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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군산시 나포면)에서 시내까지 거리는 약 17km. 그 중간 지점에 있는 내흥동 혜령마을 입구에 자리한 '바지런 철쭉분재원'에 다녀왔다. 내흥동은 원래 성산면 담당 '내흥리'였으나 1973년 7월 군산시로 편입된 고즈넉한 도시형 농촌이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는데 모내기가 한창인 들녘에서는 "여보시오 농부님네 내 한 말 들어보소··"로 시작되는 농부가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고, 모판을 가득 싣고 가는 경운기는 소달구지가 덜컹대던 그 옛날 시골 길을 떠오르게 했다.

 혜령마을 입구 보리밭과 장항선. 군산역을 출발한 열차가 다음 역 대야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혜령마을 입구 보리밭과 장항선. 군산역을 출발한 열차가 다음 역 대야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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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서니 수확 시기를 앞두고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들이 살랑살랑 부는 바람 방향을 따라 너울대며 타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리밭 위로 지나가는 장항선 열차는 오성산을 배경으로 푸른 하늘에 그려놓은 한 폭의 풍경화처럼 다가왔다. 

인상이 서글서글한 아주머니가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명함을 건네며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더니 고개를 돌리며 "여보!"라고 불렀다. 부부가 함께한다더니 아내인 모양이었다.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장화를 신은 주인아저씨가 나오더니 반갑게 맞으며 하우스 안으로 안내했다.

 숲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던 분재하우스. 바닥은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무늬 질경이 등 야생화를 심어놓고 있었습니다.
 숲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던 분재하우스. 바닥은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무늬 질경이 등 야생화를 심어놓고 있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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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분재와 수목이 숲을 이루는 하우스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주인은 이성만(63)씨로 80년대 초 대위로 예편한 예비군 중대장 출신이었다. 얼굴이 동안이어서 그런지 나보다 젊어 보였다. 두 사람은 80년대 초 분재를 배워 아주머니 고향(내흥동)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분재에 한참 빠졌을 때는 적금을 깨서 필요한 묘목을 사기도 했다고.

거름이 발효될 때 나오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역겨운 냄새도 잠시, 자연에서나 느낄 수 있는 그윽한 향으로 바뀌었다. 고풍스러움을 자아내는 수백 종의 분재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연출하는 싱그러움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가느다란 줄기에서 꽃을 피우고 예쁜 공주처럼 자태를 뽐내는 왜철쭉 ‘성휘’(星輝).
 가느다란 줄기에서 꽃을 피우고 예쁜 공주처럼 자태를 뽐내는 왜철쭉 ‘성휘’(星輝).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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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손가락 정도의 가느다란 줄기 두 개에 매달린 보라색 꽃송이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작은 게 제법 요염하게 보였기 때문. 옹기에 담긴 기린초, 무늬 미나리, 돌단풍, 남산 제비꽃 등이 자리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이 철쭉분재계의 공주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인은 철쭉 분재가 진열된 하우스 크기는 400평 정도이고, 양쪽에 작은 하우스 두 개가 있다고 소개했다. 보유하고 있는 종류는 600여 종으로 삽목(꺾꽂이), 모아 심기 등을 하는 묘목까지 합하면 2만 점이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새롭게 개발한 품종이 아름다워 딸 이름을 붙였다는 미르. 미르는 우리말 고어로 ‘용’을 상징한답니다.
 새롭게 개발한 품종이 아름다워 딸 이름을 붙였다는 미르. 미르는 우리말 고어로 ‘용’을 상징한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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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을 연상시켰던 철쭉군. 아지랑이를 떠오르게 했고, 하늘로 솟는 땅의 기운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숲을 연상시켰던 철쭉군. 아지랑이를 떠오르게 했고, 하늘로 솟는 땅의 기운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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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놓인 앙증맞고 귀여운 크기의 철쭉도 눈길을 끌었다. 이름이 '미르'라고 했다. 주인은 미르는 우리 고어로 용(龍)을 뜻한다며 딸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어쩐지 다른 분재와 달리 이파리와 꽃 색상이 특이하고 소품이지만, 줄기와 가지, 이파리가 공간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어린 철쭉들이 군락을 이룬 모습도 장관이었다. 이리저리 휘어진 채 하늘을 바라보는 줄기들은 분재의 진수를 보는 듯했다. 작품을 대할 때마다 온갖 상념과 상상에 빠져들곤 했는데 말을 못하는 식물과도 대화가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줄기이면서도 꽃잎 색깔이 다른 ‘미랑야’. 꽃이 무척 화사했습니다.
 한 줄기이면서도 꽃잎 색깔이 다른 ‘미랑야’. 꽃이 무척 화사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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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원을 1시간 남짓 둘러보며 새롭게 느낀 게 있다. 꽃잎으로 술을 빚기도 하는 진달래는 시적이고 소박하게 느껴지는데 철쭉은 작아도 화려하고 정열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진달래가 샘가로 빨래하러 나온 동네 처녀라면 철쭉은 화사한 비단 옷을 걸친 궁중 여인과 비교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자생 철쭉은 28종으로 진달래, 산철쭉, 철쭉꽃 나무, 참꽃나무, 황산차, 꼬리진달래, 산진달래, 흰참꽃, 줄참꽃 등이 제주도를 포함한 국내 산야에 널리 퍼져 있단다. 특히 꽃색이 철쭉보다 진한 산철쭉은 세계 철쭉품종육성 재료로 이용되었던 꽃이라고.

