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전, 요즘 정말 보기 힘들다. 순수 한국화전도 그리 쉽지 않지만, 순수 조각전은 그보다도 훨씬 더 만나기 어렵다. 모두들 서양화로 몰려갔기 때문이다.
조각 중에서도 한국의 농경문화에 천착한 작품을 보는 일은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라 할 만하다. 누가 그런 '돈 안 되는' 조각을 하고 있겠는가. 그러나 '있다!' 서상교(徐相敎), 1999년에 석사학위 논문 제출과 함께 펼친 개인전의 제목도 '농경문화에 대한 소고'였던 조각가이다.
서상교 작가에게 호미와 지게 같은 농기구들은 단순한 농기구가 아니다. 삶의 기쁨과 슬픔, 대지에 대한 사랑과 부모의 자식 사랑, 세월의 질감이 애잔하게 묻어 있는 오브제다. 농경문화와 농기구는 작가에게 단순한 연구의 대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유년기 때부터 체득해온 미감(美感)의 원천이자 한국인의 영성(靈性)을 상징하는 창작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작업할 때면 가끔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의 지게, 호미, 도끼... 손때 묻은 그 물건들 위로 어줍잖게 옷을 하나씩 입혀간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애정과 존경심의 최소한의 표시이다."전시장에는 1500개의 보리 씨앗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질풍노도처럼 엎드려 있다. 감히 그 1500개의 보리 씨앗들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므로 바깥을 빙빙 돌며 감상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저 보리들은 저렇듯 머리를 치켜들고 앞을 바라보고 있을까. 보리들을 응시하노라면 관객은 저도 모르게 우리 조상들의 삶을 지배했던 '보릿고개'를 떠올리게 된다.
4m에 이르는 커다란 보리 3개가 머리를 치켜들고 꼬리까지 바짝 당긴 채 바닥에 엎드려 있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보는 이를 압도한다는 말이다. 작가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것과는 아무 관계없이, LED 빛을 받은 물경 4m나 되는 대형 보리 세 점이 환하게 형체를 드러내는 장관 앞에 서면, 이제는 거의 잊혀져버린 농경사회의 잔영이 저절로 눈앞에 선하다. 저 보리, 이제는 돈이 되지 않아 농삿일에도 들지 못하는 저 보리 한 가마니를 팔아봐야 커피 한잔 값밖에 되지 않는 이 황량한 자본의 세상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들판을 헤맨 품삯으로 자식들 공부 시키느라 늙는 줄도 몰랐던 우리네 부모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지금 비록 도시민으로 살고 있지만,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농촌 출신이다. 아련한 초가집과 도랑물의 전경, 국민학교 오가면서 맛보던 소나무 껍질과 산딸기의 향기, 갑자기 비가 퍼부으면 신작로 따라가며 서 있는 플라타너스 큰 잎을 따 그것으로 머리를 가렸던 가난함 따위는, 죽으면 잊혀질까 그 전에는 결코 망각되지 않을 평생의 추억이다.
하교하는 길에 곧장 뛰어들어 모내기를 했던 일, 꼴 베는 일에 매달리느라 문득 소가 눈에 안 보여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았던 일, 여자 아이라면 생나뭇가지로 아궁이에 불을 때다가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렸던 일, 남자아이라면 땔감을 지고 산을 내려오다 굴러 잔뜩 피멍이 들었던 일 등등, 그 모두가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흘러간 세월의 잔영을 보고 싶다면 서상교 조각전이 제격이다.
서상교 조각전은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5일까지 대백갤러리에서 열렸다. 그러나 다시 볼 수 없게 된 것은 아니다. 오늘(6월 7일)부터 6월 19일까지 앵콜전이 열린다. 장소는 팔공산 공원관리소 입구에 있는 '갤러리 위'(053-983-5223). 대백갤러리에서 미처 서상교를 만나지 못한 애호가에게는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