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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을 걸어 놓고 표지
 술잔을 걸어 놓고 표지
ⓒ 도서출판 황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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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필명 박산하) 수필가는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각하로 불렸다. 60~70년대 시절이니 그렇게 불렸다.

그런 그가 요즘에도 지인들로부터 '각하'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그가 강단있고 사물을 보는 눈이 명철하다는 점이 작용했다.

울산에서 왕성한 문인 활동을 하는 박산하 수필가가 생애 첫 수필집 <술잔을 걸어놓고>를 펴냈다. 9일에는 출판기념식도 가졌다.

지역 문화유산해설사, 지역일간지 교열 담당자를 거쳐 요즘은 집 부근 텃밭에서 오만가지 채소를 키우는 등 잠시도 쉴 새가 없는 그의 글에는, 예나 다를까 현장을 찾아가 보고 느낀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간 부지런함이 읽힌다.

책 제목 <술잔을 걸어 놓고>(도서출판 황금알)도 그가 울산의 명소인 작괘천에 가서 쓴 글을 땄다. 작괘천은 너른 바위에 오랜 세월이 녹아 자연이 만든 돌확으로, 그 위로 물이 흐르면 술잔을 걸어놓은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산하 수필가의 첫 수필집인 <술잔을 걸어 놓고>는 1장 '느림을 위한 에튀드' 2장 '울산, 꿈을 보다 고래를 보다' 3장 '꽃적삼 바람에 날리던' 4장 '일곱별에게 전화를 걸다' 등 41편의 작품이 수록됐는데, 한결 같이 사물을 생태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봉하마을에 간 박산하

자타가 공인하듯 '좌' 도 '우' 도 아닌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며칠 간이나 머물렀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던 날 먼 발치서 바라본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그의 고향은 밀양. 울산광역시와 경남 밀양에 걸쳐 있는 영남 알프스의 한 자락인 밀양 구만산 산마을에서 태어난 박산하. 그는 2008년 2월 우연히 고향인 밀양 역 부근에 있다 퇴임식을 마치고 봉하마을로 내려가던 노 대통령을 우연히 바라보게 됐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밀양역에 내린 대통령 일행은, 다시 밀양에서 차량으로 고향 김해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을 바라본 박산하는 "편안하게 고향으로 향하는 모습이 역대 대통령과 다르구나" 하고 느꼈단다.

1년 뒤인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은 산하는 장례식이 치르지고 있는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장례식에 며칠이나 묵으면서 본 일을 담은 글이 이 책자에 나오는 '검은 축제'다.

기축 오월 스무사흘 진시, 봉화산에 연기가 올랐다. 나라에 변고가 난 것이다. 마을 앞 개울가엔 안개가 오전 내내 할 말이 남은 듯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사람의 말은 하면 할수록 덧칠이 이루어지고 그 말은 생명성이 없어진다.(중략)

부엉이 바위는 부엉이가 울지 않고, 사자바위에는 저승사자만이 왔다갔다 한다. 겹겹이 밀려드는 사람들의 눈은 젖은 채 말이 없다.(중략)

흙이 되고 바람이 된 임의 영혼에 진혼곡이 입혀진다.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엔 아주 조그만 비석하나 참하게 누워 피 묻은 얼룩 지우고 있다. 모든 번뇌가 멈춘, 고요만이 머문 공간. 임의 죽음은 더없이 애통하나 참으로 위대했다. 신이 준 수명을 거부 할 수 있는 용기, 누구보다도 청렴이 용천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상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써 내려간 4페이지 분량의 글을 읽다보니 어느새 읽는이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책장을 적셨다.

그는 "봉하에 몇 번 갔지만 갈 때 마다 느낀 것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인간적인 대통령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파괴되는 자연을 글로 기록

박산하의 글에는 매사를 생태적으로 직관하는 눈이 있다. 그는 남편의 근무지인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대도시로 변하며 파괴되는 바다와 산, 강을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봤다.

그가 바라본 것은 자연만이 아니었다. 거대 공장에서 상존하는 정규직과 하청노동자의  삶, 대기업 지상주의의 사회적 행태도 글로 담담히 담아냈다.

가짜 대학졸업생보다 진짜 대학졸업생이 가짜가 되어 노동현장에 가야하는 삶이 있다. 얼마나 현실적이고 우울한 마이너리그의 삶인가. 이런 일도 가짜로 드러나면 그날로 회사를 나가야 한다.

학력을 속이고 위장 취업하던 격동기를 지나, 먹고 살기 위해 대학 졸업장을 속이고 하청업체에 취업해야 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파악한 이 글에 이르면, 어느새 변화한 시대의 아픔이 그대로 읽혀진다.

박산하가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친구들과 매월 5만원씩 모아 틈틈이 다녀온 여행기도 생태적이다. 캄보디아와 태국 등 여행지에서의 기록은 그들이 비록 우리보다 못 살지만 행복해 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그는 캄보디아를 여행하면서 문명이기로부터 애초에 받은 것이 없으니 돌려줄 빚도 없는 사람들, 밤잠 줄이며 일한 우리네는 세금이며 카드대금이며 날만 새면 올가미를 쓴다. 어느쪽이 행복에 다가가 있을까 라며 물음을 던진다.

"예술가나 문학가나 모두 창조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그는, 가끼이 있는 친구가 좋고 글을 쓸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첫 수필집 <술잔을 걸어놓고> 곳곳에 나오는 삽화도 그의 20년지기인 전건숙 문인화 작가가 그렸는데, 우연인지 책 내용과 너무 일치한다고 그는 말했다.

한편 출판기념회는 9일 저녁 7시 울산 중구 남외동 울산MBC 컨벤션웨딩 2층 안젤로홀에서 울산수필가협회 주관으로 열렸다.

수필가 박산하
수필가 박산하
 수필가 박산하
ⓒ 박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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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하 수필가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2002년 '울산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울산문학 올해의 작품상, 한국에세이문예 문학상, 제1회 천강문학상 은상을 수상했다. 1980년 방송대 농학과를 2년 수료하고, 1998년 다시 방송대 국어국문화과를 졸업하는 등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경주대 문예창작과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을 3년 수료했으며, 현재 울산문인협회, 울산수필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글쓰기와 농사에 열중하고 있다.

집 인근 텃밭에서 50여가지 채소를 키우는데, 가족 밥상은 물론 그가 가장 중요시 하는 친구들의 입맛을 돋구기도 한다.


태그:#박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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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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