 겸재정선이 그린 강서구 일대의 승경 그림들로만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정선이 양천현령으로 재임하던 시대(1740~1745년, 그의 65~70세 때)의 경승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류선생님께서 그리워하던 80년대 염창의 풍경은 충분히 보전될 수 있었던 지척의 과거임이 못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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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그럴 수 있었다면 그것들은 오늘날 '역사와 문화 경관'의 보석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소금기 머금은 경간이 긴 나무 창고들은 작가들의 공방이 되고, 기념품점이 되고, 혹은 박물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대를 해볼 수 있을 테니까요.

사라진 뒤 가슴 아프게 추억할 일은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보전이 보석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겸재정선기념관, #강서구, #염창, #소금창고, #오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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