분재원 주인은 같은 철쭉이라도 품종과 산지에 따라 꽃 모양과 색깔이 각기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자생종으로 교배해서 나오는 게 2천 종이 넘는다는 왜철쭉은 일반 조경용 철쭉이 지는 시기(5월 중순)에 개화를 시작해서 6월 20일경까지 핀다고 설명했다.

국내 애호가들에게 호평받는 철쭉 대부분은 '왜철쭉'

 천 마리의 학 날개를 모아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는 '천우학'
 천 마리의 학 날개를 모아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는 '천우학'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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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철쭉을 '왜철쭉'이라 호칭했다. 궁금해서 물으니 국내 분재 애호가들에게 호평받는 철쭉 대부분은 '사쓰끼'로 '고월'(皐月)이라 하며, 일본 발음으로 사쓰끼(サスキ)라고 한단다. 고월은 음력 5월에 꽃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국내에서는 '왜철쭉'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왜철쭉은 수세가 강하고 새 가지가 잘 나와 수형 만들기가 쉬우며, 품종이 다양하고, 잎, 꽃 빛깔, 꽃 모양이 화려하며, 삽목으로 얼마든지 증식할 수 있고, 교배에 의해 신품종을 개발할 수 있어 아마추어에게 좋은 분재 수종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철쭉이 두견새가 우는 무렵에 꽃이 핀다고 하여 '두견화'라 부르기도 했고, 모심는 시기에 꽃이 핀다고 하여 '모내기 철쭉'으로도 불렸으며 일본 관동지방에서 많이 재배한다고 해서 관동사스끼, 동경사쓰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한국 철쭉협회 회장(1992년)을 지낸 서울 시립대 이정식 교수는 '철쭉의 올바른 분류법'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사쓰끼는 학문적으로 '왜철쭉'(R, indicom)이라고 해야 하며, 교배종은 '사쓰끼교배종' 혹은 '왜철쭉교배종'이라고 불러야 올바른 분류법이라고 주장했다. 

"분재는 건강에도, 정서적으로도 좋습니다"

 자신이 분재한 철쭉 앞에서 설명하는 바지런분재원 주인 이성만씨
 자신이 분재한 철쭉 앞에서 설명하는 바지런분재원 주인 이성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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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원 주인에게 철쭉 분재를 하게 된 동기와 철쭉의 종류 등 그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의견을 들어보았다.

