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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교학연)의 김순희 상임대표님께.

 

우선, 편지를 받고 당혹스러웠던 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겉봉투에 이름과 함께 근무하고 있는 학교 이름과 주소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더군요. 제게만 보낸 것이 아닐 텐데, 전국 수만 명 전교조 교사들의 정보를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보 제공에 관해 결코 동의한 적이 없는데, 설마 다른 개인 신상에 관한 것까지 '털렸는지' 어째 좀 섬뜩합니다.

 

보내주신 편지 간절히 부탁하신 대로 끝까지 잘 읽었습니다. 다짜고짜 폐지함에 던져버리는 매사 괄괄한 몇몇 선생님들을 제외하면, 주변의 다른 선생님들도 봉투를 열고 찬찬히 읽어보시더군요. 읽고 난 후 모든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느낌을 서로 나누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읽기조차 민망한 외눈박이의 가엾은 편지글'이라는 겁니다.

 

편지 속 글귀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아가며 바루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는 없지만 대표님의 그러한 의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이고, 설령 일일이 해명한다고 해서 마음으로 받아들이실 것 같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해석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고 보면, 편지글 중에 인정할 수 있는 구석도 아예 없진 않았습니다.

 

전교조가 학생과 학부모들을 위한다며 내놓은 정책이 혼선을 빚은 나머지 집행부의 무능을 질타 받으며 오해를 산 적도 있고, 그들 중에 대표님이 언급하신 대로 '교묘한 논리로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집행부 자료에 지적하신 대로 북한의 연방제 통일 방안을 지지하고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것들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설령 뼛속 깊이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극소수일 뿐이며, 대표님의 우려처럼 그들에 의해 전교조가 좌지우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집단주의적 문화와 기성세대의 조그만 권위조차 경원시하는 20~30대의 신세대 교사들이 적지 않은 전교조가 설마 한줌도 안 될 그들의 입김에 휘둘리겠습니까.

 

물론, 제가 대표님의 의견을 인정하듯, 그들의 생각과 신념 또한 존중합니다. 누구나 정치적, 이념적 소신은 지니고 있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법과 제도로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타협과 토론의 과정 없이 그것을 일방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관철시키고 강제하려 든다면, 대표님보다 전교조 교사인 제가 먼저 온몸으로 그들을 막아서겠습니다.

 

전교조는 집행부의 명령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상명하복의 군대조직이 아닙니다. 민주와 인간화 교육을 뿌리삼아 출범한 조직에 권위주의는 늘 경계삼아야 할 병폐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조직 내 온정주의로 인해 '초심'이 의심 받기도 하고, 비리에 연루된 경우도 없진 않았지만, 집행부와 단위 학교 간 위계를 거부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자부합니다.

 

김순희 상임대표님!

 

대표님이 이끌고 계신 교학연 회원들의 교육과 학교를 위한 사랑과 열정을 조금도 의심하거나 폄훼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교육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려는 노력은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다만 하나, 자신의 교육에 대한 신념과 방식만이 옳다는 독선적 행태는 전교조와 교학연은 물론, 우리 교육계 전체에 해가 될 뿐입니다.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참교육을 실천할 수 있다'는 대표님의 말씀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교총 회원 중에도 아이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교사가 얼마든지 있고, 그들은 많은 전교조 교사들에게 귀감이 되곤 합니다. 그들과 정책적인 부분에서 다툴지언정 서로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표님께서는 전교조에 가입하는 것을 두고 '스승의 길'을 포기하는 것인 양 말하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집단에 속은 것'이라 단정하고 있습니다. 전교조를 우리 교육을 망치는 정치세력으로 규정하고 교육계에서 영원히 퇴출해야 할 교사 조직으로 그리는 걸 보면, 흡사 중세시대의 '마녀 사냥'을 보는 듯합니다.

 

더욱이 현 정부 들어 강조돼온 '경쟁 교육'을 문제 삼은 것이 공교육의 붕괴를 가져왔다는 논리는 대다수의 국민 정서상 앞뒤가 뒤바뀐 주장이 아닐는지요. 전국 단위의 일제고사의 시행과 지역별, 학교별 석차 공개라는 밑도 끝도 없는 경쟁 교육이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 야자와 휴일 등교를 부추기게 하고 있음을 모르시지는 않을 겁니다.

 

설마 그러한 엽기적인 학교 풍경을 공교육 정상화라고 여기지는 않으시겠죠. 아무리 학교가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치는 '동물의 왕국'이 되어 간다지만, 경쟁에 밀려나 성적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을 두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호기롭게 일갈하지는 못하실 테니까요. 기실 사교육비 절감 운운하는 것이 사치일 만큼 지금 학교와 아이들이 받는 '경쟁 교육' 스트레스는 시나브로 폭발의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혹시 대표님께서 '구중궁궐'에 갇혀 학부모들의 현실을 엉뚱하게 파악하고 계시지는 않는지 염려됩니다. 전교조 교사는 무조건 싫다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전교조고 교총이고를 떠나 '현 정부의 경쟁 교육에 반대하는 교사에게 아이를 맡기길 바라는 학부모', 대표님의 주장처럼 아예 없기는커녕, 대다수라는 걸 현직 교사로서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편지글 중에 이런 충고가 있더군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 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부디 제가 대표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스승의 진정한 의미를 잃지 않으려면 전교조를 탈퇴하라'고 거듭 강조하셨지만, 미처 소홀히 하고 있던 부분을 지적하시는 것 같아 반성하며, '스승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로 삼고 싶습니다.

 

김순희 상임대표님과 교학연 회원 여러분!

 

성찰의 기회 주심에 감사드리며, 부디 전교조에 맹목적인 증오보다는 애정 어린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실 것을 간곡히 청합니다. 눈과 가슴이 아이들을 향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매몰된 행태를 보인다면 주저 없이 회초리를 들어주십시오. 전교조 교사로서, 기꺼이 종아리를 맞을 각오는 돼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168일 오후에

 

광주광역시 소재 한 고등학교의 전교조 소속 교사 올림.

 

(추신) 청소 시간 중에 몇몇 아이들이 폐지함에 버려진 대표님의 편지를 꺼내 읽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조차 '재미있는' 내용이라면서 귀 단체더러 '듣보잡'이라고 키득거리며 놀리더군요. 그건 아니다 싶어, 아이들을 불러다 나무랐습니다. 어쨌든 저분들도 우리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고, 그 진정성만큼은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육과 학교를위한 학부모 연합(교학연)
교육과 학교를위한 학부모 연합(교학연) ⓒ 노영필

덧붙이는 글 |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교학연) http://www.ghy.or.kr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교학연)#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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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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