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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6월이었겁니다. 오빠는 학교에 복학을 했지만 다른 야간 고등학교로 옮겨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번 오빠의 일자리도 역시 경성부장 할아버지 덕에 정부청사 내무부에서 잡무 보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집 가정형편에 오빠가 일을 한다는 것은 큰 도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었던 나는 매일 꼬맹이들하고 놀다가 일요일이면 내 또래의 아이들하고 마음껏 놀 수가 있어서 일요일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날은 마침 친구들이 산딸기를 따러 간다고 모두 모여 있어서 나도 그 틈에 끼어 산으로 올라갔지만 얕으막한 뒷산에는 산딸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수녀원 근처로 가자."

"안돼 거기는 너무 멀어."

 

설왕설래하며 모두들 가자 말자 의견이 엇갈렸지만 수녀원 근처로 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사실 수녀원 근처는 아이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곳입니다. 모자원에서 멀리 떨어진데다가 산 속 깊이 외국식으로 지어진 수녀원 근처에는 죽음처럼 고요하고 괴괴하게 느껴지는 무서운 곳입니다. 게다가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말들까지 오고 갔습니다.

 

"수녀들이 애기가 생기면 애기를 죽여서 거기는 애기귀신이 많대."

 

나는 등골이 오싹했지만 낮이엇고 여러 명이니까 억지로 무서운 생각을 마음에서 지워버렸습니다. 수녀원 근처에 가자 숲이 무성하고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국적인 건물이 멀리 눈에 들어 왔지만 사람 구경은 할 수 없었습니다.

 

"와아-여기 산딸기 천지다."

 

우리는 무서운 생각도 잊은 채 서로 산딸기를 딸려고 다투듯이 산딸기 따기에 몰두했습니다. 나는 그날 분홍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다행히 주머니가 두 개 달린 옷이라 산딸기를 따는대로 그 주머니 속으로 집어 넣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갑자기 날이 어둑해지고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졌지만 나는 한쪽 주머니마저 산딸기를 채울 욕심으로 더 깊이 깊이 숲속으로 들어갔습나디.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비가 물을 쏟아내 퍼붓듯이 내렸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너무 깊이 숲속으로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수녀원의 산딸기
수녀원의 산딸기 ⓒ 장다혜

 

나는 아이들을 불러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애기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서 내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차 올라 무조건 숲속을 빠져 나오려고 뛰었습니다. 재수 없게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자 주머니에 있던 딸기가 떨어져 나와 여기 저기 흩어졌고 나는 그 와중에도 딸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 다시 달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거기 누구 있니? 여보세요?"

 

빗소리에 섞여서 들려오는 소리가 울리자 나는 더욱 무서워졌습니다. 그 소리가 꼭 귀신음성처럼 들렸으니까요. 그러나 다행히 바깥업무를 보고 수녀원으로 돌아가는 수녀님 눈에 내가 띄인 것입니다

 

"여기서 뭐하고 있니?"

"산딸기 땄어요."

"저녁도 다 됐는데 식구들 걱정하겠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알았지?"

"저...수녀님 석탄싣고 다니는 화물기차길 갈려면 어떻게 가야해요?"

"길을 잃었구나, 수녀님이 기차길까지만 데려다주면 갈 수 있겠니?"

"네."

 

수녀님은 기꺼이 나를 화물선로가 보이는 곳까지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내 눈에 비친 수녀님은 아이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아주 단정하고 고귀해보였습니다. 말투도 조용조용했고 친절하게 대해주셨으니까요. 화물선로가 보이자 수녀님은 내게 "곧 기도시간이라 수녀님은 수녀원으로 들어가야 한단다. 빨리 가렴" 이렇게 말하고는 급히 등을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가고 나는 그때서야 안심을 하고 비를 맞으며 화물선로를 따라 뛰었습니다.

 

수녀원은 오류역 하고 반대편 끝자락이었고 빨리 뛰어도 날은 내가 뛰는 것보다 더 빨리 어두워졌습니다.

 

드디어 집에 도착하자 나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고 산딸기 물이 원피스 주머니 가득 베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산딸기를 오빠랑 나눠 먹을 생각에 안도감과 함께 성취감마저 느끼며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너 이 시간까지 말도 안하고 어디 갔다 왔어?"

"산딸기 따러 수녀원에..."

"안돼겠다. 너 밖에 30분만 서 있어, 말 하지 않고 같다 온 벌이야."

 

오빠가 내 손을 붙잡아 방문 밖에 세워 두고는 주머니에서 산딸기를 털어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나는 밖에 서 있는데 오빠와 언니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산딸기도 다 먹는 것 같아 약이 올랐습니다. 몇 분도 채 안되었는데 몇 시간은 흐른 것 같았습니다. 방문이 곧 열리고 오빠가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언니가 내 머리에 묻은 물을 털어주고 닦아주고 옷까지 갈아입자마자 나는 물었습니다.

 

"산딸기는?"

"오빠랑 언니가 다 먹어 버렸지."

 

오빠는 나를 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딸기는 그대로 그릇에 옮겨져 담겨 있었으니까요. 그 날 한가지 교훈을 배웠습니다. 어디 나갈 때는 가족들한테 알려야한다는 것 말고도 함부로 남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수녀원 근처에는 결코 애기 귀신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수녀원의 산딸기#최초의 거짓말#연재동화#학현이#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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