- 철쭉 분재를 하게 된 동기는?
"특별한 동기는 없고, 아내가 취미로 1982년부터 시작했습니다. '분' 자도 모르던 때였지요. 그때만 해도 군산에는 분재를 배울 만한 곳이 없어서 익산과 전주로 10년 동안 배우러 다녔어요. 철쭉의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껴 분재를 시작했는데, 향기가 없어 조금 서운합니다."

- 철쭉에 취미를 붙이면 어디에 좋은지요?
"나이 들어 직장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 무료하잖아요. 분재는 육체적 노동이 필요하고 꽃과 함께 지내야 하므로 건강과 정서적으로도 좋지요. 나무는 정성을 들인 만큼 꽃으로 보답해주거든요. 자식 돌보듯 정성 들여 가꿔 꽃이 필 때 느끼는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4계절 내내 자연과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취미가 분재입니다."

 여러 개 뿌리가 연결되어 뿌리와 줄기, 꽃의 조화가 아름다운 근상근연,
 여러 개 뿌리가 연결되어 뿌리와 줄기, 꽃의 조화가 아름다운 근상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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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철쭉은 참 아름다운데요. 뿌리와 줄기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요?
"뿌리를 위로 올렸다고 해서 근상(根上)이라고 부릅니다. 뿌리를 여러 개 연결해서 올린 철쭉은 '근상근연'(根上根聯)이라고 하지요. 근상은 오래전부터 내려왔지만, 이렇게 뿌리가 여러 개 이어진 철쭉은 23년 전 제가 처음 시도했어요. 그래서 근상근연으로 된 작품은 저희 집 밖에 없습니다."

- 말 못하는 나무를 괴롭히는 짓이라며 분재를 반대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모든 식물은 뿌리를 내린 장소에서 성장해서 죽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수목(樹木)을 화분에 담아 잠시 가지를 비틀고 다듬어 다른 지방으로도 보내고, 외국도 나가잖아요. 나무가 어떻게 사람 사는 안방까지 들어가고 외국 구경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반대하는 분들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싶어요."

- 철쭉을 분재하면서 정이 가장 많이 갔던 작품은?
"애지중지 가꿔온 나무들은 팔았어요.(웃음) 안 팔면 싸움나요. 특히 철쭉 애호가들은 좋은 작품이 눈에 띄면 왜 안 파느냐고 화내요.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하루에 몇 번씩 만나면 정들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애착이 가는 작품은 팔면 나무도 없어지고, 돈도 없어지니까 두고 보는 게 더 좋습니다."    

- 분재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요?
"분재는 수종(송백, 화목, 과목, 잡목 등)별로 나누기도 하고, 줄기의 형태, 나무의 크기, 희귀성 등으로 분류합니다. 줄기로도 하는데요. 줄기가 구부러진 모양의 '모양목', 바람에 나부끼는 '시류형', 비스듬히 누운 '사간형', 아래로 축 처진 '현애형', 뿌리가 앙상하게 올라온 '근상형', 줄기가 가늘면서 가지가 몇 개 붙어 있지 않은 '문인목형' 등이 있습니다."

- 분재를 하면서 주의할 점 몇 가지만 소개해주세요.
"주의할 점이 많아요. 자신을 다스리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철쭉은 물과 햇빛을 좋아하는 수종으로 많이 받을수록 빠르게 성장하고 개화했을 때 꽃 빛깔이 아름답습니다. 물도 꽃이 피었을 때는 꽃잎에 닿지 않게 조심해서 주어야 하고요. 또한, 처음 심어졌던 토양과 성분이 다른 흙에서는 뿌리를 잘 내리지 않는 성질이 있으므로 동질의 흙을 사용해야 성공률이 높습니다." 

철쭉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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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철쭉분재#취미#군산시 내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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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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